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실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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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여인, 소설가 김명순의 삶을 따라가는 여정이란 꺼지지 않는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가야 하는 일과 다름없었다. 책을 다 읽고 소설의 표지 속에 발그레한 두 볼과 단정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여인에게서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인텔리한 여성의 고고함이 그 첫인상이었다면 책을 읽은 후에는 사뭇 달라졌다. 인텔리는 그녀가 내리 붙잡고 놓지 못했던 ‘쓰고 싶다는 열망’의 허울이었을 뿐, 고고함 뒤에는 발 딛고 서있을 곳을 잃은 처지만큼이나 위태롭고 처연해 보이는 그림자가 숨어 있었다. 시절을 잘못 타고나 그 운명을 끝끝내 밝게 피우지 못한 인물이야 한둘이 아닐 테지만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라는 나름의 문학사적 의의조차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던 것은 내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이렇듯 소설 <탄실>은 자칫 역사에 묻혀버릴 뻔했던 한 여인의 치열한 문학에의 열망을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해 복원한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100편에 가까운 시와 20편에 가까운 소설과 에세이, 희곡 등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름을 오늘날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녀의 삶을 생생하게 구현해내는 작업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 안에서 산다고 했던가. 부족한 기록과 삶의 행적 및 진실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김명순의 작품 속 인물과 배경, 드러나거나 혹은 드러나지 않는 작가의 목소리 마저도 들을 수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미실>을 씀으로써 우리가 미처 몰랐던 ‘미실’의 존재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김별아 작가 특유의 힘이 <탄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작가 김명순의 복잡다단한 삶과 배움에의 열망, 극한으로 치달은 그녀의 위태한 감정까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디테일하게 완성했다.

   명순은 평양 성내에서 고집쟁이 기생이라 불리는 산월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대동강 변에서 무역상을 하는 김희경으로 그의 사업은 날로 번창해서 재산이 넘쳐날 정도였다. 하지만 기생인 어머니가 정실로 들어갈리 만무했고, 명순은 늘 기생첩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했다. 꽤 똑똑하여 학교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동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고, 사랑하고 사랑받길 기도했지만 늘 진실로 마음을 둘 데를 찾지 못했다. 외로움, 그녀가 평생 지고 갔던 아픔은 이미 유년 시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만인을 위한 축제는 없다. 벚꽃이 난분분한 한봄에 치명적인 자살이 시도된다. 완전해 보이는 세계의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균열을 감지케 하는 건, 외로움이다. 외로운 사람만이 삶의 표층 아래 균열된 실금을 본다. 삽시에 모든 것이 오싹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홀로이 전율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외로운 사람들은 무감한 세계로부터 겁쟁이로 취급된다. 그리하여 더욱 외로워진다. / 57p


  불행하게도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고 그가 죽음에 이르면서 어머니는 물론, 그녀와 그녀의 동생들은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으로 그녀는 빈털터리 고아가 되었지만 아버지를 대신해 유일한 혈육인 김희선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 조선 학생들에게 동경은 꿈의 동산처럼 이상향을 펼칠 수 있는 곳이었다 하니, 명순은 자신의 불타는 학구열을 마음껏 펼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운명은 엉뚱한 곳에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김희선의 소개로 알게 된 육사생도 리응준에게 겁탈을 당하는 불의의 사고로 이것이 조선에까지 추문으로 나돌게 된 비극이 벌어진 것이었다. 피해자는 자신이지만 아픔은 그녀가 모두 감내해야했다. 이미 한 번 벌어진 비극의 틈으로 수많은 억측과 오해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왔고, 사실이 아니라고 밝힐 수 있는 방법이란 그녀의 작품 밖에 없었다.

   명순은 살기 위해서 글을 썼다. 죽지 않기 위해 문학을 부여잡고 창작에 몰두했다. 그녀의 첫 단편소설인 「의심의 소녀」는 육당 최남선이 주간하는 잡지 《청춘》공모전에서 기성 작가였던 이상춘과 주요한에 이어 3등으로 당선되었다. 당시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이가 그 유명한 이광수였다. 전근대적 교훈성에서 완전히 벗어난 작품을 썼다는 극찬과 함께 근대 최초의 여성 소설가로 조선 문단계에 등단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이후 다시 일본으로 유학길을 올랐고 《창조》로부터 동인으로 참가할 것을 제안 받기도 했다. 하지만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이 그녀의 일생은 늘 위태로웠다. 늘 외로웠기에 사랑 앞에서 연약했던 그녀는 늘 그로인해 희생을 당해야했고, 그것은 그녀의 명성을 추락시켰으며 여전히 추악한 소문들이 발목을 잡았다.

