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3
김시준.김현우,박재용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경계를 넘는 새로운 시도 속에 진화가 있다!

진화와 멸종을 거듭하여 탄생한 위대하고 아름다운 생태계의 역사!

 

 

  그 어떤 위기의 순간에서도 살아남으려고 노력했기에 아름다운 존재, 생명. 45억년이라는 긴 역사 속,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구의 환경 속에서 어떻게 적응을 하고 변화를 하느냐에 따라 생존이 결정되었기에 생명들은 숱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맞서야 했다. 살아 숨 쉬는 이 지구라는 공간 속에서 필연적으로 ‘진화’와 ‘멸종’은 거듭되어 왔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인간 역시 늘 그 경계에 놓여 있었다. 유사 이래 영원한 단일 종은 없었고, 그 어떤 생물이라도 홀로만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수많은 진화 끝에 마침내 승리한 생태계의 최종 승리자인 듯 착각을 하고 있다. 이 인간의 오만함 앞에서 우리는 애초에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 역사를 만든 것이 아니라 한없이 작고 배제된 생명들이 진화를 통해 일구어낸 작은 승리가 결국 이 땅의 역사를 만들어왔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경계: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는 이러한 경계 너머의 세계를 향한 열망과 끊임없이 변화를 갈망하고 진화를 거듭하려 했던 생명들의 이야기이자, 인류에 대한 준엄한 메시지이다.

 

 

경계에 내몰린 생명들의 눈부신 진화

 

  40억이 넘는 지구의 오랜 역사 속에 수많은 대멸종의 시기들이 존재했다. 생물들이 육지로 대거 올라오는 계기가 된 오르도비스기 대멸종, 지구상 생명의 98%가 사라진 페름기 대멸종, 공룡이 세상의 주인이 된 트라이아스기 대멸종, 포유류를 역사의 전면에 내세운 백악기 대멸종이 대표적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수면의 높낮이, 온도, 산소의 농도 등 크건 작건 지구는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해왔고 그 간극 속에서 생물들은 기존의 생태계에서 새로운 생태계로 넘어가는 모험을 해야만 했다. 그들은 물가에서 밀려나 뭍으로 가야했고, 뭍에서 바다로 가야했으며, 땅에서 밀려 하늘로 날아가거나 지상에서 경쟁에 밀려 흙 속에 삶의 터전을 마련해야 하기도 했다. 더욱이 우리 인류는 숲에서 초원으로 경쟁에서 밀려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이족보행을 선택함으로써 진화를 거듭했다. 즉, 이들은 하나같이 변화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몸의 기능들을 버리거나 새로이 취득함으로써 이른바 ‘진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생태계 너머로 발을 내디뎠다 미처 적응하지 못하거나 변화를 멈추었던 다수의 생물들은 ‘멸종’의 비극을 맞았다.

 

 

진화란 그런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과 무수히 많은 시도를 담보로 하여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시도들은 지구 역사의 한 장면으로만 남게 된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무수한 ‘그침’ 속에 단 하나 ‘이어짐’의 역사다. 하지만 그 후손이 이어지지 않고 멸종했다고 해서 그들이 실패했다고 단정하지는 말자. 그들은 그저 그 장소, 그 시간에서 유전자의 이어짐을 ‘그쳤을 뿐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그 수많은 유전자 중 운 좋게 이어진 후손 중 하나일 뿐이다. / 9p

 

어떤 기관이 사라지는 과정을 퇴화라고 한다. 보통 퇴화는 진화의 반대방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진화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오해다. 진화는 애초에 어떤 방향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필요 없어진 기관을 줄이고 그 에너지와 노력을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여타 행위와 기관에 집중하는 일이 진화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한 기관의 퇴화는 그 기관을 가진 개체의 입장에서 보면 진화인 것이다. / 31p

 

 

