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역자 노트 + 프랑스어 원문 + 영역판 수록)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원작의 가치를 바르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담아낸, 원작 그 이상의 감동!

순수한 어린 왕자의 시선으로 모순된 어른들의 세계를 그린 영원한 고전동화!

 

 

 

  ‘모든 어른들은 처음에는 아이였습니다.’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는 책 서문에 레옹 베르트에게 바치는 헌사로 이와 같은 글을 썼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그것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마치 다른 별에서 지구를 찾아왔다 떠난 어린 왕자처럼, 모든 어른들은 제 속에서 아이였던 순간들을 지구 밖의 어떤 별에 떠나보낸 것만 같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 왕자는 세상 모든 어른들의 순수했던, 아이로 대표되는 지점을 상징하는 기호이자 어른의 세계로 진입은 했지만 여전히 어른 아이에 머물러있는 우리들이 붙잡고 싶은 동화이다. 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추억하는 동경이 아니라 순수한 어린 왕자의 시선으로 본 모순된 어른들의 세계를 통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잊고 지냈던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다. 지금에 와서 읽는 <어린 왕자>는 그러한 이유로 내게 있어 의미가 꽤 새로워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시 읽는 <어린 왕자>’가 아니라 유년 시절에 읽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읽지 못했던 이야기들로 인해 많은 것들이 달리 다가온 ‘새로 읽는 <어린 왕자>’가 되었다.

 

 

정교한 은유와 표현을 완성한 번역으로 새롭게 읽는 <어린 왕자>

 

  소행성 B612로부터 온 어린 왕자의 이야기는 놀랍게도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혔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또한 많은 번역본이 나왔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왕자>의 원문이 프랑스어란 사실을 안다거나, 번역본의 완성도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일부 책들은 번역자를 따로 두지 않거나,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번역된 책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역이 발생함에도 그것을 간과하고 출간하기도 한다니 작품의 본질을 제대로 담고 있는 것인지 미심쩍다.

  사실 <어린 왕자>는 그저 쉽게 읽히는 동화가 아니다. <어린 왕자>에는 마음의 눈으로 읽어야 하는 수많은 은유들이 존재한다. 은유는 곧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도 해서, 이 책을 읽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을 때에야 비로소 그 아름다움을 가까이 느낄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에 대해 이 책의 역자 역시 ‘<어린 왕자>는 코드 읽기다’라고 언급하며 보이는 의미가 아닌 숨겨진 의미를 읽는 독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는 곧, 작품 속에 담긴 의미의 코드를 읽기 위해서는 작가의 의도와 프랑스 원문에 담긴 특유의 뉘앙스를 잘 살려놓은 번역이 앞서야만 <어린 왕자>의 가치를 보다 깊게 느낄 수 있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런 점에 있어 이 책은 프랑스 원문과 영역판도 함께 수록했음은 물론 따로 역자노트를 마련해 다른 번역판의 오역을 지적하고 구체적인 이해를 도우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사막의 모래알만큼 많은 <어린 왕자>이지만, 바르고 정확하게 쓰인 번역본을 통해 원전이 주는 감동과 울림을 더욱 깊이 있게 느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어린 왕자> 속의 ‘나’는 화가가 되고 싶었던 여섯 살 때 코끼리를 소화시키는 보아뱀을 그린 적이 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 그림을 보고 ‘모자’라고 생각했고, 어느 누구 하나 그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른들은 이미 눈에 보이는 것들에 익숙해져버렸고, 그것에만 충실하게 살기에도 버겁기만 한 삶인 까닭이었다. 지금 나를 부둥켜안고 우는 나의 어린 아이를 보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아이의 마음이 이토록 아픈 것인지 눈으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나의 답답한 심정은 단순히 어른의 입장이기 때문인 걸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본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온전히 마음의 눈으로 읽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미안하지만… 내게 양 한 마리만 그려 주세요!”

  비행기 사고로 사하라사막에 불시착한 ‘나’에게 느닷없이 나타난 어린 왕자는 말한다. ‘나’는 병든 듯한 양, 뿔이 있는 숫양, 늙은 양을 그려주었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어린 왕자가 원하는 양은 그런 게 아니었다. 결국 비행기를 수리해야 하는 일 때문에 되는대로 그려준 상자를 보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소중한 어린 양을 발견한 어린 왕자는 마침내 환한 얼굴이 된다. 분명 ‘나’는 ‘코끼리를 소화시키는 보아뱀’을 그렸던 그 때를 잊고 있었던 까닭에 그 순간, 어렴풋한 깨달음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잃어버렸던 그 때, 그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나에게는 분명히 보이는 어떤 소중한 가치의 중요성을.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새로운 친구에 관해 말할 때, 그들은 본질적인 문제에 관해선 결코 묻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어떠니? 좋아하는 게임은 뭐니? 나비를 수집하니?” 그들은 당신에게 묻는다. “몇 살이니? 형제가 몇이니? 몸무게가 어떻게 되니? 아버지 수입은 얼마나 되니?” 그러면 단지 그들은 그를 안다고 믿는 것이다. / 30p

 

 

떠난 후에야, 보이지 않게 된 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친구로 지내자. 나는 혼자뿐이야.” 그가 말했다.

