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김성한 지음 / 새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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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를 꿈꾸는 변호사의 멈출 수 없는 욕망의 질주! 

인생의 막다른 길에 섰을 때야 깨달은,

잃어버리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때때로 운명이란 덫은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헤어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끝이 보이는 결말, 더 이상 레일이 없는 운명의 폭주기관차에 몸을 실은 한 남자의 처절한 질주를 그린 <달콤한 인생>은 지독한 욕망의 운명론을 쫓는 스릴러 소설이다. 서른여섯 살, 결혼 오 년 만에 아내가 임신을 하고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집을 소유하였으며 억대 연봉을 받는 잘 나가는 변호사 앞에는 달콤한 청사진만이 오롯이 놓여있을 뿐이다. 하지만 남부럽지 않은 인생에도 권태는 찾아들고, 은밀한 일탈과 스릴감, 더 높은 층수의 인생을 꿈꾸는 집요한 욕망의 질주는 그의 인생에 낯선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다. 문득 그런 날이 있다. 집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다 앞바퀴에 맥주병이 퍽 하고 깨지는 것과 같은, 흔한 일상에 갑자기 침범한 불길한 징조처럼 사사로운 것들이 마음을 심란하게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살인 무기가 된다면? 그것이 인생이 뒤틀리는 전조가 될 줄도 모르고, 욕망으로 점철된 외도와 일탈이 자신을 갉아먹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남자는 실수로 살인을 저지르고야 만다.

 

 

  사건은 느닷없이 한 남자가 나타나 상우의 차 안을 기웃거리는 바람에 시작되었다. 의도된 듯한 출현, 심기를 건드리는 말투,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불길한 기분을 느꼈을 텐데 상우는 후회할 틈도 없이 낯선 남자와 시비가 붙었다. 하지만 상우는 순식간에 상대에게 제압당했고, 이때 준비된 것처럼 그의 손에 잡힌 물건이 바로 깨진 맥주병이었다. 왜 하필이면 맥주병이 그 자리에 있었던 건지, 죽은 자는 누구인지, 우연의 우연이 겹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른 새벽에 정확히 맞물렸던 것인지. 우발적이었지만 이미 운명의 수레바퀴에 휩쓸리듯 살인마가 되고 만 상우는 온갖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대로 도망갈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잃을 것인가, 정당방위라고 주장해볼 것인가, 과연 살인 전과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여러 가지의 가능성을 열거하고, 따져보며 합리적인 방법을 생각해내던 그에게 마치 구세주처럼 누군가가 나타난다. 바로 대권가도를 달리고 있는 5선 의원의 아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병호였다. 자신의 살인을 덧씌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포르투나는 행운을 관장하는 고대 로마의 여신이다. 그녀는 이마에 단 하나의 머리카락만을 가지고 있다. 이 행운의 여신을 만난다면 적절한 때 이마의 머리카락을 손에 쥐어 행운을 붙잡아야 한다. 잠시만 망설여도 포르투나는 지나갈 것이고, 그 후엔 붙잡으려고 아무리 손을 뻗어도 맨들맨들한 뒤통수에 손이 미끄러져 다가온 행운을 놓치고 말 것이다. / 57p

 

 

  상우는 병호에게 혐의를 씌움으로써 일단 용의자에서 벗어나기는 하지만 끊임없이 살인의 공포와 맞서 싸워야만 했다. 그러는 가운데 병호의 아버지인 함상진이 나타나 상우에게 뜻밖의 제의를 해왔다. 바로 병호의 변호를 맡아줄 것, 즉 자신의 덮어씌운 살인사건의 변호를 상우가 맡게 된 것이었다. 그는 이제 병호에게 형량을 지우고 자신이 저지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폭주하기 시작한다.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고독함과 귀신처럼 들러붙는 양심과 맞서 싸우며 어떻게 해서든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자신을 건져내기 위해 종횡무진 한다. 하지만 뜻밖의 목격자가 나타난다. 애초에 다른 이에게 누명을 씌우고 혐의를 벗으려했던 것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었지만, 적어도 상우의 눈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했던 일이 목격자가 자신을 협박하려 들면서 뒤틀리고 만 것이다. 그는 이제 협박범마저 더 이상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직감한다. 되돌리기에는 이미 너무나 늦어버렸기에.

