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트 Axt 2024.9.10 - no.56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양한 문학의 맛을 즐기는 시간!






 세상의 모든 핑크는 다 끌어다 모은 것 같은 이 핑크핑크함이라니! 격월간 문학잡지 Axt9,10월호를 받자마자 나는 강렬한 핑크의 존재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내 꾸미고 꾸미다 못해 꾸밈이 넘쳐흐르는 듯한 표지 속 작품에 복잡 미묘한 감정이 따라붙는 것은 꾸밈이라는 속성과 물성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핑크라는 프레임을 제대로 시각화해보겠다고 결심한 듯한 윤정미 작가의 의도에 저격당한 것일지도.

 



  격월간 문학잡지 Axt56호의 키워드는 꾸꾸꾸. ‘꾸안꾸의 대척점에 있는 꾸꾸꾸는 각자의 개성에 맞춰 무언가를 꾸미고 꾸미는 행위와 트렌드를 반영한 신조어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폰꾸(휴대폰 꾸미기), 백꾸(가방 꾸미기), 신꾸(신발 꾸미기), 뇌꾸(공부, 자기계발), 통꾸(통장 꾸미기)어디에 가져다 붙여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히 모든 것을 꾸미고, 꾸밀 수 있는 시대인 듯하다. 꾸밈의 주체도, 꾸밈을 추구하는 가치관도 다양해진 세상이다. 그런 의미로 이번 호에서는 나만의 개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으로써, 거짓을 사실인 것처럼 지어내는의식적 행위로써,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계획을 짜고일을 꾸미는의지의 행위로써, 꾸밈에 반영된 다양한 의미와 면면들을 살펴본다.

 



당신의 꾸꾸꾸는 어떤 시선에 동기화되는가

 



소설은 백지 위에서 그야말로 무엇이든지 붙이고 

꾸밀 수 있는 작업이에요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이미 완제품으로 나온 어떤 대상을 

새롭게 꾸미겠다는 주체성과 닿아 있어요

(……) 뭔가를 열심히 꾸미고, 꾸미는 걸 즐기는 사람은 결국 

새로운 걸 만드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 조예은 작가 인터뷰 중에서 16p

 



  『트로피컬 나이트적산가옥의 유령의 작가 조예은의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그녀는 소설 역시 백지 위에서 무엇이든지 붙이고 꾸미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이야기 속의 인물과 세계관을 어떻게 배치하고 채워나갈지에 대한 고민도 꾸밈이라는 행위의 일종인 셈이다. 결국 뭔가를 열심히 꾸미고 꾸미는 걸 즐기는 사람, 즉 자유롭게 자신의 취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창작가가 많아진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여기에 나의 감상을 덧붙여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정성껏 글을 쓰고(물론 그 마음에는 못 미치는 실력이지만) 그것으로 나만의 공간(SNS)을 꾸미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겐 더더욱.

 



오히려 요즘엔 작품이 독자를 꾸미는 경우도 눈에 띄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쌍방 꾸밈이 되는 거죠. 독자는 작품에 각자의 해석과 감상을 덧붙이고, 그걸 정성껏 가꾼 자신의 공간에 보여주면서(SNS나 블로그 같은 온라인 공간과 오프라인의 관계를 전부 포함해서)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취향과 가치관을 동시에 드러내는 거예요.

어떤 방향이든 작품이 새롭게, 자주 꾸며진다는 건 반길 일입니다. 너무 엄숙할 필요도 없고, 의도와 다르게 꾸며진다고 원래 작품이 죽는 것도 아니니까요. 이야기는 많이 이야기될수록 생명력을 얻습니다. / 조예은 작가 인터뷰 중에서 25p

 


실용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 때로는 실용적인 물건이 해결해주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해요. 꾸미기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 조예은 작가 인터뷰 중에서 25p

 







  일상문화 비평가인 도우리의 !(-)!*!에서는 자본주의와 맞물려있는 꾸밈의 구조를 살펴본다. 덕분에 나의 꾸꾸꾸는 무엇을 위한, 무엇을 향한 꾸밈인가를 고민해보게 된다. 한편, 꾸밈이 직업인 북디자이너지만 독자들에게 즐거운 독서 경험을 선사하고픈 꾸밈없는 마음으로 작업을 한다던 김마리의 꾸미는 손끝과 꾸밈없는 마음은 고르고 고른 정제된 꾸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나의 꾸꾸꾸는 오롯이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비롯되는지, 타인의 시선 혹은 카메라와 인스타에 연동되는 시선에서 비롯되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보기를 제안하는 ‘cover story’ 박지수의 글도 특별한 여운을 준다.

 



윤정미의 사진 작업 <핑크&블루 프로젝트>는 안다고 생각했지만 직시하지 못했던 어떤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던 어떤 현실을 내 앞에 제시해준다. 무지개색을 앞세우는 퀴어축제가 열리는 시대에도 여전히 남자는 블루, 여자는 핑크라는 컬러 코드가 우리의 일상 곳곳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젠더플루이드와 팬젠더가 거론되는 시대에도 여전히 성별 이분법은 우리의 삶을 집요하고도 촘촘하게 지배한다는 현실을 말이다. / ‘cover story’ 박지수의 글 중에서 67p

 









  『마고를 쓴 한정현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창세신이자 대지모신으로 대한민국 토속신앙에서 유일한 여성 신인 마고를 통해 약자라서 착취당하고, 힘을 가지면 마녀라 낙인찍히거나 그 배후를 의심받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전작 마고처럼, 이번 호에 수록된 어느 날 여신님의 다리 위에 우리가에서도 배신한 남자의 목을 머리칼로 감아 죽이고 결국 요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교토의 하시 히메를 만날 수 있다. 순응과 인내를 강요받았던 여성들이 서로 끌어안고 연대하면서 뿌리 깊은 여성 혐오의 역사를 보듬는 과정이 읽는 내내 마음을 울컥이게 한다.

 

 



슌지의 여동생은 3·11 대지진 대피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성폭행을 당한 후 자살했다. 그때 슌지는 도쿄에 있어서 여동생의 안부를 빠르게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슌지는 너무 당황하여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라는 말만을 반복하고야 말았다. 슌지의 여동생은 얼마 후 후쿠시마로 이동한 후 해변으로 걸어 들어갔다고 했다. / ‘key-word’ <어느 날 여신님의 다리 위에 우리가>, 한정현의 소설 중에서 126p

 


나는 남편과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그냥 살았다. 말 그대로, 그냥, 살았다. 그곳은 가장 편하면서도 가장 불편한 곳이었다.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은 했다. 생각만 했다. 때로는 벌받는 기분으로, 그냥, 살았다. 내 죄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할 의욕도 없는 채로. 어쩌면 깊이 생각하는 것이 두려워서. 그렇게, 그냥, 살았다. / ‘key-word’ <비트와 모모>, 위수정의 소설 중에서 155p

 


나는 또 어떤 순간을 지나쳐버린 것일가. 놓친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 ‘key-word’ <비트와 모모>, 위수정의 소설 중에서 166p




  문예지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문학의 결과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Axt가 꼭 그렇다. 다음 호는 또 어떤 주제로 문학 안팎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