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은 흐른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0
이미륵 지음, 안삼환 옮김 / 민음사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식민지 근대사의 격변과 조국의 정서를 담담하고 우아한 문체로 완성해낸 기념비적인 작품!





  망국의 현실을 섬세하고 절제된 언어로 써내려가는 어느 조선인의 뒷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른다. 그의 이름은 이의경. 독일식 이름은 Mirok Li. 부처님의 제자인 미륵불에게 49일간 불공을 들인 뒤에 가진 아이라 하여 어릴적부터 미륵으로 불리게 되었다던 그는 3·1운동에 가담한 뒤 일제의 수배를 피해 독일로 망명해야 했다. 하지만 그 먼 이국의 땅에서도 이미륵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 단편과 산문을 꾸준히 독일어로 써왔고, 압록강은 흐른다는 놀랍게도 1946년 독일 문단이 그해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살아 생전에는 끝내 한국 땅을 밟지 못했으나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마침내 우리에게 당도한 이 문학적 귀환은, 28년의 역사를 지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0권 출간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지금은 나쁜 시대가 왔다고 한다. 그럴 때 넌 말해라, 나쁜 시대가 아니라, 그것은 지금 막 시작한 새 시대일 뿐이라고. 눈이 많이 내린 긴 겨울 뒤에 찾아오는 봄과 비슷하다고. 진달래가 피고 뻐꾹새가 울지. 그렇게 나는 우리의 시대를 느끼는 거야.” / 87p

 









  『압록강이 흐른다는 독립운동가이자 망명자였던 작가 이미륵의 자전적 소설이다. 서당에 다니며 한학을 익히던 유년시절에서부터 신식 학문에 눈을 뜬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독일로 망명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근대사 속에서 고뇌하는 한 자아의 성장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작가 이미륵은 전통과 근대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순간들을 증언하는 가운데 한 인간이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안에서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또 어떻게 삶과 운명을 이끌어가는지를 담담하게 기록해나간다. 망국의 현실과 비운을 섬세하되 매우 절제된 언어로 써내려간 그의 문체는 역설적이게도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오늘 저는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라고 내가 말했다. “학교 공부가 전부 제게는 낯설었습니다. 오랜 시간 저는 제가 거기서 결코 배겨 낼 수 없을 것처럼 불안했어요. 모든 것이 제가 평소 공부해 오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거든요.”

아버지는 오랜 시간 잠자코 계셨다. “실망했던 것이냐?”라고 아버지가 나중에 물으셨다.

그 비슷한 감정이었어요. 저는 자꾸만 옛 서당과 우리 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82p


 

새로운 학문들이란 그야말로 다른 것이야.”라고 나는 결국 대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서 배우는 것을 예로 들자면, 매일 수천 리를 달릴 수 있는 기차를 만드는 방법이야. 사람들은 달까지의 거리를 추정하는 방법을 배우기도 하고, 조명을 위해 전력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거야.”

그 때문에 넌 정말이지 군자는 못 되는 거야.”라고 그녀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다른 시대가 도래한 거야.” / 92p

 


우리 집 행랑채에도 불안이 찾아왔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오고 또 갔다. 행상들과 거지들이 늘어났다. 쫓겨난 농부들, 파직된 관리들, 이곳저곳 전전하는 피난민들과 유랑민들이 숙식을 요청했다. () 추운 겨울이 다 가도록 이런 사정이 지속되었다. 점점 더 많은 거지들과 유랑민들이 왔고 그들로 모든 손님방들이 꽉 찼다. 순옥은 집 앞에 앉아 욕설과 저주를 뇌까렸다. “, 처참한 시절, 더러운 세상이로다!” / 111p










  낯선 타국에서 이방인으로서, 기억을 언어로 삼고 향수를 문학으로 삼으며 살아갔을 이미륵. 시대의 상처와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 아름다운 작품을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