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에오스 클래식 EOS Classic 24
제인 오스틴 지음, 이미선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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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시작될 때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들의 모든 것!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치가 돋보이는 로맨스 소설의 고전!

 

 

  높은 언덕 위 아름다운 대저택에서 열리는 화려한 무도회. 그 속에서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 연주곡과 능숙한 사교 솜씨를 뽐내는 남녀들이 은근히 주고받는 눈길들. 스무 살 이전, 한창 로맨스 소설을 읽는 데 빠져 있었던 나에게 있어 <오만과 편견>은 단순히 영국 특유의 고전미를 앞세운 외국 로맨스 소설에 불과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제인 오스틴 특유의 문체가 낯설어서 그저 부잣집 남자와 상대적으로 가난한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에 집중한, 할리퀸 로맨스 같은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이후 나를 <오만과 편견>이라는 작품에 빠져들게 한 것은 뜻밖에도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였다. 작품 자체에 대한 호불호는 있었으나 다아시 역할의 매튜 맥퍼딘으로 하여금 영화를 몇 번이나 보게 만들었고, 남녀가 사랑하기 시작할 때 빠지기 쉬운 오해와 편견들을 딛고 끝내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꿈결 같은 이야기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 다시 읽는 <오만과 편견>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상당한 재산을 가진 독신 남성에게 틀림없이 아내가 필요할 것이라는 사실은 널리 인정된 진리다.

이런 진리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워낙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터라, 그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아무리 알려진 것이 없다 해도 동네 사람들은 그를 자기네 딸들 중 누군가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간주한다. / 9p

 

 

   <오만과 편견>은 딸들을 둔 부모라면 당연히 마음에 두는 만고의 진리를 시작부터 펼쳐놓는다. 특히 다섯 딸들을 둔 베넷 가의 부모라면 네더필드 파크에 입주한 빙리라는 부유한 남자의 등장에 자연스레 흑심을 품게 마련이다. 좋은 신랑감에게 딸을 시집보내려 안달이 난 베넷 부인의 바람대로 아름답고 선량한 맏딸 제인은 빙리와 사랑에 빠진다. 한편, 지성미와 재치가 넘치는 발랄한 성격의 엘리자베스는 빙리의 친구인 다아시와 묘한 감정을 주고받지만 높은 신분과 고압적인 분위기의 그를 보고 오만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더군다나 두 딸을 항상 부끄럽게 만드는 베넷 부인과 동생들의 경솔한 행동, 어울릴 수 없는 신분과 부의 장벽이 낳은 오해와 편견들로 인해 그들의 사이는 멀어지게 된다. 소설은 이들이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고 서로의 진정성을 들여다보게 되는 우여곡절의 사건들을 겪게 되면서 마침내 두 커플이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섬세한 인물과 감정 묘사를 통해 담아낸다.

 

 

   소설의 줄거리만 보면 역시 흔한 로맨스 소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이 때문에 나는 다시 읽기 전만 하더라도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이 왜 고전으로 읽히는 것인지 내내 이해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잘 쓴 로맨스 소설은 아닐까. 여성 작가로서는 성공하기 힘들었던 문학적 현실을 딛고 후대에 어찌되었던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로맨스 소설들이 마치 인생의 종착지가 결혼인 듯 그것이 환상처럼 아름다운 세계인 듯 그리며 오직 그것을 향한 결말로 맹렬하게 나아가는데, 여기에 제인 오스틴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탓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읽어보니 <오만과 편견>은 전형적인 로맨스의 구조적 황홀경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읽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콜린스 씨는 똑똑한 사람도, 호감을 주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지루했고, 그녀에 대한 콜린스 씨의 애정은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의 남편이 될 것이다. 샬럿은 남자나 결혼 생활 자체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결혼은 항상 그녀의 목표였다. 결혼은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이 별로 없는 여성에게 남은 유일한 생활 대비책이었고,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아무리 불확실하다 해도 가난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방책이었다. / 189p

"저는 한정 상속에 대해서는 어느 것에도 절대 감사할 수가 없어요. 여보. 양심도 없지, 대체 왜 우리 딸들에게서 재산을 빼앗아 가도록 정해 놓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거기다 그걸 전부 콜린스 씨에게 주다니! 왜 그 사람이 우리 재산을 다른 어느 누구보다 많이 가져야 하는데요?" / 201p

 

 

   사랑과 결혼을 둘러싼 냉정한 현실과 날카로운 유머 속에 담긴 시대 풍자가 이 소설에 담긴 진정한 메시지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다. 왜 여성들이 자신과 가족 전체의 신분 상승의 욕망을 결혼을 통해서 실현하려 했던 것인가, 답은 사회의 모순된 구조 속에 있었다. 딸들에게는 재산을 모두 물려받을 수 있는 권리가 없는 비정상적인 현실이 그들을 남편의 수입에 목매달게 만들었고, 제인 오스틴은 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며 돈과 계층 간의 상관관계를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유머를 곁들어 위트 있게 담아낸 것이다. 상류 사회를 지향하는 속물 근성의 여성들로 가득한 당대의 세계관을, 은근히 풍자의 형식을 빌려 사회 전체를 비판한 그녀의 글쓰기를 단순히 로맨스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쨌든 이런 평가를 차치하고서라도 나에게 있어 <오만과 편견>은 정말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는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음에 또 다시 읽을 때면 새로운 것이 눈에 보일까. 역시 고전은 몇 번이고 읽어도 새롭고 다시 읽히게끔 하는 힘이 있기에, ‘고전’이라 불리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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