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올빼미 농장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9
백민석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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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같은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본질을 찾아나가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교교하게 눈에 불을 밝히고 사위를 예리하게 더듬는 듯한 한 마리의 올빼미. 그 눈빛이 마치 존재하는 그 어떠한 것 너머를 꿰뚫어보는 듯하고, 흐느끼는 듯한 울음소리가 어쩐지 으스스하기까지 하니 불운과 죽음을 상징하는 미신의 존재로 많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는 새이다. 이런 올빼미의 이미지와 ‘죽은’이라는 수식어를 덧대어가며 이미 충분히 음울하고 기괴한 하나의 장치를 고안해낸 백민석 작가는 거기에 농장이라는 뜻밖의 생산적인 이미지를 결합시켜 낯설면서도 기묘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그간 그로테스크하고 엽기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의 이력에 비추었을 때 현실과 비현실 경계 사이에서 담담하다 못해 냉정하게 넘나드는 특유의 필체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제목이다. 죽은 올빼미 농장은 어디에 있을까? 소설 속의 ‘나’가 그러했듯 나는 어디에도 잊지 않을 것 같은, 그러나 뜻밖의 지점 그 어디에선가 발견될 것만 같은 그곳을 향해 이끌리듯 소설을 읽어나갔다.

 

 

  

 

 

 

죽은 올빼미 농장과 폐허 같은 도시 속 현대인의 자화상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죽은 올빼미 농장’으로부터 두 개의 편지가 도착한다. 대중가요의 가사를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던 ‘나’는 잘못 배달된 편지를 우연히 뜯었다 알게 된 기이한 이름의 죽은 올빼미 농장으로 편지를 돌려주러 떠난다. 아주 오래전부터 함께 지내온 ‘인형’과 함께.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 죽은 올빼미 농장을 아는 이가 과연 있을까. 정말로 농장의 이름이 그것이 맞긴 한 걸까. 반신반의하며 고성으로 떠난 나와 인형은 농가가 가장 많이 몰려 있는 마을에서 수소문을 하고, 읍사무소 직원을 통해 약도까지 받지만 찾으려던 장소는 보이지 않는다. 겨우 짐작 가능한 하나의 장소를 발견하기는 하나, 농장은 이삼십년 전에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지금은 샘도 말라 농장이라기에는 폐허나 다름없는 곳이 되었다. 과연 편지에서 가리키는 곳이 맞는 것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이름은 꽤나 기괴하지만 그래도 그럴 듯한 농장을 기대했는데, 그냥 이렇게 단순한 해프닝에 그치는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후 뜻밖에 지인의 도움을 받아 땅 주인을 만나게 되면서 그는 사건을 더욱 미궁으로 빠져들게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농장이라 하기에 쓸 만한 땅이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한 젊은 여자가 살고 있었는데 두 아이를 데리고 근근이 살다가 굶주림으로 죽고 아이들의 행방도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편지에서는 여자의 아이들로 짐작되는 이들이 현재까지도 살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었기에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이렇듯 소설은 시종일관 ‘죽은 올빼미 농장’이라는 존재할 듯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 미스터리한 장소와 사연에 독자들이 몰입하도록 이끈다.

 

 

나는 실수처럼 그 편지들을 들고 들어왔고 뜯어 읽어봤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 편지 두 통을 뜯는 순간, 바로 그 순간, 내 힘으론 해결할 길이 없는 다른 어떤 무엇이 열린 것일 수도 있었다. 다른 어떤 무엇, 다른 어떤 세계, 그 세계의 풀 길 없는 어떤 난센스들, 그런 어떤 것들이. 그저 우편함에서 편지 두 통을 꺼낸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 침침한 우편함 너머로 헤아릴 길이 없는 다른 어떤 세계가 보이지 않는 어떤 고리 같은 것에 의해 줄줄이 꿰어져 있었던 것이다. / 102p

 

 

 

