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니다, 우주일지
신동욱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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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엘리베이터를 건설하기 위해 소행성을 납치하라!

우주 덕후를 자처하는 배우 신동욱의 유쾌한 우주과학소설!

 

 

  우주과학이라는 분야를 하나의 완성도 높은 창작물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유수의 자문위원과 오랜 탐구, 작가 스스로 이야기로 구현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와 철학 및 지식들이 모두 갖추어져야만 가능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인터스텔라>, <그래비티>와 같은 작품이란 인간이 우주로 나아가는 것만큼이나 위대한 도전 끝에 탄생한, 우주의 그 광활한 크기만큼이나 가늠할 수 없는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 배우에게서 우주과학소설이 탄생했다. 천문학자도 아니고, 공학자도 아닌, 희귀난치병 판정을 받고 오랜 기간 투병의 시간을 보냈던 배우 신동욱에게서 말이다. 그는 “나는 조금 아프지만, 자랑스러운 30대 ‘우주 덕후’다” 라며 스스로를 그저 마니아 이상의 열정을 가진 덕후라 자처했을 뿐이다. 그간 남녀의 로맨스를 다룬 드라마에서 활약했던 배우의 활동내력을 생각하면 의아할 따름이었다. 더군다나 그저 우주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작품의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천재 이론물리학자인 아내를 위해 소행성을 납치하러간 대담한 남자, 맥 매커천!

  주인공인 맥 매커천은 41살에 T그룹의 CEO,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사업가, 전기 자동차의 아버지, 태양광 발전의 아이언맨, 화성이주를 꿈꾸는 개척자, 바람둥이, 현실계의 토니 스타크라 불리는 초긍정주의자이다. 이 화려한 수식어를 뒷받침해주듯 그는 지구 최초로 그야말로 별도 따다 주는 남편이다. 한국인에 천재 이론물리학자인 아내 김안나는 우주 엘리베이터를 건설할 때 필요한 균형추로 소행성 AC5680을 지목했고, 이를 사로잡기 위한 범국가적 프로젝트에 남편인 그가 직접 나선 것이다. 말 잘 듣는 애처가이자 우주를 사랑하는 그는 안전하게 지구로 소행성을 ‘배송’하기 위해 일명 페덱스 1,2,3호를 탄 대원들과 함께 약 2억 3천만km 떨어진 곳까지 날아간다. 이렇듯 소설 <씁니다, 우주일지>는 주인공 맥 매커천의 우주 생활 적응기로, 기발한 상상력과 대담하고 능구렁이 같은 기질의 유쾌함이 돋보이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칼 세이건…… 난 우주를 사랑했던 그들의 글을 읽으며 자랐어. 그들이 원했던 대로 우주에 대한 사랑의 씨앗이 내게도 전해졌던 거지. 나는 단지 씨앗만 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씨앗을 재배해서 내 손으로 열매를 따고 싶었어. 그 뿐이야. 우주에 대한 꿈을 좇다 보니까 우주만큼 일이 커져 버렸긴 했지만.” / 107p

 

 

왜 하필 소행성 AC5680을? 저자 신동욱이 지향하는 우주소설이란?

  화성에 집을 짓고 살고 싶었던 남자, 맥은 이주 계획에 필요한 우주 엘리베이터를 건설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를 실현시켜줄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 김안나는 6만km에 달하는 탄소나노튜브 케이블을 만들고 우주에서 무게 중심축을 잡아줄 균형추가 필요했다. 제작하는 방안도 있고 우주 발사체들을 여러 대 결합해서 균형추를 만드는 방안도 있지만 그녀는 소행성 포획이 가장 저렴하고, 그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과학적 이득이 더 많다고 설명한다. 많은 소행성들 중에서 궤도상으로나 크기와 질량을 봤을 때 균형추로 적합한 것이 바로 소행성 AC5680였다.

