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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식료품점
제임스 맥브라이드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4년 8월
평점 :
대공황 전후, 작은 마을 치킨힐에서 길어 올린 놀랍도록 아름다운 포용의 서사시!
유쾌하고 따스하면서 시대의 모순과 그늘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제임스 맥브라이드의 소설은 늘 최고다!
1972년, 펜실베이니아 포츠타운에 자리한 치킨힐의 오래된 우물 바닥에서 유골 한 구가 발견된다. 유골의 정체는 무엇이고, 왜 그곳에 있게 되었을까? 유골에 얽힌 비밀을 풀기 위해 이야기는 47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미국 역사상 가장 길었던 경제 위기의 시대였던 대공황 직전으로, 치킨힐은 흑인, 유대인, 그리고 백인 이민자들 중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1900년부터 1920년까지 동유럽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루마니아에서 조직적으로 오스트리아와 독일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 모셰를 비롯해, 흑인 분리 정책으로 미국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내몰린 흑인 무리와 몇 안 되는 백인 상인들이 살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듯 다른 언어, 다른 종교,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이들이 한 마을을 이루어 살다 보니 공동의 목표는 흐려지고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자주 드러내곤 하는데, 그 사이에서 유일하게 구심점이 되어준 건 ‘하늘과 땅 식료품점’의 주인인 초나였다.
초나는 사랑스러운 모두의 이웃일 뿐만 아니라 이들의 억압된 자유에 숨을 불어 넣는 동맥이었다. 차별받던 흑인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었고,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우는 극우비밀결사단체인 KKK의 행진에 대해 고발 기사를 쓰는 데 거침없으며, 가난한 이웃들을 사랑으로 포용하는 데에도 망설임이 않았다. 그녀 역시 많은 사회적 제약이 뒤따랐던 유대인 사회의 여성이었지만 이에 순응하지 않는 당차고 밝은 캐릭터였다. 불의의 사고로 청력을 잃은 흑인 소년 도도를 감금과 폭행이 만연한 펜허스트 수감시설에서 구해오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어긋난 마음들을 포용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초나의 에너지가 모두에게 전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빛은 서로 다른 문화 간의
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서로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요.” / 99p
이처럼 작가 제임스 맥브라이드는 대공황 전후의 미국 사회에서 낙후되고 소외된 공동체로 하여금 놀랍도록 아름다운 사랑과 포용의 서사를 써내려간다. 전작인 『어메이징 브루클린』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의 미스터리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점차 마을과 공동체 전체의 서사로 나아가면서 마침내 작지만 위대한 역사를 쌓아가는 과정을 가슴 벅찬 감동으로 그려낸다. 덕분에 우리는 불공정과 편견, 폭력의 역사를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선한 의지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미국인임이 자랑스럽다’라는 의미 없는 깃발을 위해 싸우는 대신 ‘나는 살아 있어 행복하다’라고 말했어야 했다. 다름이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 한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 모두 같은 인류이기 때문이다. / 287p
“시작이 잘못되었다고 끝나는 건 아니야. 협상의 시작일 수 있어.” / 405p
유쾌하고 따스하면서 시대의 모순과 그늘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제임스 맥브라이드의 소설은 늘 최고다. 역시 ‘디킨즈적이다’는 수식어가 결코 아깝지 않은 작가다. 재미와 감동을 모두 갖춘 영미 소설을 찾으시는 분들에게 이 작품을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