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용의자
찬호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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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호께이라는 이름을 머리에 꽉 박히게 하는 작품이다!





  타살 혐의점이 없는 자살 사건이었다. 날마다 다양한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고, 고작해야 하루 이틀 기사에 오르내리거나 몇몇 인터넷 가십거리로 소비되고 마는 현실 속에서 이 사건도 그렇게 조용히 마무리될 것이라 생각했다. 무심코 열어본 옷장에서 조각난 신체가 담긴 스물다섯 개의 유리병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셰바이천, 41세, 무직. 홍콩 경찰은 마흔이 넘도록 직업도 없이 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며 살아온 은둔형 외톨이인 셰바이천을 이 기괴한 토막 살인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의 방에 있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피규어처럼, 시신을 수집품처럼 보관하고 있다가 죄책감에 자살을 한 게 틀림없어 보였다. 하지만 셰바이천 어머니로부터 터져 나온 뜻밖의 증언이 이들의 발목을 붙든다. “바이천은 20년 동안 밖에 나오지 않았다고요!”




오랫동안 은둔한 채 지낸 자기 삶이 

부끄럽지 않았다.

그는 이것이 진화한 인류의 선택이자 새로운 시대의 

생존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 116p




  홍콩 출신의 추리작가 찬호께이의 소설 『고독한 용의자』는 은둔형 외톨이였던 한 남자가 자살을 한 뒤, 그의 방에 감추어져 있던 토막 살인사건의 흔적까지 세상에 드러나면서 이에 대한 진실을 추적해나가는 범죄추리소설이다. 20년 동안 집에서만 은거했다던 남자가 어떻게 두 차례에 걸쳐 살해를 하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시체를 보관할 수 있었을까? 한사코 셰바이천의 결백을 주장하는 어머니와 셰바이천의 자살을 최초로 목격한 친구이자 유명 추리소설가인 칸즈위안의 증언은 믿을 만한 것인가? 소설은 너무나 뻔해 보였던 용의자와 그렇지 않은 사건의 내막이 과거-망자의 일기-출간 예정된 소설-현재와 유기적으로 얽혀 거듭해서 반전의 재미를 선사한다.




나는 원래 사람의 시신을 토막 내는 것은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잔인한 악행이자 금기라고 생각했지만, 그 책을 읽고 나서 여러 토막을 이어 붙여 완벽한 사람을 만든다는 발상에 매료되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신을 무기물로 바라보고 세속의 시선과 윤리의 족쇄까지 벗어던진 채 절묘한 예술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나중에 나도 이런 예술품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생명을 대가로 내놓는다 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 76p



인생은 원래 고독한 여정이다. 세상에 태어날 때도 혼자이고, 세상을 떠날 때도 역시 혼자일 수밖에 없다. 아바이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무리 지어 사는 것은 통치자가 사회와 국가, 민족을 만들기 위해 꾸며낸 거짓말이자 속임수라고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이익이나 자기만의 이상을 위해 스스로를 기만하고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라는 본질을 망각한다. / 115p



이 세계를 모르는 사람은 그걸 ‘게임’으로만 여기고, 애들 놀이이자 장사꾼의 돈벌이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바이에게는 게임이 창조해내는 사이버 ‘사회’가 현실 세계보다 더 진짜 같고, 그와 그의 동족들이 생존하기에 더 적합한 곳이었다. / 116p












  범죄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 이 소설은 홍콩 사회 전반의 우울한 현실을 고스란히 비춘다. 주요 소재인 자발적 은둔자들, 빈곤 계층과 약자를 따돌리고 외면하는 사회 구조, 렌털 애인이라는 이름으로 성상품화되는 여성들의 고통 등을 섬세하고 무겁게 묘사한다. 자신을 감추고, 자신과 사회의 연결을 끊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지우고, 고독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을 양산해내는 기형적인 사회 구조와 범죄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이 도시에 외로운 사람이 이렇게나 많군, 이라고 쉬유이는 생각했다. 렌털 애인은 단순한 성매매가 아니라 연극에 더 가깝다. 고객의 연인을 연기하며 상대에게 생리적인 욕구 충족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위안까지 제공한다. 애인 렌털업이 일반 성매매보다 더 호황이라는 사실은 이 도시 사람들이 단순히 성적인 욕구만이 아니라 외로움을 해소하려는 욕구가 더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 235p



“이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해요. 그들이 죽든 살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죠. 부자가 10달러를 도둑맞으면 경찰은 그의 지위와 신분에 눌려 호들갑을 떨면서 도둑을 잡으러 다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한 가정이 통째로 사라져도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 328p












  마지막까지 흡인력있는 전개로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작위적인 요소들이 아쉬움을 남긴다. 추리소설가인 칸즈위안이 경찰인 쉬유이와 날카로운 추리 대결을 펼치고, 의표를 찌르는 논리로 압도하는 장면을 기대했지만 기대한 만큼의 맛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점도 아쉽다(칸즈위안의 의도대로 이끌려가는 흐름이어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예사롭지 않다는 인상을 받은 이유는 사회문제와 인간 본성에 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줄곧 의도적으로 흘려온 떡밥들을 완벽하게 회수해가며 완성도 높은 추리소설을 읽었다는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찬호께이라는 이름을 머리에 꽉 박히게 하는 작품이다.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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