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이야기 - 시대를 움직인 뒤틀린 정의 예문아카이브 역사 사리즈
월러 뉴웰 지음, 우진하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인류사를 점령한 폭군들의 수상한 행적을 통해

자유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다!

 

 

  ‘민주공화국은 특정인과 특정 집단에 의한 독재의 거부를 제일의 가치로 한다는 점에서 권력을 인격화한 독재적 의식에 사로잡힌 정치문화의 퇴행성이 탄핵 사태의 근본 원인이다.’ 대통령의 탄핵을 두고 중앙일보의 한 칼럼에 쓰인 글이다. 이번 대통령 탄핵 사건은 민주주의 헌법 수호에 있어 용납될 수 없는 중요한 법 위배 사항으로 그 정당성을 발휘한다. <폭군 이야기>의 저자 월러 뉴웰 교수는 물리적인 폭력만이 폭력의 전부는 아니며,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모든 시도는 폭정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한다. 다행스럽게도 권력을 사유화하고 독재적 의식에 사로잡힘으로써 퇴행해버린 우리의 정치 문화를 심판대에 세울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오늘날 이들을 견제하고 독단적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는 헌법과 시민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른바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자축할 만하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국가의 이익에 크게 위반되지 않았다고 여기며 국정 농단 사태를 오히려 옹호하는 입장이 난립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나면 모든 것이 평화롭고 완벽할 것이라 믿었으나 여전히 이념과 해석의 차이가 존재하는 민주주의의 현실, 혹은 역설들 앞에서 이제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폭군의 가면과 세 가지 유형

 

   <폭군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에서 언제나 존재해온 ‘폭정’을 화두로 민주주의가 모색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즉, ‘역사는 진보한다’는 맹목적인 믿음 하에 폭정을 휘두르는 폭군들을 마치 구시대의 산물로 취급하는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폭정처럼 비치는 정치 행위마저도 진보의 과정 속 일부로 착각하는 위험성을 알리고자 한다. 우리가 박정희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면이 있듯이 폭정이 건설적이거나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는 원동력이라고 믿는, 혹은 좋은 폭정이 있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정의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IS와 같은 테러리스트들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민주주의가 쉽게 걸리는 병인 ‘기억 상실’ 때문에 미화된 폭력과 위장된 폭군들의 업적을 바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같은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리라고 경고한다. 이처럼 책은 역사 속에서 나타난 다양한 폭군들을 통해 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정당성을 부여하고 민중들에게 위협을 가하면서도 때로 열렬한 지지를 얻기까지 했는지, 중요 사상가들뿐만 아니라 철학, 문화, 미술, 문학, 건축 등 매우 광범위한 영역들을 통해 서로에게 미친 영향들을 상세히 설명한다.

 

 

같은 세상을 살고 있더라도 그 세상과 민주주의적 자유에 대한 현재의 폭정 위협을 제대로 직시한다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여기에는 젊은 세대에게 진짜 위험한 폭군은 항상 잠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 등이 포함되며, 무엇이 그들을 자극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따라서 이런 위험에 맞서는 첫걸음은 그 위험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서구 방식의 물질주의를 전파하는 것으로는 그들에 맞설 수 없다는 현실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 44p

 

 

   저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폭군들을 나눈다. 첫 번째는 ‘전형적인’ 폭군으로 국가와 사회를 마치 자신의 개인적인 소유물처럼 다루며 자신의 안녕과 이익 그리고 자기 주변의 혈족과 측근들을 위해 국가를 이용하는 부류이다. 플라톤이 <국가>를 통해 “만일 폭군이 국민을 잘살게 해준다면 그것은 양을 살찌우는 것처럼 필요할 때 잡아먹기 위해서다.” 라고 말한 데에서 그 본질을 느낄 수 있다. 이 전형적인 유형의 폭군으로는 로마의 네로 황제,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 장군과 니카라과의 소모사 부자, 최근에는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두 번째 유형은 ‘개혁형’ 폭군이다. 이들은 명예와 부를 소유하고 싶은 열망으로 움직이는 동시에 법과 민주주의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 권력을 추구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율리우스 카이사르, 루이 14세, 프리드리히 대왕, 나폴레옹, 터키를 공화국으로 바꾼 케말 아타튀르크 등이 속한다. 이들은 단순히 우두머리가 되거나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보다 인류의 이익을 위해 이 혼란한 세상에 어떤 질서를 부여하는 데 더 깊은 욕망을 드러낸다. 도시를 재정비하고 법과 제도, 공공 위생, 교육 문제를 개선하며 빈부 격차를 줄이는 시도 등을 해왔다. 그러다보니 이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폭군이 아니라 국민의 훌륭한 대표자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 유형은 ‘영원불멸형’ 폭군이다. 로베스피에르, 스탈린, 히틀러, 마오쩌둥과 같은 전체주의 폭군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이들은 완벽한 조화를 표방하는 미래의 세계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엄청난 전쟁과 대량학살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특이점은 이들이 근대에 들어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스탈린과 히틀러,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이와 같은 경우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꿈꾸는 이상향을 가로막는 적의 정체를 규명하고 이를 철저히 멸절시키는 데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유대인에 대한 끝 모를 증오를 보였던 히틀러의 경우, 실제로 이들과 어떤 관계를 갖거나 연관성이 있지 않았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스탈린이 행복과 변영의 적이자 이상형 건설을 위해 반드시 멸절돼야 하는 가공의 반혁명분자인 쿨라크 ‘부유한 농민’을 만들어낸 것처럼, 히틀러도 ‘유대인’이라는 적을 만들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고대,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 가지의 유형의 폭군들을 통해 살펴보게 될 폭정의 행적들은 매우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있다. 한 인간의 개인적인 야망과 역사의 변혁을 꿈꾸는 거대 욕망은 물론, 세속과 종교, 사상 등이 매우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덕분에 책을 읽다보면 방대한 분량만큼이나 세계사 전반을 아우르는 총제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기분이 든다.

