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 - 간서치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 들려주는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내면 풍경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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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바보라 불린 이덕무를 통해 바라본 18세기 조선의 모습!

시대를 앞서 나간 참다운 지식인들을 읽다!

 

 

  간서치, 즉 책에 미친 바보라 불린 이덕무는 ‘조선 인문학의 르네상스’라 불리던 18세기 조선 최고의 문장가이다. 그의 이름 석 자는 어쩐지 낯설지만 ‘북학파’의 주축 인물이며, 놀랍게도 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은 물론 초정 박제가 등과 당대를 빛낸 위대한 지식인이다. 그간 교과서를 비롯하여 전기 및 많은 인문학 서적 등에서 북학파를 대표하는 이들의 삶을 조명하고 그 업적을 기리곤 했지만 이덕무라는 이름은 깊이 있게 언급되지 않았다. 새삼 18세기 지식인 이덕무의 글을 읽는다는 것이 오늘에 와서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무려 5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방대한 양을 완독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에 저자는 ‘이덕무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인문학적 사유의 개방성과 확장성, 그리고 불온성은 18세기와 21세기라는 시대를 막론한 인문학적 가치이자, 두 시대를 연결하는 핵심 키워드’라 말하며 그를 통해 ‘화석화된 과거를 읽는 것만이 아니라 생동하는 현재를 읽는’ 일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를 언급한다. 시대를 초월한 인문학의 정신을 비롯하여 학술적인 접근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은 그저 책과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힐 정도로 재미있다. 무엇보다 18세기의 전반을 들여다보는 현미경과 같은 구체적인 그림을 제시한다는 점에 있어서 더 큰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18세기 조선의 모습

  이덕무의 삶을 비롯하여 그의 철학에 가깝게 접근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18세기 조선의 모습이다. 이 시기는 보수와 혁신의 흐름이 극단적인 형태로 공존하던 때였다.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학문과 사상이란 유학 그중에서도 특히 성리학으로, 이들이 이상으로 삼은 인간 모델은 공자나 맹자와 같은 성현이나 도덕군자였다. 성리학의 경전은 출세 즉 과거 시험을 통해 벼슬길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에 사대부가의 자손이라면 예외 없이 성리학적 인간이 되어야만 했다. 이러한 성리학의 견고한 벽에 커다란 균열이 발생하는 대격변이 일어나는데, 성리학의 토대였던 화이론적 세계관이 몰락하면서 새로이 성장한 청나라의 선진 문물과 제도를 배우고자 북학 운동을 일으킨 ‘북학파’가 등장한 것이다. 이덕무를 비롯한 그의 벗들은 이 북학 운동의 선도자로 기존의 지식인들과 정반대의 입장에 선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들이었다. 비록 오늘날에는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덕무가 이 북학파의 핵심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조선 최고의 문장 이덕무를 읽다>는 그 본인은 물론, 북학파인들의 남다른 가치관과 사상, 철학을 동시에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책이다.

 

 

어린아이의 눈과 마음으로, 독서하고 기록하다

  책은 이덕무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독서와 기록’ 그리고 ‘호기심과 탐구’에 의거하여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독서가, 문장가, 비평가로써 이덕무가 추구하는 사상과 철학을 살펴본다.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와 더불어 ‘한시사가(漢詩四家)’라 평가받을 정도로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인 이덕무는 자신의 원동력을 어린아이의 천진하고 순수한 감정이나 마음으로부터 삼는다. 이를 ‘영처의 미학’ 또는 ‘동심의 미학’이라 언급하는데, 이는 곧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거나 명예를 구하기 위해 글을 짓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것이기에, 애써 꾸미거나 잘 쓰려고 억지로 힘쓸 필요가 없음을 강조한다. 그저 자신의 천진하고 순수한, 진실한 감정을 드러내면 되는 것이다. 스스로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어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본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그의 메시지는 이 시대의 많은 작가들에게도 귀감이 될 만한 부분이다.

