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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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아무라도 알아주기를 바래!

진정한 ‘자아’를 찾아 떠나는 브릿마리의 놀라운 여행! 

 

 

까칠한 브릿마리 여사의 외출은 그렇게 시작된다!

 

  남을 평가하지 않는다지만 알고 보면 편견으로 가득하고, 인생은 늘 변함없이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에 리스트에 적힌 일정대로 행동해야 하며 어디든 과탄산소다를 반드시 챙기고 다녀야 할 정도의 결벽증세를 지닌 여사, 브릿마리. 그녀는 40년 동안 살던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었고, 이케아 가구도 조립할 줄 모르는, 그저 바람 부는 발코니와 자신의 수고를 알아주는 남편이 세상의 전부였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간 사업에 몰두하느라 바빴던 남편이 알고 보니 바람을 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 이상 한 집에서 살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소설 <브릿마리 여기 있다>는 바로 남편의 그늘에만 머물렀던 그녀가 집을 나서기로 결심하여 고용센터를 찾는 데에서 시작한다. 문제는 일을 구하기 위해 고용 센터 직원을 구워삶아도 모자랄 판에 직원의 교양 없어 보이는 헤어스타일과 행동들이 탐탁지 않아 지적하는 그녀의 말투가 상당히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다. 연락을 할 것 같지 않지만 조만간 연락을 주겠다는 의례적인 말을 하는 직원에게 우리의 까칠한 브릿마리 여사는 무턱대고 약속 시간을 잡고 찾아가 괴롭히기까지 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딱하게 느껴질 정도로 브릿마리에게 쩔쩔매던 직원은 40년 동안 일을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목숨을 거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브릿마리는 어떤 여자가 아파트에서 죽은 지 몇 주 만에 발견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이야기하며 말한다.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고, 직업도 없었던 그녀의 존재를 아는 이가 없었다고. 일을 하면 출근하지 않았을 때 적어도 사람들이 알아차리기는 할 것이 아니겠냐고. 오늘날 ‘관종’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던 것은 인정받고 싶고, 관심 받고 싶은 당연한 인간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다. 브릿마리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의 그늘에서만 지냈던 그녀도 이제 여기 내가 있음을, 누군가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차츰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일을 하려는 이유는 악취로 이웃 주민들을 괴롭히는 건 본받을 만한 일이 못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아무라도 알아주었으면 하거든요.” / 39p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는 보르그 마을   

 

  브릿마리는 폐쇄된 것이나 다름없는 보르그라는 지역의 레크리에이션 센터 관리직을 얻게 된다. 이 일자리는 보수도 형편없을 뿐 아니라 임시직인 데다 3주 뒤면 폐쇄 여부가 결정이 난다. 마을은 대부분이 매물로 내어놓은 집들이 대부분이라 삭막하기 그지없다. 고작 피자 가게인데 우체국과 자동차 수리까지 겸하고 있는 피즈레이라는 식당이 눈에 띌 뿐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주인인 미지의 인물(이름이 끝끝내 밝혀지지 않는다)과 축구를 하는 아이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 축구공에 차 문 한 짝과 머리를 세게 얻어맞는 것으로 첫 대면식을 치른다. 보르그는 브릿마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동네임에는 분명하다. 그녀가 일할 센터나 머무를 집, 자주 드나들어야 할 피자 가게는 위생과 전혀 거리가 멀고, 마찬가지로 그녀가 싫어하는 축구를 하는 아이들과 수시로 맞닥뜨려야함은 물론, 몇 안 되는 사람들도 도저히 어울릴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녀는 연고도 없는 이 낯선 곳에서 타인을 만나고 스스로를 돌이켜볼 시간들을 갖게 되면서 서서히 자신의 처지와 앞으로의 삶에 대한 수많은 생각들과 마주하게 된다.

