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번역합니다 - 고독해서 즐거운 번역가의 일
이진 지음 / 수오서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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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단순한 언어의 치환이 아닌,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작업이다!

30여 년간 나만의 방식으로 삶의 용적을 넓혀온 이진 번역가의 성실한 직업 탐구기!




  해외 저작물에는 으레 번역가의 이름이 들어간다. 요즘은 저자 못지않게 번역가의 경력을 보고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이 늘어났다고는 하나, 여전히 대다수의 독자들은 이를 쉽게 지나치곤 한다. 게다가 번역은 한 언어로 쓰인 글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기에 늘 원작의 그늘에 가려져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표지에 새겨진 ‘이진 옮김’이라는 네 글자는 그가 내린 최선의 판단이자 책임의 무게다. 밤낮으로 문장과 행간의 의미를 헤아려 치열하게 고뇌한 또 다른 창작가의 분투이기에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그 광막함을,

나는 너무도 사랑한다

 


  『아직도 번역합니다』는 30년간 번역가로 활동해 온 저자의 번역에 대한 철학을 담은 에세이다. 무엇보다 섬세함이 요구되는 번역의 세계에서 고독한 섬처럼 묵묵히 골몰했던 시간과, 워킹맘으로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군분투해야 했던 날들의 소회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특히 오랜 세월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해 온 사람에게 깊은 경외심을 느끼곤 하는 내게, 번역을 하면 할수록 ‘안다’기보다 ‘모른다’는 것에 가까워진다는 그녀의 고백이 무척 흥미롭다. 이쯤 되면 막힘없이 번역하며 마감에도 의연할 만도 한데, 실상은 여전히 단어 하나에 울고 웃으며 머리를 싸맨다던 번역가의 푸념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그런 가운데서도 완벽하지 않음이야말로 번역의 숙명이며, 그 숙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 일은 오직 고통뿐일 거라는 성찰이 깊은 울림을 준다. 번역은 늘 원작의 한 걸음 뒤에 서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와 광막함을 사랑해 마지않는 그녀의 태도야말로 지난 30년의 기나긴 노동을 버텨내게 한 힘은 아니었을까.

 



작가의 의도와 원문의 의미를 잘 살려 가독성 있게 번역해서 독자들이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번역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겠지만, 실제 번역 현장에서 왜 이 번역이 저 번역보다 좋은지는 설득의 영역이 아닌 경우가 많다. 확연히 좋게 느껴지는 번역과 확연히 나쁘게 느껴지는 번역은 분명 존재하지만, 번역은 오역이 아닌 한 상당 부분 취향의 문제인 게 사실이다. / 23p


 


비록 현실 속에서 알아주는 이가 많지 않아도 한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독으로 번역한다는 건 분명 엄청난 권력이다. 그래서 때때로 내가 가진 어마어마한 권력을 음미하며 조용히 웃는다. 그리고 부디 내가 작품을 살리는 번역가이기를, 나도 모르는 사이 작품의 숨통을 끊어놓는 것으로 권력을 남용하거나 악용하는 번역가가 아니기를 간절히, 아주 간절히 바란다. / 29p

 



소설 전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의 등짝처럼 느껴진다. 나는 어떻게든 녀석을 살살 구슬려서 돌아 앉히고 녀석과 친해져야 한다. 녀석의 모든 것을 파악해야만 한다. / 51p

 









  AI 시대에 가장 먼저 사라질 직업 중 하나가 번역가라고 한다. 실시간으로 영상이 자동 번역되고, 그 어떤 언어든 ‘번역’ 버튼 하나면 순식간에 의미가 통하는 세상에서 번역가들의 입지가 점점 더 좁아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어쩌면 저자는 더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제아무리 AI가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을 수 있는 시대라 하더라도, 다른 언어의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가 존재하는 한 인간만이 지닌 문학적 감수성까지 AI가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효율적이지만 인간 번역가의 고독한 작업이 여전히 숭고한 이유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들의 고독은 텅 빈 고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고독은 활자와 문자와 문단과 페이지로 빠르게 채워진다. 밀도 높은 고독의 한가운데서 그들은 오히려 에너지를 충전한다. 몸과 마음이 가장 맑은 새벽 시간을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일에 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호사다. 그런 호사를 수십 년 누리며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 67p

 









  타이타닉호에서 끝까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악사처럼 되고 싶다던 저자의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평생을 사랑해 마지않던 일에 대한 예의일 것이라는 말까지도. 덕분에 앞으로 사게 될 모든 책에서 ‘옮긴이’의 이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오랜 시간 한 길을 걷느라 매너리즘에 빠진 직업인들,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워킹맘들, ‘번역가’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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