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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홀 1 - 맨부커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1
힐러리 맨틀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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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지만 냉철하고 소름 돋도록 통렬하다!
16세기, 권력의 중심에 선 토머스 크롬웰과 왕실을 둘러싼 암투 그리고 욕망을 다룬 소설!
선왕은 공공연히 말했다.
애정의 대상이 못 될 바에는 공포의 대상이 되겠다고. / 283p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자꾸 호명되는 단어란 것이 ‘권력, 부패, 욕망, 음모, 공모’ 따위라는 게 참으로 유감이다. 공교롭게도 의식의 흐름이라는 것이 이러한 호명에 곧잘 부응하게 되는데, 마침 『울프홀』이 눈에 띈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인 듯하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늑대가 되는 ‘울프홀’의 세계(정치와 종교의 대립, 권력을 향한 욕망과 왕실의 암투가 극에 달했던 16세기 영국 왕실) 속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왕의 최측근이 되어 마침내 권력의 중심에 선 토머스 크롬웰. 그의 생을 재현한 이 작품은 앞서 호명된 단어들을 통렬하게 투영한다.
이런 생각이 든다.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있다. 더 나은 세상이.
/ 36p
이야기는 대장장이인 아버지에게 모진 학대를 받는 크롬웰의 유년 시절로부터 시작된다. 피범벅이 되어 누나의 집으로 도망친 크롬웰은 약간의 돈을 챙겨 도버해협을 건넌다. 다른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더 나은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책은 그로부터 시간을 훌쩍 넘어 헨리 8세 치하의 영국 왕실로 이동한다. 헨리 8세는 아라곤의 캐서린 왕비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하자 앤 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교황청에 혼인을 무효화해 달라고 압박을 넣는다. 이 일의 책임자 역할을 맡은 울지 추기경은 교황청이 끝끝내 헨리 8세의 요청을 거절하면서 왕의 신임을 잃고 추락한다. 이 무렵,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법률가로 자수성가한 크롬웰은 울지 추기경의 심복으로 왕실과 중개자 역할을 자처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추기경의 실각과 함께 왕의 눈에 띄게 된다.
“딱히 잉글랜드인이라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원래 그렇지 싶어요. 사람들은 늘 뭔가 더 나은 게 있기를 바라죠.”
“하지만 그런 변화로 그들이 얻는 게 뭡니까?” 캐번디시는 집요하다. “고기로 실컷 배를 채운 개가 뼈다귀까지 뜯을 만큼 굶주린 개로 바뀌는 것뿐인데. 명예로 살을 찌운 자가 나가고 배곯고 깡마른 자가 들어오는 셈인데.” / 95p
이 나이쯤 되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남달라서 성공하는 게 아니다. 영특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강해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교활한 사기꾼으로 거듭남으로써 성공하는 것이다. / 10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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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울프홀』 1권은 토머스 크롬웰이 천한 신분이라는 배경을 딛고 왕의 오른팔로 급부상하기 시작하며 끝이 난다. 책은 울지 추지경조차도 ‘미천한 인생들이 줄에 매달아 끌고 다니는 저 네모난 몸집의 투견에 가까운 사람’이라 묘사할 정도로 주변으로부터 경멸과 무시를 당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내부에 철저히 숨긴 채 이를 착실하게 실현해가는 인물로 그려나간다. 가족이나 자신의 사람이라 여기는 이들에게는 한없는 충성과 애정을 보이지만, 생존의 문제 앞에서는 냉철하다. 잔인하고 교활하며 기회주의적인 성품으로만 묘사되었던 여타의 작품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궁금하군.” 울지 추기경이 말한다. “자네는 우리 군주를 참아낼 수 있을까? 한밤중까지 술을 마시며 서퍽 공작과 낄낄거리거나 노래를 하고, 그날 올린 서류에 아직 서명도 하지 않았고, 자네가 독촉이라도 할라치면 이렇게 말하는 군주를. 나는 이제 자야겠소. 내일 사냥을 나갈 거라…… 언젠가 보필할 기회가 오거든 그분을 있는 그대로, 향락을 사랑하는 군주로 받아들여야 할 걸세. 그리고 폐하도 자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지. 미천한 인생들이 줄에 매달아 끌고 다니는 저 네모난 몸집의 투견에 가까운 사람이란 걸 말이야.” / 140p
“맞아, 그 법률가도 추기경이랑 같이 망하겠지. 말이 법률가지, 진짜 정체가 뭔데? 아무도 몰라. 소문으로는 그치가 제 손으로 사람들을 죽이고도 고해성사 한 번을 제대로 안 했대. 하지만 그렇게 센 척하는 인간들이 꼭 교수형집행인 앞에 서면 질질 짜고 난리지.” / 2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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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는데, 자정이 넘은 시각 헨리가 다급하게 크롬웰을 불러들이는 부분이다. 망연한 표정의 헨리는 죽은 형님이 꿈에 나왔다며, 차남이었던 자신이 죽은 형님을 대신해 왕위에 오른 것도 모자라 그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맞은 것에 대한 수치를 주러 꿈에 나온 게 틀림없다며 고통스러워한다. 이때 크롬웰은 헨리의 팔을 덥석 붙든다(이 행동 하나로 힐러리 맨틀은 크롬웰의 위치와 지위가 얼마나 상승되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는 수치가 아니라 본인이 실현하지 못한 것을 헨리가 대신 해주길 바란다는 뜻으로, 유일무이한 최고 지도자로서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통치자의 면모를 보일 때임을 강조하며 오히려 그를 북돋는다. 이는 훗날 헨리가 수장령을 통해 교황청에서 독립하여 잉글랜드 국교회를 성립하는 역사의 단초가 되는 장면으로, 상황을 새롭게 전환하고 장악하는 크롬웰의 명민함이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크랜머가 미소를 짓는다. “하느님은 우리의 적을 교란할 목적으로 선생의 얼굴을 빚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손, 상황을 장악하는 손 말입니다-선생이 폐하의 팔을 움켜잡았을 때 내가 움찔하고 말았습니다. 폐하 역시 그걸 느꼈고요.” / 417p
2권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일단 여기서 글을 추스르고 서둘러 2권으로 넘어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