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 기담
남유하 지음 / 소중한책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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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세상이 결코 안온하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문학잡지 『Axt』에서 남유하 작가의 작품을 먼저 만난 적이 있다. 고독사박물관을 배경으로 한 단편작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이란 작품이었다. 고독과 죽음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라는 소재가 흥미로워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은 이야기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남유하 작가의 매력은 이번 『양재천 기담』에서도 빛을 발한다. 시종 이상야릇하고 기묘하지만, 실제 양재천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에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니까.





이토록 기묘하고 잔혹한 일상의 순간들



  무엇에 홀린 듯한 붉은 눈의 여인과 다섯 마리의 고양이들. 『양재천 기담』의 표제작 「살」은 버스 정류장에서 새끼 고양이를 죽이고부터 시작된 기이한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생명을 죽이는 기분은 어떨까. 평소 살(殺)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주인공은 그냥 놓아두면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을 것 같은 새끼 고양이를 보자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를 실행하고야 만다.



  바로 그때부터, 주인공의 신상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몸에 알 수 없는 상처가 생기고, 주변 사람들이 고양이의 영혼에 씐 듯한 환영을 본다. 이윽고 살의에의 충동이 도로 살이 되어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참극을 보며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너도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죽이고픈 충동을 느껴본 적이 있지 않느냐고. 내 안에 어떤 흉기가 있을지 혹시 너는 아느냐고.



죽이고 싶다.

그 순간 제 머리에 든 생각입니다. 벼락에 맞은 느낌이 이럴까요? 뭔가 번쩍하면서 회백질에 저 다섯 글자가 새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글자들은 기생충처럼 구불거리며 변형되더니, 어느새 ‘죽여야 한다’로 바뀌었습니다. / 「살」 중에서 8p



애당초 고대이집트에서 전해진 미신일 뿐, 고양이 목숨이 아홉 개라니 얼토당토않은 말이잖아요. 그렇지만, 고양이에게 영혼이 있다면요? 조금 전 제가 들은 게 환청이 아니라 제 주변을 맴돌고 있는 고양이 영혼의 비웃음이라면요? 고양이의 영혼이 세상을, 다름 아닌 저의 세상을 파괴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하찮은 미물 주제에, 감히 내게 도전하다니. / 「살」 중에서 34p













  실제로 어딘가에서 일어날 법한 도시의 괴담 같은 이야기는 계속된다. 분명 어제 간 곳인데 다음날이 되자 언제 있었느냐는 듯 사라져버린 건물(「품은 만두」),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사람들(「고강선사유적박물관」), 낯선 사람이 건넨 호의가 뜻밖의 사태를 몰고 오는 비극(「기억의 커피」), 무심코 사유지를 침해한 대가가 나비효과가 되어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사유지」)까지. 무언가를 욕망한 대가로, 누군가에게 적의를 품은 대가로 평온했던 삶이 뒤틀리고 위협받고, 무너지는 광경을 남유하 작가는 거침없이 상상한다.





그 집을 나오기 두어 달 전 주말이었다. 함께 밥을 먹던 A가 멍한 얼굴로 “…돌아가야 해.”라고 한 것이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곧바로 무슨 말이냐고 반문했지만, A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 시치미를 뗐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 가라앉은 목소리… 남편과의 첫 만남, 헤어질 때 그가 했던 말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간다는 건지 알아야 했다. / 「고강선사유적박물관」 중에서 90p



어떤 이의 음식 씹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면, 너는 그 사람을 증오하고 있는 거야. / 「시어머니와의 티타임」 중에서 113p



“고작 사유지일까?”

괴물이 내 생각을 읽은 듯 물었다. 사소한 잘못이 반복되고, 그 잘못이 누적된다면 결국 큰 죄의 무게와 같아진다. 지난 6년의 세월을 정산하면 고작 사유지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건 가혹하다. 사유지를 이용한 대가는 핑계일 뿐, 괴물의 권태로 인한 질 나쁜 장난 아닌가. / 「사유지」 중에서 271p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세상이 결코 안온하지 않다는 사실을 내내 의식했던 것 같다. 언젠가 내 일상도 이렇게 순식간에 무너져버릴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두려움에 그저 가볍게 읽고 넘길 수만은 없었다. 그만큼 남유하 작가는 도시의 병증을 예리하게 포착해냄과 동시에 그 안에서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의 실체를 기이하고 환상적인 서사로 엮어나가는 재주가 탁월한 듯하다. 아직 여름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무더운 이 여름에 꼭 어울릴만한 책을 찾으시는 분들에게 『양재천 기담』을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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