   이처럼 소설은 죽은 올빼미 농장의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면서, 현대인의 고독한 일상과 보다 실존적인 문제들을 품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모호한 경계를 드리운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인형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유아기적 감각을 가지고 있는 ‘나’와 남자이지만 앉아서 오줌을 누고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작곡가 ‘손자’, 이문세의 5집 같은 곡의 앨범을 내고 싶다는 약간은 되바라진 듯한 가수 지망생 소녀, 화자인 나와 친구인 듯 연인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민’ 등 어쩐지 모순되고 이상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특히 인형과 민은 이 소설에서 특별한 의미를 차지한다. 인형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나’와 감정적인 유대관계 및 대립관계를 유지하는데, 현대인들의 유약한 내면과 미처 성숙하지 못한 자아를 비추는 거울로써 존재한다. 한편, 민은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 현장으로 나를 데리고 가 아파트의 살풍경한 모습을 바라보며 이른바 ‘아파트먼트 키즈’로 대변되는 현대인의 황폐한 감정을 허물어가는 아파트에 비유한다. 그래서 그녀는 올빼미 농장의 일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이미 우리의 생활 반경에서 늘 반복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폐허가 된 올빼미 농장을 누구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존재의 흔적을 찾을 수 없던 것처럼, 단지 내를 꽉꽉 채우고 살았던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아파트 역시 곧 올빼미 농장처럼 되어버릴 것이기에.

 

 

나는 모래가 깔리고 놀이기구가 있는 그런 놀이터가 없는 동네에서 자랐다. 하지만 민의 얘기를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공중에 들린 채로 유아기를 보내는 아이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규격 유리창들, 아이들에겐 너무 까마득한 건물들, 차고 축축한 모래들, 공장에서 찍어낸 놀이기구들……. 그리고 그런 것들에서 유아기의 아이들이 갖게 되는 생애 최초의 감각들. 손끝에, 발바닥에, 시선에 닿게 되는 최초의 어떤 느낌들. 생애 최초의 실감들. 인형도 그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아파트촌의 황혼은 너무 묽다는 것이었다. / 114p

 

흰배 까치 농장이건 죽은 올빼미 농장이건 빈 땅이 한때나마 농장이었다고 증명해주는 건 읍사무소에 있는 지적도와 등기부 등본, 토지대장 따위뿐이었다. 그런 서류들에 적인 주소들뿐이었다.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고 맘에 따라선 변형도 시킬 수 있는 실체인 이 빈 땅은, 정작 무엇도 가르쳐주고 있지 않았다. 먼 길을 온 내게 정작 가르쳐주고 있는 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다라는 사실뿐이었다. 지금 보고 있는 것 외의 다른 것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사실뿐이었다. 빈 땅 외의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 176p

 

 

 

   주인공인 나는 민과 함께 허물어진 아파트 현장을 다녀오고, 계속해서 펼쳐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30년 동안 함께 지내온 인형을 올빼미농장에 수장시킴으로써 단절되고 어긋난 세계로부터의 회귀를 시도한다. 낡아진 아파트 역시 언제고 다시 재건축되어 또 다른 누군가들의 터전이 될 것이듯, 그가 가망이 없을 것 같은 마른 땅에 다시 물꼬를 틔우려했던 시도 역시 의미 있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현실, 얄팍하고 허물어지기 쉬운 허공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폐허 같은 삶에 나름 대응하려했던 작가의 의식이 빛을 발하는 장면인 듯하다.

 

 

 

   이렇듯 <죽은 올빼미 농장>은 2003년에 출판된 것이긴 하나, 개정출판된 지금에 와서 읽어도 흠결 없이 잘 읽힌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중편소설은 읽어보지 못한 편인데 단편소설이 주는 문체의 강렬함과 장편소설이 지닌 스토리의 완성도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 묵직한 힘을 지닌 작품을 만난 기분이었다. <죽은 올빼미의 농장>을 시작으로 하여 작가정신에서 출판된 다른 소설향 시리즈 역시 찾아보고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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