 

 

지금은 그때 바라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행복은 깃털의 무게만큼도 늘지 않았다. 부족한 것들이 채워지기 무섭게 또 다른 바람으로 빈자리를 만들어 넣었다. 행복은 바람과 바람 사이의 아주 짧은 순간에만 존재했을 뿐이었고 곧 다시 허기에 시달렸다. / 268p

 

 

  그는 가진 것이 많기에 잃을 것 또한 많은 사람이었다. 살인을 정당화하면서까지 자신의 것을 지켜내려는 그의 이기심은 살인을 저지른 후 밀려드는 두려움과 죄책감보다 앞섰다. 그러나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는 분명 몰랐던 것들이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이 행복의 무게와 비례하지 않았다. 이 모두가 예전에는 간절하게 원하는 것들이었을 텐데 어느 순간 교만이, 나태함이, 저열한 욕망이 그를 사로잡아 더더욱 많은 것을 가지려는 데에만 몰두해왔다. 그는 자신이 쌓아놓은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뒤늦게야 깨닫게 된다. 간절함을 잊고 만족감만 채우려 살았던 그의 모습은 결국 소유에 집착하고 주변을 둘러 볼 여유조차 없는 우리의 자화상과 다름이 없다.

 

 

“우리가 교만했기 때문이야. 간절함을 잊고 만족만을 찾아왔던 거야. 겨울에 몸을 움츠리고 봄을 기다리다가도 막상 봄이 오고 나면 여름옷을 꺼내며 어서 다음 계절이 오기를 바랐던 거야. 생각해봐. 사는 게 사막이고 우리가 서로에게 물 한 컵이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됐을까.” / 306p

 

 

  이렇듯 유명 로펌에서 높은 승률을 거두며 승승장구를 하는 변호사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마치 운명의 장난인지 자신이 덮어씌운 살인사건의 변호를 맡아 완전범죄의 기회를 얻게 된다는 내용은 그간의 많은 스릴러물이 다뤄왔던 것과 닮은 구석이 있다. 형사가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은폐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영화 <끝까지 간다>, 아내와 이웃집 남자의 정사에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뒤 완전범죄를 위해 타인의 삶을 살아가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빅 픽처>가 이와 유사하다. 대권가도를 달리고 있는 5선 국회의원과 다운증후군을 앓는 그의 아들, 이제 막 임신을 한 주인공의 아내와 돈을 받고 몸을 파는 내연녀,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는 전직 형사, 이런 등장인물의 관계에서 스릴러가 완성되는 내러티브 또한 여느 작품과 비슷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은 시종일관 섬뜩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꽤 흥미진진하다. 아마도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를 하던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글의 특성상 문단을 맺을 때 다음 회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려는 작가의 의도적인 끝맺음이 특유의 빛을 발휘한 듯하다. 유사한 다른 작품들에 비추어 독자가 소설의 결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추락과 그것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싸움을 끝까지 쫓게 하는 힘이 있다. 사건과 자극적인 소재에만 몰두하여 자칫 놓칠 수 있는 주인공의 복잡한 심경도 잘 전달된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것을 지키되 앞으로 나아가려고 발버둥을 쳤던 남자가 인생의 막다른 길을 직면하면서 겪게 되는 절망과 고립, 처절함이 온몸을 옭죄어드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연민과 분개, 뒤틀리는 거북한 심사와 같은 복잡한 감정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다운증후군 환자가 이른 새벽에 사건 현장에 나타나거나 승혜가 전직 형사인 우식과도 연결되어 있는 등의 작위적인 연출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주인공이 변호사라는 점에서도 법정물이 주는 긴장감 있는 전개가 재미있게 연출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듯 속도감 있고 가독성 높은 전개로 한 번 손에 쥐면 끝까지 쉼 없이 몰입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다. 또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킬링타임용 스릴러물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완전범죄를 꿈꾸는 변호사의 멈출 수 없는 욕망의 질주를 통해 잃어버리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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