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피아노 그 여자의 소나타
최지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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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되찾은 열정 속에서 피어난 로맨스!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한 판 대결을 그린 아름다운 성장기!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그 아찔하고 설렘 가득한 이야기에 밤잠 설치며 읽었던 로맨스 작품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오만과 편견>을 읽으며 사랑을 할 때 빠지기 쉬운 감정들을 이해하였고, <구해줘>를 통해 사랑이라는 위대한 운명에 대해 생각했으며, <해를 품은 달>로 한국 고유의 정서를 녹아낸 애절한 인연에 애달파하기도 했다. 일상에서 채우지 못하는 환상과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가치를 재확인한다는 데 있어 로맨스 작품이 가지는 의미는 내게 있어 좀 남다르다. 요즘 같이 어수선한 시국에 내내 불편한 소식들만 접해서일까, 마음에 스미는 부드러운 핑크빛 색감의 로맨스 책 한 권에 격한 반가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건반 위에 놓인 두 남녀가 마주보는 그림에서 오는 따뜻한 정서는 물론,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히 채워질 이 책의 소재가 더더욱 마음에 든 까닭이다.

 

 

북에서 온 이방인과 천덕꾸러기 피아니스트

 

  <그 남자의 피아노 그 여자의 소나타>는 제목 그대로 피아노를 소재로 한 로맨스 소설이다. 소설의 남자주인공인 원동호는 북에서 탈출한 피아니스트였다. 당의 배려로 모스크바 유학을 떠나 러시아 국립음악원에서 재능을 빛냈으며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잇달아 수상하며 ‘아시아의 호로비츠’라는 극찬까지 받은 촉망받는 인재였다. 이내 유학 기간이 만료되어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변변한 독주나 협연도 없이 군부대 행사에 불려가 합창단 반주를 맡는 정도의 활동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공화국 최고 실세자가 눈독들인 여인을 사랑하게 된 이유로 반동분자에 내몰릴 위기에 처해 남한으로 도망쳐야했다. 그러나 남한 음악계에서 원동호는 철저히 이방인일 뿐이었다. 원동호에 밀려 늘 2인자 신세였던 노수창의 지시로 두 개의 손가락이 잘리는 사건까지 겪으면서 위기에 내몰린 그는 그나마 돌 구이 판 공장을 운영하며 음악계와 멀어진다.

 

 

“기래 이방인의 접근을 일체 거부하는 배타적인 세계 말이다우. 다른 일반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도록 오직 그들만의 난해한 언어로 대화하고 그래서 그들만의 이익을 오롯이 추구하던 집단이 바로 옛날 제사장의 무리들 아니갔네? 생각해보라우, 기독교의 예수님을 골고다 언덕에 못 박으로 꾄 자들이 과연 누구였네?” (……중략……)

“자신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이방인은 결코 환영하지 않는 족속, 바로 그네들의 제사장들이디.” / 312p

 

 

  한편, 여자주인공인 채율은 사랑하는 남자 모용하를 만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서둘러 귀국을 하다 아버지의 죽음을 뉴스로 접하게 된다. 빈털터리 상태였던 채율은 채권단에 쫓겨 오도가도 하지 못한 채 우연히 원동호를 만나게 되고, 우연찮게 갖은 사건사고를 일으키게 되면서 그의 돌 구이 판 공장에 얹혀살기로 한다. 낯선 남한에서 정착해 살기 위해 마음에 벽을 두르고 살게 된 원동호에게 채율은 그저 싸가지 없고 철없는 몰락한 부잣집 딸이었고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진 그들은 내내 티격태격하면서 결코 융화될 수 없는 시간을 함께 해나간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되찾은 열정, 그 속에서 피어난 로맨스

 

  애초에 부잣집 딸로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왔던 채율과 북에서 온 까칠남 원동호는 어울릴 수 없었지만 몇 번의 위기에서 서로를 구했던 그들은 어느새 마음을 열어 보인다. 특히나 원동호에게 금전적으로나 마음으로나 많은 빚을 지게 된 채율은 원동호의 회사가 큰 위기에 처하자 이에 보답하기 위해 단 하나의 기회, 3억원이 걸린 콩쿠르에 도전하기 이른다. 그리고 원동호는 채율의 스승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한때 원동호의 라이벌인 노수창이 그들 틈에 들어와 훼방을 놓고, 마침내 다른 피아니스트를 앞세워 채율의 수상을 방해하려고 든다. 항상 2인자에 머물러야 했던 노수창은 원동호를 꺾고, 채율까지 제 쪽으로 오게 하기 위한 욕망을 감추지 않는다. 마침내 대한민국 최대의 콩쿠르를 앞두고 그들은 운명 같은 피아노 대결을 펼치기 시작한다.

 

 

불현듯 노수창은 데칼코마니가 떠올랐다. 종이에 물감을 바르고 두겹으로 접었다 떼면 양편에 같은 무늬가 나타나는 회화 기법……. 반채율을 꺾어 피폐한 과거를 보상받고자 하는 귀인의 욕망은 원동호를 짓밟고 싶어 하는 노수창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의 욕망은 한 쌍의 데칼코마니였고 그런 면에서 두 남녀는 환상의 복식조였다. / 301p

 

 

  소설은 피아노를 매개로 서로의 과거를 이해하고, 현실을 극복하려는 젊은 청춘들의 도전을 아름답게 그려나간다. 잘린 손가락에 대한 트라우마를 지우고 용서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려는 원동호는 물론, 잃어버렸던 열정을 되찾아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려는 채율의 의지도 단단하게 채워나간다. 갈등은 피아노에서부터 비롯되었으나, 끝내 피아노로 봉합되는 과정 또한 담담하고 성숙하여 한 편의 청춘 드라마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미지근한 감정선, 로맨스는 살짝 아쉬워

 

  이 소설에 있어 살짝 아쉬운 점이 있다면 두 남녀 주인공 사이에 오가는 기민한 감정선이 다소 무디다는 점이다. 함께 의기투합하여 위기를 이겨내고 서로의 성장에 힘이 되어주는 여느 청춘 드라마에서 그치기만 하는 것이 아쉽다. 연민과 인정으로 시작되었던 동호의 감정이 차츰 사랑으로 발전되기까지 보다 섬세하게 그려졌다면 어땠을까. 그것은 채율 또한 마찬가지여서 마음을 흔들어 파고드는 두 사람의 로맨스다운 장면이 부족했던 게 내내 서운하기까지 하다. 또한 몇몇 소개되는 피아노곡에 대한 묘사도 단조롭게 그쳤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앞에서 지적했던 단점을 역으로 바꿔서 생각해보자면 전체적으로 감정에 얽혀 스토리가 처지거나 느슨하게 늘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장점으로 꼽을 만하다. 가독성이 높아 빠르게 잘 읽히며, 다양한 작품의 프로듀서로 활약한 저자의 이력을 감안하면 충분히 영상화될 만한 개성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란 생각도 든다.

 

 

  흔히들 청춘이 아름다운 건 상처받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어떤 형태로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호와 채율을 통해 우리는 밑바닥의 좌절과 모욕을 감내해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의지하고 응원하다보면 마침내 밝은 무대에 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지금 이 땅에는 많은 용기와 용서가 필요한 때인 듯하다. 동호와 수창이 앙상블을 이룬 연주를 통해 용서와 화해의 길을 찾아갔듯 이 책을 통해 많은 청년들이 진심으로 서로를 안아줄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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