 

 

종교적 다원론과 여러 종교들을 관용적으로 포용했던 사상은 이제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사상으로 대체됐다. 기독교는 인생의 모든 측면을 이끌어주는 유일한 ‘진리’였고, 그것을 지원한 것은 절대 권력자의 ‘권위’였다. 심지어 콘스탄티누스 1세나 테오도시우스 같은 황제들도 삼위일체와 같은 난해한 신학 논쟁에 끼어들기도 했으며, 다른 견해나 관점에 대해서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진압해 자신들이 선택한 종교를 지원하려고 했다. 폭정은 이념이 되기 시작했고, 훗날 절대 권력의 국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론과 실제의 통합’을 이루게 됐다고 주장하면서 등장한 공산주의와 같은 세속적 이념의 종교적 선배가 됐다. / 187p

 

 

우리는 절대 군주의 권력이 때로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대단한 일을 성취해낼 수 있다는 불편한 역설을 마주하게 된다. 마키아벨리가 말했던 “군주와 평민 모두를 위한 안정과 평화”다. 더욱이 이와 관련된 또 다른 역설도 드러나게 되는데, 공격적이고 야심 넘치는 폭군이 위대한 정치가로 변모할 수 있으며 어느 지점에 들어서면 양자를 구분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 227p

 

 

 

 

 

모든 권력자는 잠재적 폭군이다

 

   이 책에서는 대체로 서구 인물 중심의 폭정과 불의를 다루고 있는데, 저자는 폭정의 의미를 인류를 파괴하거나 퇴보시킬 수 있는 모든 권력으로 확장시킨다면 핵무기나 환경 파괴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다. 히틀러와 스탈린과 같은 폭군이 이를 극적으로 이용한 사례인데,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IT기술도 폭정에 이용될 수 있다. 물론, 핵무기 기술과 파멸의 위협이 오히려 오늘날의 소비 사회를 두렵게 만들어 세계 평화와 정의를 가져온다는 설도 있는 만큼,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 속에서 발휘되는 다양한 협력단체와 시민의식이 폭정과 폭군의 등장을 끊임없이 견제함으로써 평화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든 민주주의가 완전무결한 체제는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인류가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희망을 셀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해왔지만, 그런데도 폭정이 계속되는 이유는 ‘권력을 향한 결코 꺼지지 않는 욕망’이라는 인간의 심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권력자는 잠재적인 폭군이다. 권력에 대한 꿈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늘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야 하며, 거기에 대항할 준비를 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나가서 싸워야 한다. / 443p

 

 

   그런 점에 있어 <폭군 이야기>는 세계사를 위협했던 폭군들을 설명하는 단순히 자극적인 내용의 책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묘하게 뿌리를 내리는 이들의 등장을 방지하고, 그것이 부지불식간에 체제를 잠식시켜 언젠가 더 큰 위협을 가할지 모른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대체로 서구의 역사에 비추어 쓰인 책이다 보니, 방대한 세계사적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았으나 그만큼 공들여서 읽고 참고 서적을 찾아가면서 독서를 하는 흥미로움을 가지기도 했다. 다만, 비문이나 오타가 눈에 자주 띄는데, 이 때문에 읽을 때 문장과 내용에 대한 이해도를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시기가 매우 적절하게 등장한 이 책으로 하여금 대통령 탄핵이라는 이 중차대한 사건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큰 의미를 지니는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분들에게도 이 책이 유용하게 읽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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