   안타깝게도 그 중심에는 의외의 인물들이 숨어있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감자」, 「배따라기」의 저자인 김동인과 은파리라는 가명에 숨어 악랄하게 명순에게 독설을 퍼부은 이는 다름 아닌 소파 방정환이었다. 『상록수』로 유명한 작가 심훈 역시 짓궂은 장난으로 명순이 기자 시절 함께 일했던 여기자를 놀려대기도 했다. 충격적이었다. 문학사에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이 김명순을 폄하하고 그녀의 삶을 망쳐놓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들은 글로써 권력을 휘둘렀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사생활로 문단을 어지럽혔다고 생각한 그녀에게 자신들의 권력을 내세워 형벌을 내린 셈이었다.


맞서 싸워야 할 적이 보이지 않거나 적과 맞붙기를 두려워할 때, 사람들은 새로운 적을 만든다. 가까운 곳에서 가장 만만한 상대를 찾는다. ‘안정기’에 접어든 식민지의 작가들은 그렇게 서로를 물고 뜯었다. 그중에서도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이 없고, 돈도 집도 친구도 없는 그녀는 무방비 상태로 가느다란 목덜미를 드러내 약적(弱敵) 중의 약적이었다. / 19p

마침내 돌아왔다. 내처 평양으로 가지는 못하고 제2의 고향인 경성에 낡은 트렁크를 내렸다. 후미진 골목에 자리한 여관의 작은 방에선 쿰쿰한 냄새가 났다.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냄새를 풍긴다. 삶과 삶이 구겨져 접힌 지점에 곰팡이가 피어난다. 외로움이 푸른 꽃을 피운다. / 221p


  ‘풍랑은 모든 영혼을 살아 쳐가고 부패는 모든 육체를 점령하다’
   두 번째 유학마저 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동경에서 쓴 마지막 시구는 그녀의 고단한 처지를 대변했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녀를 음해하기 위해 쓰인 글이 신문화 운동의 중추적인 역학을 한다는 종합 잡지에 버젓이 실리는 현실은 변함없었다. 문학을 사랑했고, 그 속에서 살기를 희망했으나 그녀는 그저 스캔들 메이커에 방종한 자유연애주의자로 낙인찍혀 끝끝내 삶을 살아가는 의지마저 잃어버렸다. 아무 것도 없는 빈털터리의 그녀에게 그나마 마지막 남은 바람이 있다면 ‘아이’를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바람 앞의 등불인 처지에도 ‘모성’이란 감정이라도 붙들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이 안쓰러웠다. 거리에서 그녀와 마찬가지로 떠돌이가 된 아이를 자신의 양자로 삼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미 죽음을 택했을지도 몰랐다.


유달리 솔방울을 많이 매단 소나무가 있다. 가지가 휘어져라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솔방울을 매달고 고부라져 있다. 번식의 본능이 왕성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그때, 그러나 소나무는 건강치 않다. 솔잎은 빳빳하게 뻗치지 못해 휘늘어지고 푸른빛이 바랜 듯 누렇게 들뜨며 나무줄기는 말라 벗겨진다. 소나무는 죽어가고 있다. 죽어가는 소나무가 가장 많은 솔방울을 매단다. 일평생을 한자리에 붙박여 보낸 식물에게조차 번식의 본능은 그다지도 절박하고 처연하다. / 312p


  탄실은 그녀의 아명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딸이 열매처럼 탐스럽게 여물기를 바라며 부모가 지어 불렀던 이름이었다고. 그나마 사랑으로 충만했던 시절은 그때뿐이었기에 그녀는 작가가 된 후에도 필명으로 즐겨 사용했으며 작품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랑 받고 싶었지만 사랑 받지 못했고, 사랑하고 싶었지만 사랑할 수 없었던 현실의 벽을 외로이 글로써 이겨냈던 김명순. 그녀가 전하는 깊은 울림으로 인해 새삼 무엇으로든 표현할 수 있는 이 시대에서 살고 있음에 감사하고, 사랑을 받고 줄 수 있는 사람임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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