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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탄생 -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 전하는 ‘안다는 것’의 세계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신동숙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8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4/1006/pimg_7111301704453494.jpg)
‘앎’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에서 비롯된 인류의 역사!
지식의 기원을 찾아 떠나는 방대하고도 흥미로운 여정!
1932년,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를 통해 ‘언젠가는 인류가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도록 돕는 장치와 사랑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그의 상상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컴퓨터를 비롯한 기계가 모든 정보를 습득하고 생각까지 대신해주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기계가 모든 것을 대체하는 이 시대에 지식은 인간에겐 더 이상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린 걸까. ‘앎’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에서 인류의 역사가 비롯된 것이라면, 인류의 존속 역시 지성의 종말과 운명을 함께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는 지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식의 탄생』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지식의 역사를 탐구하고, 이정표를 제시하는 아주 흥미로운 저작이다.
배움의 발견부터 지성의 종말까지,
세상의 모든 지식은 어디에서 왔는가
모든 인생의 발자취는
끊임없는 지식의 축적으로 만들어진다. / 10p
19세기 후반, 메소포타미아 니푸르(이라크에 위치)에서 세계 최초의 학교로 추정되는 건물과 설형문자가 적힌 학생들의 점토판이 발굴되었다. 점토판의 왼쪽에는 선생님이 적은 그날의 학습 내용이 적혀 있고, 오른쪽에는 학생들이 서툰 솜씨로 따라 쓰고, 고치고, 지워져서 지저분해진 흔적이 가득하다. 마찬가지로 기원전 16세기에서 10세기에 걸쳐 중국의 상 왕조 시대의 문헌에도 이와 같은 학교가 존재했다는 단서가 있다.
어떻게 거의 비슷한 시기에 중국과 메소포타미아에서 학교들이 설립되었는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만 이 무렵의 지식은 ‘공동체의 건강과 생존 보장’은 물론, 배움을 통해 선조들의 영혼과 지속적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얻음으로써 ‘공동체의 결속’에도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문자는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이상적인 소통 수단이 되어주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인류는 전적으로 경험에만 의존했던 선사시대를 지나 타인에게 배우며 확인의 과정을 거쳐 체화하는 ‘배움’을 통해 지식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었던 게 아닐까.
세계적인 저널리스트이자 이 책의 저자인 사이먼 윈체스터는 이처럼 지식의 출발은 ‘배움’에서 시작되었다고 기술한다. 이후 지금껏 알려진 것과 학습된 것들을 기록하고, 가르치고, 수집하고, 보관하고 보호할 방법을 모색해온 인류가 어떻게 책을 만들고 최초의 도서관을 탄생시켰는지 그 과정을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지식을 거의 모든 사람에게, 거의 모든 곳에서 전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이끈 종이의 발명, 지식의 민주화를 이루어 낸 구텐베르크의 성경, 보편적 지식의 저장소가 되어준 백과사전, 원시적 형태의 검색엔진으로 구글의 시초가 된 문다네움, 신문과 미디어의 탄생, 현대의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지식의 역사를 총망라한다. 덕분에 독자들은 문명의 핵심이 결국 앎을 향한 인간의 호기심과 욕망이었음을 생생하게 목도하게 된다.
SAT의 기원은 오늘날의 기준에서 볼 때 확실히 문제가 될 만한 측면이 많다. 이 시험을 만든 사람은 프리스턴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칼 브리검이다. (…) 의무대에 있는 동안 선택적 번식과 결함이 있다고 판단되는 부류의 사람들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집단 전체를 개선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발전시켰다. 브리검과 그의 동료 우생학자인 로버트 여키스는 미군 병사들의 상대적 지능을 측정하기 위해 일련의 테스트를 고안했다. / 134p
문자가 탄생한 이래로 우리는 지금껏 알려진 것과 학습된 것, 가르치고 토론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논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수많은 것을 수집하고 보관하고 보호할 방법을 모색해왔다. 가장 널리 알려지고 가장 오래된 보관 수단은, 최초의 문자를 적을 때 사용했던 나무의 속껍질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불리는 기관이다. 나무 속껍질을 뜻하는 라틴어는 ‘liber’이며, 여기서 유래한 영어 단어는 ‘도서관library’으로 수 세기에 변천을 거쳐서 영국 시인 제프리 초서가 활동하는 시대인 14세기 무렵부터 사용되었다. / 151p
《옥스퍼드 영어사전》과 위키피디아 모두 변덕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군중의 지혜에 의존하며, 그 지혜의 총합은 군중의 규모에 비례한다. 그런데 바로 그 대목이 우리에게 염려를 자아낸다. 군중의 규모가 커질수록 더 많은 지식이 모인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이렇게 모인 지식의 진정한 가치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으며, 우리가 찾고 필연적으로 발견하게 될 지식에 우리가 원하고 기대하는 가치가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 2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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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책은 어떤 종류의 지식이든 ‘완전한’ 중립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저작이기도 하다. 저널리스트답게 저자는 언론과 소위 지배층들이 가짜 뉴스와 프로파간다(선동)를 이용해 대중에 제공되는 정보를 통제하고, 더 나아가 대중의 마음이나 추향,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에 대한 대중의 태도, 집권할 정부의 성향까지 통제하고 남용해왔던 역사들을 낱낱이 보여준다. 이를 통해 ‘안다는 것’이란 무엇이며,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을 끊임없이 의심해보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생각과 행동의 끝없는 순환,
끝없는 발명, 끝없는 실험에서
움직임에 대한 지식을 얻지만 고요함에 대한 지식은 얻지 못하고,
발언에 대한 지식을 얻지만 침묵에 대한 지식은 얻지 못한다.
말에 대한 지식을 주지만, 그 말에 무지하게 된다.
모든 지식은 우리를 무지로 이끌고,
모든 무지는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지만
죽음에 가까이 다가선다고 신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건 아니다. - T. S. 엘리엇 - / 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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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지식의 가치가 사라지고 인간의 사고능력까지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비관하지 않는 이유는, 결국 지식의 본질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그것으로 하여금 보다 사려 깊고, 지혜롭고, 현명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데 있기 때문은 아닐까. 얼마나 ‘많이’ 아는 것이 아닌,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지식의 진정한 가치라고 말하는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다.
놀랍도록 지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이 책은 그 자체로 다양한 정보를 즐길 수 있어 재미있다. 이런 부류의 책 중에서는 가독성이 높은 것도 큰 장점이다. 다만, 종종 눈에 띄는 오타나 문장의 오류는 편집상 좀 더 섬세한 교정이 더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앎을 향한 즐거운 지적 탐구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