 

 

내 어린 아우 정대는 이제 겨우 아홉 살이다. 타고난 성품이 매우 둔하다. 정대가 어느 날 갑자기 말했다. “귓속에서 쟁쟁 우는 소리가 나요.” 내가 물었다. “그 소리가 어떤 물건과 비슷하니?” 정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소리가 동글동글한 별 같아요. 보일 것도 같고 주울 것도 같아요.”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형상을 가지고 소리에 비유하는구나. 이는 어린아이가 무의식중에 표현한 천성의 지혜와 식견이다. 예전에 한 어린아이가 별을 보고 달 가루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말은 예쁘고 참신하다. 때 묻은 세속의 기운을 훌쩍 벗어났다. 속되고 썩은 무리가 감히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 『이목구심서』1 / 48p

 

 

조선의, 조선만의 조선의 것을 담아내라

  화이론적 세계관이 해체된 자리에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자신의 공간인 ‘조선’에 대한 관심이 급속하게 성장해간다. 때문에 18세기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조선의 역사, 문화, 풍속, 지리는 물론 곳곳을 하나하나 탐구하고 저술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이른바 옛 것이 아닌 지금의 ‘조선적인 것’을 담아내는 일이다. 이덕무는 자신의 삶과 생활, 감정이 뿌리박고 있는 조선의 지금을 담아낸 시문은 살아 있는 글이지만, 중국의 옛 시를 비슷하게 모방하거나 답습한 시문은 죽은 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연암 박지원은 이덕무의 시야말로 참다운 조선의 시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겸재 정선이 진경산수화를 통해 조선 사람의 모습을 묘사하기 시작한 최초의 화가였듯이 이덕무를 필두로 조선의 고유한 색과 풍을 추구하는 문화사의 흐름은 ‘진경 시’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확대된다. 이 책에는 이덕무 외에도 박지원, 유득공 등의 다채로운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하나하나가 큰 화폭을 담아낸 듯 아름답고, 정교하며, 유려하다. 당대의 풍속 또한 눈앞에 보는 듯 생경하게 담아내니 이를 쉽게 넘기지 말고 제대로 탐독하는 재미를 느껴보면 좋을 듯하다.

 

 

따라서 좋은 문장이란 자연스러움과 천진함이 온몸에 스며들어 자신의 감정과 마음이 가는 대로 언제 어느 곳에서나 글이 나올 때 이루어진다. 그것은 “삶의 본연과 천진을 깎아버리는 일이 없이, 진부하고 낡은 잔재들을 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옛 사람의 글 쓰는 법과 길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옳지 않지만 그대로 따르는 구속을 받아서는 더더욱 안 된다. (…중략…) 옛 사람의 글을 배척하지 마라. 오히려 열심히 배우고 익혀라. 그러나 그 글이 아무리 좋고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본뜨거나 흉내 내려고 하지 마라. 또 억지로 꾸미려거나 인위적으로 지어내려고 하지도 마라. 그냥 자신의 진실한 정감과 참다운 마음을 표현하는 데 힘써라!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글을 갖게 될 것이다. / 170p

 

 

  진정한 조선의 모습을 담아내려는 그의 뜻은 「서해여언」이라 제목을 붙인 여행기에서도 빛을 발휘한다. 이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개성과 해주와 장연 일대에 이르는 서해 중북부 지방의 독특한 풍속과 역사 문화를 고찰하고 기록한 일종의 풍속 역사서로, 무엇보다 오늘날 가보지 못하는 땅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그 가치를 증명한다. 임꺽정에 관한 민간의 풍설을 옮긴 기록이나 ‘황당하다’의 어원이 알고 보면 해적이 몰던 배 이름 ‘황당선’에서 비롯된 것으로 유추되는 글은 꽤 흥미롭다. 민간에서 전해오는 호랑이 물리치는 비법 또한 재미있다. 이 외에도 『사소설』을 통해 세시풍속과 민간신앙, 민담, 설화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어 조선을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으니 보는 재미가 배로 늘어난다. 그러나 핵심은 사대부가의 뼛속 깊이 박혀 있는 신분 차별과 성차별의 제도, 문화에 강력한 경종을 울린다는 점에 있다. 결국 역사의 시간적 공간적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듯이 18세기 조선이 전하는 메시지를 오늘날에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저자의 뜻을 새겨봄직하다.

