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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 ㅣ 텍스트T 12
이희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기묘하고 아름다운 표지에 먼저 반하고, 독특한 세계관과 상상력에 푹 빠져 읽게 되는 소설!
푸른 숲과 맑은 강이 흐르고, 그 속에서 크고 작은 동물들이 어우러지고 풍성한 열매가 열려 생명의 힘이 넘쳐흐르는 실바. 이곳에 터전을 둔 비스족은 이 땅을 돌봐주는 사계의 여신들을 숭배하며 그들이 내려 준 풍요를 감사히 여기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사계의 여신은 절대 한자리에 오래 머무르는 법이 없어서, 아름다움과 풍요를 선사하면서 때때로 고통도 함께 주었다. 가뭄과 홍수로 심술을 부리고 번개를 내리쳐 산과 들을 태웠으며 질병을 퍼트려 죽음의 칼날을 휘둘렀다. 가장 아름답고 기름진 땅 실바의 주인이 된 대신 이따금 타 부족과 크고 작은 전쟁까지 치러야했다.
비스족을 다스리는 왕인 쿤은 어느 날, 피프족이 하늘에서 내려온 지도자 탄과 함께 죽음의 숲 케이브를 넘어 전설의 땅 사라아를 찾았다는 소문을 듣는다. 그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었던 죽음의 숲 케이브를 가장 약하다고 평가받던 피프족이 어떻게 건너갈 수 있었는지, 아니 케이브가 진짜 죽음의 숲인지, 풍요의 땅이자 전설의 땅이라 불리는 사라아는 정말 존재하는지, 어지럽게 휘도는 소문과 전설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이러한 쿤의 뜻에 따라 후계자, 베아는 스스로를 증명하고 비스족의 번영을 위해 케이브로 갈 것을 자처한다. 그렇게 오랜 지기인 타이와 함께 베아는 어둠과 죽음의 숲, 케이브로 향한다. 과연, 베아는 자신을 증명하고 비스족의 미래를 구할 수 있을까?
“삶에서 가장 강력하고 무서운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긴 손가락이 가볍게 톡톡 베아의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신중하고 깊은 생각 말이다. 그 힘을 가진 자만이 진정한 쿤이 되고 전사들을 통솔하는 솔이 될 수 있다.” / 34p
“전사들만의 힘으로 부족을 지키는 시대는 끝났어. 우리도 다른 힘이 필요해.” / 57p



『베아』는 『페인트』, 『챌린지 블루』,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로 잘 알려진 이희영 작가의 신작이다. 비스족 왕인 쿤의 후계자로 지목된 베아가 죽음의 숲을 지나 전설의 땅 사라아를 찾아 떠나는 모험과 성장을 담은 청소년 판타지 소설이다. 베아는 타이와 함께 이제껏 가본 적이 없는 새로운 땅, 죽음의 숲 케이브 속에서 마늘꽃, 움직이는 나무, 토끼 인간, 인어 님파, 말하는 흰 부리새 등 신비로우면서 무척 기묘한 생명체들을 만난다. 때로는 목숨에 위협을 느낄 만큼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이기도 하지만 위기를 헤쳐 나가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중요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이 마음의 적이죠. 두려움은 막아 내는 게 아니라 이겨 내는 겁니다. 그것이 전사의 정신 아닙니까?” / 126p
“미안하지만 틀렸어. 나는 절대 모든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아. 그저 눈앞에 놓인 문제를, 최선을 다해 처리할 뿐이야. 알아 들어?”
불 속에 나뭇가지를 던져 넣으며 베아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나둘 해결하다 보면 아무리 엉망인 상황도 조금씩 낙관적으로 변해.” / 145p
“나는 결코 미리 걱정하지 않을 거야.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토끼 인간에게 죽을 뻔하고 나무 괴수를 만났어. 그리고 인어에게 홀려 물속으로 끌려갔어. 그때마다 힘들었지만 나름 현명하게 잘 극복했잖아. 피프족을 만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겠지. 하지만 분명 길이 있을 거야. 나는 그걸 배웠어. 설령 내가 쿤이 된다 해도 문제는 곳곳에서 발생하겠지. 그럼 그때 해결하고 헤쳐 나가면 돼.” / 180p


신비로운 존재의 등장과 단군 신화를 모티브로 한 세계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위기와 갈등, 모험을 능수능란하게 엮어나가는 이희영 작가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중 소설의 주요 갈등 국면인 가치관의 충돌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개혁과 번영을 희망하는 쿤과 베아, 안정을 중시하는 쿤과 타이의 대립은 마치 극과 극으로 분열된 오늘의 우리 사회를 조명한다. 부족의 안녕을 위해서는 분명 두 가치관 모두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두렵고 불안하지만 그 두려움을 없애는 유일한 길은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 ‘낯선 곳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멈추지 않고 더 강하고 맹렬하게 내 앞을 가로막는 벽에 온몸을 던져보는 사람에게만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것을 베아의 모험을 통해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왜 새로운 길은 위험하다고만 할까. 아직 가 보지 않은 길이고, 아무도 만나지 못한 세상이었다. 그 미지의 문 앞에서 두렵고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테지. 하지만 그 두려움을 없애는 유일한 길은 바로 낯선 곳의 문을 여는 것뿐이었다. 베아를 이곳까지 오게 한 진짜 힘은 쿤의 후계자로 증명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었다. 실바를 떠나 더 넓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 218p
기묘하고 아름다운 표지에 먼저 반하고, 독특한 세계관과 상상력에 푹 빠져 읽게 되는 소설이다. 방학을 맞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판타지 소설을 찾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