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의 죽음 - 자전적 에세이, 단편소설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지음, 안정효 옮김 / 까치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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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자신의 인생책으로 꼽은 책!

가장 절박하고 절망적인 시대 속에서 고독히 헤매는 한 예술가의 불완전한 영혼을 만나는 시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자신의 인생책으로 꼽은 책 『어느 시인의 죽음』은 『의사 지바고』의 저자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자전적 에세이와 단편소설을 엮은 책이다. 유명한 화가였던 아버지와 음악가였던 어머니 아래서 성장한 파스테르나크는 집안과 가까이 지냈던 스크랴빈의 영향을 받아 일찍이 작곡에 뜻을 두었다. 그러나 자신의 음악적 재능에 한계를 느끼고 좌절감에 사무치다, 이내 음악을 버리고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의 마르부르크로 향한다. 하지만 이곳에서조차 뜻을 이루지 못한 파스테르나크는 마침내 자신의 몸 안에서 꿈틀대고 있던 시인의 세계를 발견하고, 마침내 시인으로서 기지개를 폈던 그의 젊은 나날을 이 책에서 묘사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1900년대의 모스크바와 독일 등지를 배경으로 불완전한 시대 속에서 한 인간이자 예술가로서 스스로에게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고 창조적 이상을 찾아 방황하며 고뇌했던 영혼의 디아스포라에 가깝다. 그 중에서도 파스테르나크가 밤새 모스크바 거리를 걸으면서 음악과 작별을 고하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깨끗한 마음의 움직임이 느껴지면서 깊은 감동으로 남았다.”던 한강 작가의 감상처럼 영원히 나와 한 덩어리일 듯했던 세계가 내 속에서 무너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한 예술가의 복잡한 내면에 고요히 머물러왔다 빠져나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샛길로 걸어가면서, 쓸데없이 자꾸 길을 오락가락 건너다녔다. 내가 전혀 모르는 사이 어느 틈엔가, 하루 전만 해도 영원히 나와 한 덩어리일 듯싶던 세계가 내 속에서 무너지고 와해되는 중이었다.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점점 더 빨리 걸음을 재촉하며 걸었고, 그리고 나는 그날 밤 내가 음악과는 작별을 고하고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 22p










  이성복 시인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다 끝없이 실패하는 형식이 곧 시”라했다. 전쟁과 혁명으로 점철된 격동의 시대 속에서 자신들의 영혼이 와해되는 와중에도 예술에게서 ‘자기를 표현할 힘과 길’을 찾았고, ‘인간의 삶을 초월하는 힘’ 역시 예술이라 믿었던 예술가들. 그들이 자신의 삶을 연소시키면서 예술을 지향할 수밖에 없었던 번민이 파스테르나크 글 속에서도 매만져진다.




여러 시대에 걸친 사랑을 유일하게 재생하는 예술만이 욕망을 보다 부담스럽게 만들려는 수간을 강화하려는 본능의 명령에 굴복하지 않는다. 영혼의 새로운 성장을 울타리로 삼아서 한 세대가 서정적인 진리를 던져버리기보다는 보존하며, 그리하여 아득히 먼 곳에 서서 본다면, 분명히 이 서정적 진실로 인해서 인간은 조금씩 여러 세대를 이어간다는 상상이 가능해진다.

이 모두가 놀라운 일이다. 이 모두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취향은 도덕을 가르치고, 힘은 취향을 가르친다. / 58p



예술은 현상만큼이나 진실하고, 사실만큼이나 상징적이다. 그것은 암유를 만들지 않고, 자연에서 찾아낸 바를 그대로 충실하게 재창조했기 때문에 진실하다. 상징적인 의미들은 또한, 하나씩 분리시키면 의미를 모두 상실하면서 전반적인 예술의 정신을 언급하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감정이 분리시킨 현실의 부분들은 아무 의미도 없어진다.

그리고 예술은 연상의 방법에서는 상징적이다. 예술의 개별적인 상징은 상호 교환이 가능하고, 선명하게 전체의 특성을 나타낸다. 어느 한 심상이 다양성을 가진다는 사실은 현실의 부분들이 저마다 독립성을 가진다는 조건을 입증한다. 심상의 다양성을 뜻하는 예술은, 따라서, 힘의 상징이다. / 70p



하지만 이런 모든 일이 그녀에게는 ‘명령’으로 전해졌다. 삶은 더 이상 시적인 자유분방함이 아니었고, 그것은 냉혹하고도 사악하게 왜곡된 우화처럼 그녀를 둘러싸고 발효되어, 산문이 되고 사실로 바뀌었다. 영원한 각성의 경지를 거치기라도 하는 듯, 사소한 존재의 요소들이 깨어나는 그녀의 영혼으로 집요하게, 고통스럽게, 단조롭게 계속해서 들어왔다. 견고하고, 차갑고, 사실적인 요소들이 낡은 백랍 숟가락처럼 제니아의 내면에 깊이 가라앉았다. 이곳,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백랍이 녹아 덩어리로 뭉쳐서는 고착된 개념들로 융합되기 시작했다. / 「제니아 류베르스의 소녀 시절_ 길고 긴 나날」 중에서 177p









  이 책은 시어로 쓴 에세이라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파스테르나크 특유의 시적인 문체로 인해 읽기에 난해한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 방황하듯 작품 속에서 한참을 거닐다 온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따라서 다른 독자분들에게는 파스테르나크의 생애에 깃든 어떤 선명하고도 잘 정돈된 서사가 아닌, 가장 절박하고 절망적인 시대 속에서 고독히 헤매는 한 예술가의 불완전한 영혼을 함께 따라가는 마음으로 읽어보기를 제안 드리고 싶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의사 지바고』는 과연 어떤 작품일지, 얼른 구입해서 읽어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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