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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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하고도 수상스러우며 무척이나 기묘한 이야기들!

익숙한 감각과 고정된 관념의 더께를 닦아내고 논리와 이성 너머에 있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마음을 열어 보일 때 우리는 좀 더 다정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여기, 한 교수가 있다.

  그는 학술대회에서 자신의 연구를 발표하기 위해 네덜란드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에스컬레이터 끝에서 여자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다. 쓰러지면서 조각상에 머리를 세게 부딪친 탓에 여자의 옷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고, 괴로운 듯 가쁜 숨 사이로 피가 섞인 타액이 솟구친다. 교수는 달려가 자신의 재킷을 벗어 부상당한 여자의 머리 아래에 괸 뒤 도와달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구급차를 불러달라는 교수의 간절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군중은 흘낏 쳐다본 뒤 빠르게 스쳐지나갈 뿐이다. 그 사이 여자의 상태는 심각해지고 교수의 새하얀 셔츠마저 피범벅이 되어갈 무렵, 다행히 경찰이 나타난다. 그런데 경찰은 쓰러진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쩐 일인지 수상쩍은 표정으로 교수를 바라본다. 그 순간, 교수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아, 이들은 나를 범인이라 생각하는 게 틀림없구나, 하고.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없다면 그건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는 걸까?

  올가 토카르추크의 단편소설집 『기묘한 이야기들』 속에 수록된 「실화(實話)」라는 작품에는, 한순간에 가해자로 의심받아 도망자 신세가 되는 한 외국인 교수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쓰러진 여자를 돕기 위해 벗어준 재킷은 물론, 재킷 속의 여권마저 사라지자 공황상태에 빠진 교수는 그 길로 경찰에게서 도망친 뒤 투숙하고 있던 호텔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수치심을 안고 내쫓기게 되고, 그만 충격으로 인해 언어를 상실하고야 만다.




  이후 거리의 젊은이들에게 두들겨 맞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낯선 이국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길이 없어 고립된 한 남자의 처절한 비극에 몸서리치게 한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이웃으로부터, 군중으로부터, 사회로부터 한순간에 익명의 타자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우리가 느끼는 공포는,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만 하는 세상의 요구와 압박으로부터 느끼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지금 당신의 눈에 보이는 사람은 당신이 보고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당신을 보고 있기에 존재한다.” / 「승객」 중에서 11p

 


“과도한 행복감이 다가올 광기를 예고하는 것처럼, 불행의 재빠른 일격 앞에는 우선 안도감이 찾아온다.” / 「심장」 중에서 124p












  올가 토카르추크는 세상과 문학을 하나로 이어주는 ‘연결자’로서 범우주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의 존재론적 숙명과 실존적 고독, 인간과 동물 혹은 생태 전체에 관한 모럴리티, 이른바 ‘주변부’로 명명되는 소외되고 연약하고 힘없는 존재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함으로써 그녀만의 독특한 문학적 지형도를 완성해나가는 작가다. 전작인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와 『태고의 시간들』이 그러한 것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이러한 주제 의식이 돋보이는 단편작들이 수록되어 있다.





  10편의 단편작은 하나같이 괴이하고 수상하며 기묘하다. 우리는 흔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하고 묘한 느낌’을 기묘하다고 표현하는데, 올가 토카르추크의 작품 속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정상과 비정상이 혼재하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곳곳에 산재해있다. 집안 곳곳에 ‘식초에 절인 신발 끈’이나 ‘토마토소스에 절인 스펀지’ 따위를 담은 병조림을 모아왔던 노년의 어머니(「병조림」),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트란스푸기움에 가서 다른 생물체로 전환하는 시술을 받기로 결정한 레나타(「트란스푸기움」), 양말 한가운데에 세로로 난 솔기에서 시작해 익숙한 것들이 한없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그 때문에 공황 상태에 빠지는 B(「솔기」), 마치 비현실적인 존재처럼 느껴지는 피부가 온통 녹색인 아이들(「녹색 아이들」)의 이야기들이 그러하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나무 위에서 살며 땅에 구멍을 파고 그 속에서 잠을 잡니다. 달이 뜨는 낮에는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알몸을 달빛에 노출시켜 피부를 초록색으로 변하게 합니다. 이 빛 덕분에 그들은 많이 먹을 필요가 없고, 숲의 열매나 버섯, 호두 따위로 양분을 섭취합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경작하거나 집을 지을 필요가 없으므로 모든 일은 그저 즐기기 위해 수행합니다. 거기에는 통치자나 영주, 농민이나 사제도 없습니다. 어떤 일을 처리해야만 할 대는 나무 주위에 모여 서로에게 조언을 구하고 거기서 결정한 대로 실행합니다.” / 「녹색 아이들」 중에서 41p


 


“지금 우리의 처지가 마치 오래된 모래시계 같지 않나요? 언젠가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모래시계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모래알이 마모되면서 더 빨리 흘러내리게 된대요. 그래서 오래된 모래시계는 점점 빨라지게 마련이죠. 선생님은 이런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우리의 신경망도 모래시계처럼 닳고 닳아 지쳐버린 거예요. 구멍이 숭숭 뚫린 거름망처럼 모든 자극이 신경망을 술술 통과해 버려서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 거죠.” / 「솔기」 중에서 71p


 


“어째서 우리는 인간과 세상 사이의 간극이 다른 존재들 사이의 간극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쉽게 가정해 버리는 걸까요? 느껴지십니까? 당신과 저 낙엽송 사이의 간극이 낙엽송과 저기 있는 딱따구리 사이의 간극보다 더 심오하고 철학적인 이유가 대체 뭐죠?”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니까요.”

(…)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여전히 침팬지이자 고슴도치이고 낙엽송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우리 내면에 가지고 있고, 언제든지 그 본성을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를 그것들과 분리시키는 간극은 결코 넘을 수 없는 게 아닙니다. / 「트란스푸기움」 중에서 147p












   어쩌면 진실은 우리가 정형화된 이미지라고 여겼던 것들이 어긋날 때 느끼게 되는 이 낯설고, 불편하고 당혹스러울 만큼 기묘한 감정들 속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인식의 문이 깨끗이 닦이면 모든 것이 무한히 드러난다.”라는 블레이크의 시 구절처럼, 익숙한 감각과 고정된 관념의 더께를 닦아내고 논리와 이성 너머에 있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마음을 열어 보일 때 우리는 좀 더 다정한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평범한 물질적 속성이나 인과 관계, 확률의 법칙을 초월하여 세상의 더 많은 존재들을 껴안는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를 내가 좋아하는 이유다.




“세상이 인간에게 맞춰 만들어졌다면 왜 우리는 세상이 우리를 압도한다고 느끼는 걸까? 무엇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들이 두렵거나 부끄럽게 느껴질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 안에 있는 엄격한 판단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세상은 왜 결핍으로 가득 차 있을까? 음식도 돈도 행복도 왜 항상 부족할까? 잔혹한 행위는 어째서 벌어지는 걸까? 그래야만 할 합리적인 이유가 전혀 없는데.” / 「인간의 축일력」 중에서 2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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