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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시간 -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6월
평점 :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시간, 인생의 단상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우리는 차를 마시러
갑니다.
그간 써왔던 서평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써볼까 해요. 그냥, 어쩐지 마스다 미리 작가님이 쓸 법한 어투처럼,
느긋하면서도 편안하게 글을 써보고 싶었어요. 마스다 미리 작가님은 『평범하고 느긋한 나의 작가 생활』,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주말엔
숲으로』,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등 대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만화와 에세이로 사랑을 받고 있지요. 그녀의 신작 『차의 시간』은 커피와
카페라는 공간을 애정해마지 않는 저로써는 흥미를 감출 수 없는 책이었습니다.
카페가 내 집 안방처럼 되는 일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 있어 카페는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곳을 넘어 꽤나 다중적인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지요. 퇴근길에 삼삼오오 모인 일행과 가벼운 수다를 즐기거나 다정한 연인과 달콤한 디저트만큼이나 달달한 감정을 공유하기도 하며, 비밀스러운
고민과 서로의 푸념을 덜어주는 위로의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카페는 온갖 인생의 단상들이 머무르는 곳이 맞는 듯합니다. 차를 마시는
시간만큼은 공감력이 확대되는 것 또한 마찬가지고요. 식어가는 찻잔과 녹아드는 얼음으로 커피가 거의 물이 되어갈 만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날의 나눈 대화를 돌이켜보면 참 별 거 없다 싶을 때가 많아요. 그러나 그 순간, 순간이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미스다 마리 작가님도
알고 있었어요. ‘잡담’을 유사어 사전에서 찾아보니 거기에는 담소, 여담, 잡소리, 소담, 한담, 에피소드, 잡음 등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을
표현하기 위해 이렇게도 많은 말이 있더라는 거예요. 결국 그날 그저 가볍게 나눈 잡담이란 것이 알고 보면 참 소중한 말이었단 거지요.

요즘 카페를 가면 노트북을 켜고 일하거나 책을 펼쳐들고 저마다 자신의 미래에 몰두하고 있는 청년들이 참 많아요.
『차의 시간』 속에도 그런 장면이 담겨져 있어요. 취업준비 중인 듯한 대학생 그룹 열 명이 토론 같은 하고 있는 광경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다,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간다’ 하는 밝고 건강한 ‘미래’ 같은 것을 눈으로 마주하는 느낌이랄까요. 한때는 저도 그들 중 한 명이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덧 30대 중반에 이르는 나이가 되고 보니 그들의 모습이 유독 젊어 보입니다. 저들의 눈에 제 모습은 30대 중반에 아이
하나를 둔 아줌마의 모습으로 보이는 건 아닌지 괜스레 움츠러들곤 합니다. 그런데 작가님이 쓴 단순한 문장 하나가 마음의 무게를 더네요. 40대를
인생의 반환점이니 뭐니 하지만 반환한 사람이 있나?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장면은 화려한 수식어 따위가 없어도 큰 위로가 됩니다.

인간은 성장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마음의 숫자만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생물이야.
팬 사인회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세 명의 출판사 직원들과 가졌던 티타임 장면이 참 인상적입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작가님은 자신이 먹을 케이크 하나를 주문했는데, 디저트가 세 개 뿐인 건 왜인지 의문이 들었나봅니다. 각자 하나씩 먹으려면 네 개가 필요한데
말이죠.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는 혼자 한 개씩 디저트를 먹기보다 여러 가지 주문해서 함께 나눠 먹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지요. 마치 된장찌개
하나로 여러 사람이 숟가락을 가져가는 것처럼 말이죠. 개수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주 예쁘게 생긴 디저트 하나만 있어도 분위기는 묘하게 달콤해지고
우리는 그 달달함을 나눠먹음으로써 감정을 공유하게 되니까요. 어쩌면 차의 시간은 ‘애써 채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넘치는, 그런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말입니다.
『차의 시간』을 읽고 나니 누군가와의 티타임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어쩐지 이전과는 다르게 티타임 이후의 여운까지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