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신화로 만들어졌다 - 오늘날까지 인류의 사고를 지배하는 강력한 8가지 테마
리처드 벅스턴 지음, 배다인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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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삽화와 다채로운 해석으로 새롭게 즐기는 그리스·로마 신화!

신화 읽기에 대한 폭넓은 통찰과 우리 삶에 다양한 영감을 제시하는 매력적인 책!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인문학적 산물로 손꼽히는 그리스·로마 신화. 리처드 벅스턴이 ‘신화가 다루지 않은 인간의 삶은 없었다’고 했을 만큼, 신화는 사회·문화, 정치,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시대와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하지만 때로 신화는 당대인들의 젠더 감수성, 선호하는 이념과 정치적·윤리적 가치에 따라 의미가 달리 해석되기도 했다.



  『세상은 신화로 만들어졌다』는 고대와 중세, 르네상스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화가 어떻게 읽히고, 또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쳐왔는지, 흐름을 살펴보는 매우 흥미로운 저작이다. 프로메테우스, 메데이아,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아마조네스, 오이디푸스, 파리스의 심판, 헤라클레스의 과업,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를 중심으로 신화를 매우 다면적이고,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이 책은 신화 읽기에 대한 폭넓은 통찰과 우리 삶에 다양한 영감을 제시한다.




그리스 신화는 경제적 지위와 문화적 배경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사고 실험이다. / 10p




  프랑스 7월 혁명을 기념하여 그린 외젠 들라크루아의 대표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는 한 쪽 가슴을 드러내고 한 손에는 프랑스 국기를, 다른 한 손에는 총검을 들고 시민군을 이끄는 한 여성이 묘사되어 있다. 이 그림을 처음 본 이들이라면, 시체와 잔해더미 위에서 극적인 혁명을 이끈 여성의 신체 부위를 일부러 노출한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질 것이다.



  책에 따르면, 예술에 있어서 여성의 노출된 가슴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아마조네스 신화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역사가 디오도로스에 따르면 아마조네스라고 불리던 여성들은 남성보다 높은 권력을 가졌고, 남성들처럼 전쟁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육체가 성숙했을 때 걸리적거리지 않게 하기 위해 오른쪽 가슴을 그을리는 관습을 지녔고, 이것이 한쪽 가슴만 지닌 여전사라는 이미지를 상징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쪽 가슴만 지닌 아마조네스 신화는 여성의 초월적 권력을 향한 이상과, 강한 여성을 향한 성적 욕망을 동반하여 서양 문화 곳곳에 영향을 미쳤다. 이후 아마조네스 신화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여성상을 투영하며 오늘날 원더우먼을 비롯해 다양한 퀴어 문학과 페미니스트 문학에도 반영되었는데, 한편으로는 여성의 성적 이미지와 자유의 의미를 연결한 상징성의 모호함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다양한 색깔의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어떻게 각색했을까? 웰즐리칼리지에서 비교 문학을 가르치는 캐럴 도허티는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연구한 논문에서 낭만주의 시대의 프로메테우스는 고귀하고 반항적인 영웅으로 묘사되었다고 밝힌다. 물론 낭만주의 시대야말로 프로메테우스가 전례 없이 우상화되었던 때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 전에 무수히 많은 문화적인 변화가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후기 고대 시대로부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프로메테우스의 이미지는 바이런이 묘사한 반항아가 아니라 창조자이자 제조자 즉 ‘인간을 만들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자’였다. / 29p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이야기가 함축하는 관념들은 후대에 매우 다양하게 활용되었지만 하나의 질문이 동일하게 반복된다. 높이 날기의 의미가 무엇인가? 용감하고 영광스러운 열망인가, 아니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무분별한 행동인가? 아니면 영광스러우면서 동시에 무분별한 것인가? / 106p


이 신화의 중심에는 오이디푸스가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철저한 무지에서 비롯된 두 개의 범죄가 있다. 아버지로 밝혀진 남자를 살해하고 후에 어머니로 밝혀진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태생과 관계에 대한 불완전한 지식을 근거로 행동한다. 오이디푸스는 부분적인 무지라는 인간의 약점을 상기시킨다. 이것이 바로 신화의 역할이다. 신화는 일상생활 속 문제를 과정하고 날카롭게 만들고 고조시킨다. / 160p










  이 외에도 신들로부터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주었던 프로메테우스의 영웅주의가 19세기 말과 그 이후에 사회주의적 이상을 만나 독일에서 프롤레티리아 영웅으로서의 이미지로 추앙받기까지 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이 오이디푸스 신화에 등장하는 스핑크스를 과학에 대한 우화로 해석한 점도 인상적이다. 베이컨은 스핑크스(과학)가 인간에게 다양한 어려운 문제를 던지고 이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려는 시도는 전통을 대체하려는 결과이며, 과학적 연구를 개시하려는 자라면 고통을 감수할 만큼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해석했다고 한다.









  이처럼 신화가 매체에 따라 맥락을 변경하고 다양한 수요들을 충족시키는 쪽으로 적응되어왔던 모습들을 살펴보는 과정은 신화를 새롭게 읽게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결국 신화 읽기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의 삶에서 진정 가치 있는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가 가장 가치를 두어야 하는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각자만의 해답을 찾는 일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각각의 신화가 나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에 귀를 기울여보시길 바란다.



  덧붙여 계엄령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참담한 마음을 담아 전하고 싶다. 국민들이 당신에게 투표한 건 더 높은 하늘을 날아오르기 위한 날개를 달아준 게 아니라고. 이카루스는 그래서 추락했다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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