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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글과 그림으로 장대한 인류사를 압축한 신개념
세계사백과!
한 장의 지식 <세계사>는 아르테에서 기획한 <철학>, <심리학>,
<경제학>, <빅 아이디어>에 이르는 인문 지식 시리즈 중 하나이다. 선사시대부터 20세기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정치와
문화, 종교와 사상을 막론한 인류의 역사를 한 권으로 일목요연하게 압축하여 담아냈다. ‘한 장의 지식’ 이라는 부제답게 페이지 왼쪽에는 글을,
오른쪽에는 사진이나 그림으로 구성하여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이나 인물만을 뽑아 바쁜 현대인들에게 핵심사를 전달하려는 기획 의도가 꽤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세계사의 흐름과 주요 계보를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지적 호기심을 마구 자극한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한 가지 의구심이 든다. 방대한 세계사의 복잡한 이해관계 및 사건의 개요 등을 겨우
단 한 장으로 쉽게 풀어내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점이다. 다른 시리즈들은 개념적으로 접근하기에 비교적 용이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지만 세계사는
전후맥락과 다양한 이해관계를 함께 논의해야만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독자들은 이 책이 백과사전식의
핵심 맥락만 간추려서 역사의 한 장면을 들여다본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상세한 설명을 첨부하기보다
사건이나 인물의 핵심 사안을 직설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사전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보충 학습이 요구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어디서 시작해야 할 지 몰랐던 세계사 공부의 출발점을 제시하고, 파편화된 지식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하여 더욱 깊이 있는
학습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
이념의 갈등, 분쟁의 씨앗 그리고 전쟁
학창시절에 나는 교과서에 숱하게 나오는 각 나라의 주요 전쟁들을 우리가 왜 학습하고 다루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 장의 지식 <세계사>에도 지역별로 발생된 각종 분쟁과 전쟁들이 비교적 많이 수록되어 있다. 백년전쟁,
장미전쟁, 30년 전쟁, 아편전쟁, 크림전쟁, 러일전쟁, 세계 1,2차 대전 등등 이 책을 읽다보면 역사란 이념의 갈등이 분쟁을 야기하고 이권
대립이 양산한 전쟁으로 인해 다시 쓰이는 과정의 연속인 듯하다. 무엇보다 하나의 전쟁은 수세기에 걸친 지난 역사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또
많은 변화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이를 달리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크림전쟁이 나이팅게일과 메리 시콜의 활약으로 현대 간호학이 발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 바로 그러하다. 남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코사 전쟁의 경우, 소를 모두 제물로 바치면 코사족이 승리한다는 어린 선지자들의 예언에
의존하는 바람에 수차례에 걸친 전쟁과 재앙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전쟁의 뼈아픈 상처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었다. 책에는 우리의 6.25 전쟁도
언급한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들여다 본 우리의 전쟁은 코사 전쟁 보다 더욱 뼈아프다.
300만 명이 죽고(대부분 한국인) 분쟁의 씨앗이 된 38선과 비슷한 비무장지대가
아직도 남아 있다. 이 사건은 국제연합의 무능력을 보여 준 것 외에도 냉전 시대에 일어난 최초의 대리전이었다. / 358p
문명과 문화의 발달
한 장의 지식 <세계사>는 나라와 나라간의 흥망성쇠뿐만 아니라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문명과 문화의 발달까지
폭넓게 다룬 인문교양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유명한 화석 가운데 하나인 루시와 원시인류에서부터 메소포타미아 문명, 철의 등장,
1572년 11월에 보인 새로운 별-신성, 화학에 대한 연구가 세계사에 미친 영향, 전신 기술의 발달 등의 흥미로운 주제들을 선별하여 다룬다.
이 외에도 흑사병, 에스파냐 독감, 리스본 지진과 같은 불가항력의 재앙도 함께 소개한다. 특히 리스본 지진 당시 화재 진압과 전염병을 막기 위해
바다에 사체를 집단 매장하였다는 글과 당시 처참한 상황을 그린 그림을 보면서 우리 인류가 써온 오랜 역사가 자연 앞에서는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와 성찰을 가능케 한다.
리스본 지진이 계몽 시대 유럽에 끼친 영향은 상당했다. 막대한 인명 피해는 자기
성찰을 가져왔다. 볼테르는 이것이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인가’를 자문하는 『캉디드』를 썼다. 칸트는 철학 대신 지리학 연구로
잠깐 관심을 돌렸다. 리스본은 내진 설계된 건물들로 재건되었으나 막대한 손실과 비용이 들어 포르투갈의 제국주의 팽창은 막을 내렸다. / 208p
이 외에도 ‘커피 하우스’ 라는 주제어를 통해 카페 문화의 시작과 풍경을 들여다본 것 또한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오늘날 곳곳에 들어서 있는 수많은 카페처럼, 왕정복고 시대에도 약 3천여 곳이 운영되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아가 커피 하우스는 정보와
상업, 이견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프랑스의 계몽운동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카페 문화가 기여하는 바가 상당히 컸다고 할 수 있겠다.
커피를 마시거나 커피 하우스를 만남의 장소로 사용하는 습관은 1475년경
콘스탄티노플에서 시작되었고 상인들을 통해 퍼졌다. (…중략…) 왕정복고 시대인 1660년대에 약 3천 곳이 운영되어 정보와 상업, 이견의
중심지가 되었다. 증권거래소, 경매 회사, 보험중개인은 커피 하우스에 기원을 둔다. 신문과 풍자 팸플릿, 정당정치, 잉글랜드 은행, 남해 포말
사건도 마찬가지다. / 184p
새롭고 발전된 문명을 거듭하는 동안 인류의 역사는 늘 피와 상처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남겼으며 여전히 테러와 전쟁의
위협해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찬란하지만 슬프기도 했던 인류의 명과 암을 이 책 한 권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써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게 했다. 훗날 이 책의 뒷면에는 오늘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책은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이렇듯 한 장의 지식 시리즈 <세계사> 편은 여러모로 소장 가치를 충분히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다. 긴
호흡의 독서를 하기 어려운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분명 참신한 세계사 백과사전이 될 것 같다. 다른 4가지의 화두와 앞으로 더 출간될 다른 영역도
꼭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