 

 

“모습이 고구마 같지요? 이 고구마가 유리한 점은 지구의 입장에서 볼 때 보이는 면적이 넓다는 겁니다. 세워져 있는 모양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우리가 꼬셔오기에도 수월합니다. 질량, 크기 같은 것들은 덤이라고 할 수 있지요.” / 139p

 

 

  소행성을 포획하기 위해 우주로 나아가는 이 소설의 접근법은 상당히 가볍고, 때로는 유머에 가깝기까지 하다. 이거 정말 가능한 일 맞아? 하는 의구심이 몇 번이나 고개를 든다. 게다가 아무리 아내와 우주를 사랑한다지만 엄청난 자본이 드는 우주 사업에 뛰어들고 심지어 우주로 직접 날아가는 무모함이라니. 문득 특유의 사업가 기질을 앞세운 이 호탕한 남자의 매력과 기발한 상상력에 사로잡힌 나머지 설득력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이것이 저자가 이 소설을 통해 지향하고자 하는 점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확실히 군인들처럼 충돌시키고 때려부수지 않아서 좋습니다. 뭐든지 꼬여 올 때는 서서히, 그리고 부드럽게 꽤야 완전히 내 것이 되는 법이니까요.” 라는 대사가 그러하듯이 이 소설에는 우주과학소설에 지녀야 할 당연한 과학적 근거나 치밀한 잣대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또 그럴 필요도 있겠나 싶다. 근거를 너무 집요하게 파고든다면 창작이라는 고유의 가치가 훼손될 수도 있다. 그저 재미있게 즐기기, 우주 과학을 소재로 하여도 따분하지 않고 상상력을 즐기기만 하여도 충분하지 않느냐고 저자는 말하는 듯하다.

 

 

우주적응기에서 우주표류기로!

  맥은 아내에게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꼬리 부분의 궤도 수정용 엔진이 순간적으로 엄청난 추력을 제공하면서 왕복선의 선체가 기울어졌다가 구멍이 나는 충격을 받고, 동시에 동료를 잃고 그도 함께 표류되는 사고를 겪게 된다. 그는 극적으로 생존하게 되지만 지구에서는 그를 죽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 만큼 통신은 두절되고 식량도 떨어져간다. 이는 마치 영화 <마션>과 흡사하다. 맷 데이먼이 그러했듯 우주 미아가 된 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 돌아가리라 결심하며 일지 쓰기를 멈추지 않고 생존을 향한 분투를 계속 해나간다. 그 와중에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이 느끼는 극도의 불안감과 공허함에 대해서 저자는 꽤 실감나게 표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써 진지하게 쓰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몰랐다. 벙어리가 되는 것이 이렇게 어둡다는 사실 말이다. 말을 하지 않으니까 내 자신이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죽음의 뱃사공, 스틱스 강을 노 젓는 카론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1달만 버티고 나면 지구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그때까지는 나의 어여쁜 안나와 실컷 대화를 나눌 생각이다. 외롭다보니 그렇게 됐다.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마시길. 그리고 지금 든 생각인데 지구에 돌아가면 동물 애호가가 될 생각이다. 강아지가 오죽하면 짖어 대겠는가. 나는 강아지들도 외로워서 짖는 것이라고 믿는다. 외로우면 짖는 거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 337p

 

 

  맥이 느끼는 공포의 크기는 반드시 유머에 비례한다. 아마도 저자는 고립된 한 인간의 철저한 외로움을 어둡게 그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윌슨처럼 맥은 끔찍한 외로움을 기저귀 패드에 아내를 그리는 것으로 달래는 장면이나, 식량을 대체해 먹는 응가응가 육포를 설명하는 것이나 미리 다운로드해 받아간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심란한 마음을 눙치는 모습들이 그러하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시종일관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광활한 우주를 유영하듯 흥미로운 상상력과 우주과학에 대한 지적 즐거움으로 나아가다보면 한낱 작은 존재일 뿐인 인류의 오만함을 마주하게 되고 어느새 숙연해지기도 한다. 끝도 없는 심연, 우주와 같은 막막함에 사로잡힌다 하여도 맥처럼 절대 긍정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 또한 충분히 와 닿는다. 이는 투병생활을 겪은 산 증인으로써 모두에게 전하는 저자의 울림 있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저 잘생긴 배우가 아니라 이렇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어서 돌아온 신동욱을 앞으로 주목하고 응원해야겠다.

 

 

자, 그럼 소행성 포획 미션에 모두들 동참할 준비가 되었는가! 3,2,1,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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