 

 

화분에는 흙만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밑에서 꽃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겨울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것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며 물을 주어야 한다. 브릿마리는 자신의 마음속에도 그런 믿음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그러길 바라는 마음뿐인지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둘 다 없는지도 모른다. / 68p

 

 

  어느 모로 보나 자기보다 나았던 언니를 앞세운 부모를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브릿마리는 노력했다. 하지만 점점 더 퇴근을 늦게 하다 결국엔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 밑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브릿마리는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법, 자신의 앞날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을 참고 견디는 법을 터득했다. / 280p

 

 

  지난 날, 언니의 사고로 인해 그 어떠한 기대들을 모두 묻어둬야 했던 그녀의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드러남으로써 결벽증과 남들에게 까칠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태도들이 점차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람 사는 동네가 다 그렇듯 이 낯설기만 했던 마을에도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또 그녀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 줄 사연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녀의 까칠함 뒤에 숨겨진 따뜻한 마음을 사람들도 점차 이해하기 시작한다. 거기에는 뜻밖에도 축구가 존재한다. 그녀가 그토록 싫어하던 축구가 말이다.

 

 

인생을 끌고 갈 수 있는 힘, 그것은 축구

 

  굳이 브릿마리를 예로 들지 않아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축구에 대해 아예 모르거나, 심지어 싫어하기도 한다. 연인이나 남편이 축구 경기에 빠져서 함께 할 시간이나 드라마 채널을 빼앗기곤 한다는 등의 이유로 말이다. 브릿마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르그 사람들은 대부분 축구를 좋아했다. 적어도 그녀 주변에는 아이든 어른이든 축구와 연결되어 있었다. 특히, 보르그의 아이들은 감독이나 코치가 없이 자기네들끼리 팀을 이루어 축구 연습을 하곤 했다. 표적을 맞힐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만한 아이들도 없었지만, 그들의 축구를 향한 열정만큼은 커다랬다. 그런 아이들이 곧 있으면 열릴 대회를 위해 뜻밖에도 브릿마리에게 코치가 되어줄 것을 부탁한다. 축구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는 그녀에게 말이다. 하지만 점차 아이들과 교감하고 축구가 지닌 매력에 동화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앞으로 굴러 온 축구공을 있는 힘껏 차보기까지 한다. 공을 차지 않을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 안에서 변화의 힘을 감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축구는 인생을 끌고 가는 힘이 있죠. 늘 새로운 경기가 있으니까요.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니까요. 모든 게 더 좋아질 거라는 꿈도 있고요. 경이로운 스포츠예요." / 431p

 

나이를 먹으면 인간의 정신세계 속에 변화의 여지가 얼마나 남을지 궁금해한다. 앞으로 그녀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야 할까? 그들은 그녀에게서 어떤 면모를 볼 것이며, 그들을 통해 그녀는 자기 자신의 어떤 면모를 느낄 수 있을까? / 412p

 

 

  한 장소가 인간에게 이렇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니, 브릿마리는 자신에게서 열정이라는 들뜬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저 아무도 모르게 죽음을 맞고 싶지 않았던 그녀의 소박한 기대가 이제는 저 깊은 곳에 숨어 있었던 미래를 향한 꿈으로 나아간다. 이렇듯 <브릿마리 여기 있다>는 한 편의 시처럼 마음을 달뜨게 하고 일렁이게 하는 참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오랫동안 집안일만 하며 살아왔던 나의 엄마가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을 때, 뭐 하러 힘들게 일을 하려고 하느냐고 타박을 했던 생각이 불쑥 떠오른다. 어쩌면 엄마는 돈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들을 찾아보고 싶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그것을 말렸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불편해진다. 자식들이 모두 장성했으니 엄마도 ‘엄마’가 아니라 ‘나’로 살고 싶었을 텐데.

 

 

  곳곳에 깔깔거리며 웃게 만드는 유머러스한 대사와 삶을 관조하는 다양한 메시지들이 함께 잘 어우러진 작품이었기에 꼭 읽어보시라 단연 추천하고 싶다. 여담이지만 주부들이라면 이 소설을 읽은 뒤 자신의 집에 과탄산소다가 있다면 찾아보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찌든 때와 얼룩을 모두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이 천연세제의 매력에 빠지게 될 테니 말이다. 나 역시 사놓고 방치해두었던 과탄산소다는 물론 베이킹소다와 구연산까지 함께 제대로 된 사용법을 익혀 실천해보았더니 이렇게나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고마워요, 브릿마리. 당신 덕분에 나의 엄마를 생각했고, 나의 미래를 생각했으며, 깨끗한 집안을 만들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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