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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페어링 ㅣ 슬기로운 방구석 와인 생활 2
임승수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12월
평점 :
와인 초심가와 애호가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을 와인 에세이!
지금 당장 와인을 사러가고 싶게 만드는 책!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정도지만, 우리 부부가 즐기는 와인이 있다면 산도가 낮고 당도가 높은 편인 모스카토 품종의 화이트 와인이다. 특히 이탈리아의 아스티 지역에서 생산되는 모스카토 다스티는 가성비도 좋고 실패 없이 즐길 수 있는 와인이라 늘 만족하며 찾는 와인이다. 반면 레드 와인을 비롯해 다른 와인들은 호불호가 심해서 새로운 도전보다는 항상 검증된 맛만 찾게 된다. 다만, 관심은 또 다른 이야기라서 ‘와인서쳐’ 앱이나 ‘와쌉’ 네이버 카페를 종종 찾곤 하는데 아무래도 이건 임승수 작가의 책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을 읽고 난 뒤부터였던 것 같다.
지속가능한 와인 라이프를 위한 와인 입문서
『와인과 페어링』은 임승수 작가의 두 번째 와인 에세이다. 전작이 와인 정가에 속지 않는 법부터 가성비 와인 리스트, 와인에 맞는 안주 고르는 법과 와인 잔 선택하는 법, 라벨 읽는 법 등 와인을 마시는 데 필요한 기본 정보들을 주로 다루었다면, 두 번째 책에서는 지속가능한 와인 라이프를 즐길 수 있도록 ‘가성비 와인과 어울리는 K-푸드의 조합’에 주목한다. 누구나 쉽게, 선뜻 마트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와인을 주로 소개할 뿐만 아니라, 음식은 스테이크나 파스타 혹은 치즈를 조합하는 정도에만 머물러있는 초심자를 위해 반가운 정보들을 제공한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은 대체로 산도가 쨍하고 향이 강렬한 데 반해, 프랑스산은 상대적으로 점잖고 절제된 느낌이다. 이러한 캐릭터의 차이가 음식과 어울림에 있어서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했다. 두 와인 모두 가성비가 뛰어나기로 유명한데다가 가격도 2만 원 언저리로 비슷해서 기량을 견주기에 적절했다. / 20p
시원하게 준비해놓은 영혼의 동반자는 코노 수르 비씨클레타 언오크트 샤르도네 2020이다. 집 근처 홈플러스에서 약 1만 5,000원에 구매했다. 할인하면 9,000원대에 판매하기도 하는 저렴한 와인이다. 코노 수르는 칠레의 와인 회사명, 비씨클레타는 스페인어로 자전거, 언오크트는 숙성할 때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유리병과 라벨에 새겨진 자전거가 눈에 들어오는데, 포도를 보호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포도밭을 누비는 코노 수르 직원들을 상징한다고 한다. / 28p
흔히 화이트 와인하면 해산물이라는 공식이 있지만, 이 책에서는 의외로 샤르도네와 돼지고기의 조합을 추천한다. 키안티 와인쯤은 가뿐하게 제압하는 시너지를 발휘한다고 하니 도전해봐야겠다. 모둠전에는 레드 와인을, 곱창과 막창에는 샴페인을, 회에는 가벼운 바디감에 상큼한 신맛의 드라이 화이트 와인(이탈리아산, 피에로판 소아베 클라시코)을 추천하기도 한다. 날씨와 그날의 기분에 따라 음용하기 좋은 와인도 추천해주는데, 개인적으로는 무덥고 습해서 짜증날 때 마시기 좋은 와인 클라우디 베이 소비뇽 블랑은 저장해뒀다가 꼭꼭 마셔볼 생각이다.
화려한 이중주 감상 후 몰려드는 피로감을 시원하게 달래주려 피노 그리지오가 등장한다. 특유의 은은한 복숭아 향은 소싯적 즐겨 마시던 추억의 음료수 ‘이프로’를 떠올리게 만든다. 알코올 도수가 12.5%인데도 이렇게나 목 넘김이 부드럽다니. 상큼·청량·깔끔하면서 쓴맛이 없고 기분 좋은 과실 향이 감도는 데다가,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아 앞선 음식의 풍미를 요만큼도 거스르지 않는다. 소주에 물린 사람이라면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상위호환 주종인 피노 그리지오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 114p
라벨에서 ‘리슬링’이라는 명칭만 확인하고선 무턱대고 구매하면, 간혹 은은한 잔당감이 아닌 과한 단맛에 당황하게 된다. 리슬링마다 당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당도가 높은 리슬링은 일반적인 음식보다는 달달한 과일이나 디저트에 곁들여야 궁합이 맞다. 그렇다며 낙지볶음 같은 음식에 어울릴 드라이 리슬링을 골라낼 방법이 있을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라벨에서 ‘trocken’이라는 독일어를 찾는 것이다. 이 단어는 영어로 치면 ‘dry’에 해당하며 달지 않은 와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 122p
울프 블라스 이글호크 퀴베 브뤼_
대단한 풍미를 지닌 건 아니지만 1만 원대 와인에게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놀라운 밸런스가 인상적이다. 감귤, 복숭아, 배 등이 연상되는 은은한 과실 향에, 쓰지 않고 신맛도 튀지 않고 모든 요소가 야구공처럼 둥근 형상을 이룬다. 눈을 감고 야구 경기가 벌어진다고 상상하니, 날카로운 제구력으로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삼십 대 초반의 털털하고 경험 많은 투수가 떠오른다. 오늘은 9이닝 1실점 완투승이구나! / 169p
타닌이 강한 레드 와인(특히 어린 레드 와인)을 싫어해서 늘 제대로 마셔보기도 전에 잔을 밀치곤 했는데, 이제는 마개를 열고 잔에 따라낸 후 30분 혹은 한두 시간 기다렸다가 다시 맛을 보는 인내심을 발휘해봐야겠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독일 와인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독일 와인 열심히 찾아보리라). 향과 맛이 강한 한국 음식과 와인은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역시 편견이었음을 느꼈다. 가만 보면 와인만큼 편견이 많은 주종도 없는 것 같다. 소주나 맥주처럼 가볍게 일상으로 즐기는 주종이 아닌 데다, 같은 와인이라 하더라도 무엇과 언제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에 선뜻 공유하기도, 선택하기도 어렵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그래서 더 호기심이 가고 설렘을 느끼게 하는 주종인 것 같다.
지금 당장 와인을 사러 나가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와인 초심가와 애호가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을 와인 에세이를 찾으시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