  책에서 언급되는 많은 종의 생물들이 진화와 퇴화를 거듭하는데, 그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민물고기의 경우 수온의 변화가 잦은 민물의 특수한 사정 때문에 아가미 외에 래버린스기관이라는 별도의 호흡기관을 확보하거나 장호흡을 하기도 하고 부레를 통한 폐호흡을 하는 등의 다양한 진화를 이루어냈다. 뱀의 경우, 가늘고 긴 몸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폐가 퇴화되고, 땅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발도 사라졌으며, 먹이를 통째로 삼키기 위해 미각도 버렸다. 흙 속으로, 땅속으로 들어간 무족영원, 뱀, 두더지를 비롯한 포유류 등의 생명들은 팔다리를 없애고, 눈이 멀고, 모습을 완전히 바꾸는 긴 세월에 걸친 진화를 버텨내고 이겨내기도 했다. 이렇게 자신의 한계와 자연의 경계를 넘어간 생물들에 의해 지구는 좀 더 거대하고 다양한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혜택을 받은 존재들이다. 숱한 생명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진화를 거듭한 끝에 지구 역사상 가장 폭발하는 아름다움을 뽐내는 시기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빨라지는 ‘멸종’의 시계

 

  역사상 대멸종과 비할 수 없을 만큼 소소한 멸종은 그보다 더 많았다. 멸종은 생태계에 빈자리를 만들게 마련인데, 빈자리가 생기면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한 생명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하지만 인간이 최종 포식자가 되고 생태계의 영역에서 벗어나 모든 종들을 경계로 몰아붙이고 파괴해감으로써 생물들이 경계를 넘어가고 빈자리를 채우려는 진화, 그 위대한 기회를 막고 있다. 즉, 인간이 스스로 대멸종을 초래하고 있는 셈이다. 거북의 경우, 백악기 대멸종에서 의연히 살아남아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보기 드문 신생대 해양파충류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먹고, 잡아가고, 산란할 장소를 뺏는 등의 행위로 2억 년이 넘는 역사가 막을 내리게 생긴 것이다. 고래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래 고기와 고래 기름을 얻기 위해 포경산업이 활발했던 과거, 인간들이 자행한 무자비한 살포로 인하여 오늘날 고래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바다소 역시 인간들이 그들의 삶을 뒤흔들었고 결국 멸종해 버렸다. 살아남은 바다소의 나머지 네 종인 아마존 매너티, 서인도제도 매너티, 아프리카 매너티, 듀공도 오늘내일하는 운명이라 하니 인간이 초래한 멸종의 시계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빨리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변하지 않는다면 21세기가 가기 전에 현재 존재하는 해상포유류의 절반 이상이 멸종하고 말 것이라는 점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런 비극적인 일이 발생한다면 거의 2억 년에 달하는 중생대의 기나긴 시간을 전부 합쳐 멸종한 해상파충류의 종보다도 더 많은 종이 짧은 1만 년의 인류 역사 속에 일어나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생명이 같은 생명에게 이토록 폭력적인 역사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암담해진다. 인간의 힘은 어떤 의미로든 대단하다. / 163p

 

인간이 개척한 곳마다 기존의 생태계는 배제된다. 농경지를 일구면 그곳에 살던 식물들이 사라지고, 식물과 함께 살던 동물과 균도 함께 사라진다. 도시를 세우면 숲이 사라지고 숲과 함께 하던 동물들이 사라진다. 도시를 세우면 숲이 사라지고 숲과 함께하던 동물들이 사라진다. 도로를 놓으면 도로 양쪽으로 자유롭게 오가던 동물들은 고립된다. 항구를 만들면 그 주변의 생태계가 파괴된다. 인간의 영역이 확장될수록 기존에 존재하던 지구 생태계는 줄어든다. 인간의 탈출은 이제 인간의 공습이 되었고, 한정된 지구에서 생태계는 지구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이후 최초로 영역이 축소되기 시작한 것이다. / 267p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시리즈 세 번째인 <경계>는 다큐를 텍스트로 전환한 만큼 다양한 시각적 자료와 입체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꽤 좋은 과학도서로 완성되었다. 청소년들에게도 생명과 환경 보호를 일깨워줄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스스로를 변화시킨 다양한 생물들의 진화 과정을 보며 경이로움을 금치 못했다. 나아가 우리 인간이 그러한 자생적인 노력을 우리의 기준으로 차단하고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스스로가 위대한 진화를 이루어왔던 인간에게 경의를 표하는 만큼 많은 생물들에게도 그러한 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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