 

 

만월대는 옛날 고구려의 부소갑군이다. 군이 되었을 당시에는 훗날 고려의 태조 왕건이 이 언덕에 주춧돌을 세워 대궐을 지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또한 주춧돌을 세울 당시에는 500년 후에 나라가 망해 주춧돌 위의 기둥이 차디찬 잿더미로 변할 줄 어찌 알았겠는가? 더욱이 그로부터 300여 년이 지난 겨울철 어느 날 해질녘에 내가 홀로 이 주춧돌 위에 서서 그 옛날을 애도할 줄 어찌 알았겠는가? 다시 300여 년이 지난 어느 겨울철 해질녘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어 홀로 이 주춧돌 위에 서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또한 몇 백 몇 천 년이 흐른 후 이 주춧돌이 사라져 누구 집의 섬돌로 변할지 어찌 알겠는가? - 「서해여언」/ 281p

 

 

동아시아의 흐름을 통찰하고 북학의 뜻을 세우다

  책의 2부에서는 조선을 넘어 청나라, 일본을 아우르는 동아시아 전반에 대한 이덕무의 지적 호기심과 그 속에서 개방적인 사고, 이용후생의 가치를 전하려는 북학의 뜻을 담고 있다. 당시에는 청나라를 멸시하고 미개한 야만족의 나라로 멸시하는 분위기였지만, 이덕무를 비롯한 북학파는 조선을 크게 개혁해 부국안민의 나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비록 오랑캐라고 하더라도 찾아가서 스승으로 섬기고 배워야 한다하여 직접 청나라로 연행을 간다. 그곳에서 조선과 청나라의 학문적, 문화적 격차를 자각하여 북학을 통해 조선의 학문과 문화 수준을 획기적으로 개혁할 필요성을 새기기도 하고 중화주의에서 벗어나 어느 곳이나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혁신적인 사고를 갖게 된다. 또한 천주교와 서학을 분리하여 실용주의적 접근방법을 제시하는 발판을 마련하고, 조선과 청나라 지식인간의 인문학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지식과 정보 교류에 기여한다.

 

 

천하의 수많은 물품과 엄청난 재부(財富)가 모두 이곳에 모여들어서 하루 종일 물품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넘쳐났다. 아마도 이러한 모습을 보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라 것이다. “부유하다면 부유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백성의 생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물품을 전부 불살라버린다고 해도 무슨 손해가 있겠는가?” 이 말은 확실히 옳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개 푸른 산과 흰 구름은 모두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푸른 산과 흰 구름을 사랑한다. 만약 백성들의 생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해서 골동품이나 서화를 좋아할 줄도 모르고 알지도 못한다면 그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 박제가, 『북학의』「내편」, <고동서화> / 391p

 

 

  이덕무의 업적 중 빛나는 것 하나는 일본학의 최고 권위자였다는 사실이다. 청나라를 멸시했던 시대 분위기는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이덕무는 일본에 대한 닫힌 인식에서 벗어나야 우리에게도 발전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조선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외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세우기 위해서는 외국에 대한 폐쇄성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믿은 것이다. 당시 일본은 상당한 수준의 문명국에 도달했는데 이는 농업보다 상공업을 중시하는 경제구조와 신분 질서에 있다고 분석하면서 그 뜻을 『청령국지』에 수록한다. 같은 시기에 박제가가 『북학의』를 통해 청나라의 제도와 문물, 사회와 풍속 그리고 상공업과 기술 등을 항목별로 담아내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북학파의 의지를 전했다는 점에서 이 두 책은 의미가 깊다. 안타까운 것은 두 책의 가치를 나란히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북학의』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청령국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전히 폐쇄성이 짙은 일본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정조를 일컬어 갖가지 개혁 정책 및 탕평을 통해 대통합을 추진한 위대한 왕이었다고 기억하는 것은 이 같은 북학파들의 부단한 의지가 빛을 발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 모두가 기존의 사상에서 완벽하게 물러설 수 없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삶을 관통하는 개방성과 혁신성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귀감으로 삼을 만한 정신임은 분명하다. 정부의 주도 하에 ‘문화계의 블랙리스트’가 생성되었다는 뉴스 소식을 듣고 나니 이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더 이상은 이 시대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눈과 귀, 손과 발을 묶는 행태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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