“나는 혼자뿐이야… 나는 혼자뿐이야… 나는 혼자뿐이야…….” 메아리가 대답했다.

‘이상한 별이네!’ 그는 생각했다. ‘전부 메마르고, 전부 날카롭고, 전부 어린애스러워. 그리고 사람들이 상상력이 부족해. 남의 말을 되풀이할 뿐이니. 나는 집에 꽃 한 송이를 가지고 있는데. 그녀는 언제나 먼저 말했는데…….’ / 96p

 

 

  기껏해야 두 개의 활화산과 하나의 휴화산, 단 한 송이의 장미꽃을 가진 작은 별에서 살고 있던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결코 돌아올 수 없으리라 생각하며 새로운 별을 찾아나서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복종하기만을 원하는 왕과, 자신을 동경하기를 원하는 자부심이 강한 남자, 종일 술만 마시는 술꾼이나 별만 세고 있는 사업가와 같은 어른들만 만나게 될 뿐이다. 그나마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 몰두하고 있는 가로등지기를 만나 희망을 얻지만 자신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은 그곳에 없었다. 이내 일곱 번째로 도착한 지구라는 별에서 높은 산을 오르게 된 어린 왕자는 메아리와 나누는 허무한 대화를 통해 깨닫게 된다. 내 별에는 비록 민감한 허영심을 지녔으나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는 장미가 있는데, 고작 네 개의 가시로 모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있을 텐데. 결국 나의 소중한 존재들은 눈에 보이지 않게 되고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인가 보다.

 

 

길들임에 대한 본질

 

  그런데 정원에서 오천 개의 장미꽃들을 본 뒤로 어린 왕자는 갑자기 자신이 몹시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의 꽃은 우주에서 자신이 유일하다고 말했고, 어린 왕자는 온 세상에 단 하나뿐인 꽃을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를 부자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똑같은 것들이 오천 개나 있었던 것이다. 풀밭에 누워 우는 어린 왕자에게 때마침 여우가 나타난다. 이때 여우는 말한다. “너는 아직 내게 다른 십만 명의 어린 소년들과 똑같은 그냥 한 어린 소년에 불과한 거야. 그러나 만약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그때부터 우리는 서로가 필요할 거야. 너는 나에게 온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 되는 거지.” 라고 말이다. 여우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고, 관계를 중요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그를 위해 소비한 시간이라는 것을. 상대를 향한 영원한 책임과 무한한 신뢰 속에서 완성된 관계야말로 인생에서 있어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너희들은 아름다워, 그러나 너희들은 공허해…” 그는 계속했다. “누구도 너희를 위해 죽어주지 않을 거야. 물론, 보통의 행인들은 내 꽃이 너희들과 닮았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내겐 혼자인 그녀가 너희들 전부보다 더 중요해. 왜냐하면 내가 물을 주었던 게 그녀이기 때문이야. 내가 유리구를 덮어 준 것도 그녀이기 때문이고, 바람막이 뒤로 피신시킨 것도 그녀이기 때문이야, 애벌레를 죽인 것도 그녀이기 때문이고(나비가 되도록 두세 마리 남겨 둔 건 제외하고), 그녀가 불평할 때 또는 으스댈 때, 심지어 가끔 아무 말도 않을 때 들어 주었던 것도 그녀이기 때문이야. 왜냐하면 그녀가 내 장미이기 때문이지.” / 108p

 

 

  어린 왕자는 자신이 길들인 꽃이 고향별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별을 아름답게 추억한다. 내가 길들인 것과,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나의 인생과 함께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인생은 축복이었다. 나는 얼마나 그것들을 잊고 지냈던 것일까.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들만 바라보고, 힘겨운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애써 지내는 동안 내 옆에서 숨쉬고, 나를 바라보는 것들에 눈길 한번 손길 한번 주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후회가 든다. 어린 왕자와 같은 마음으로 나의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마음 속 깊이 간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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