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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24.7.8 - no.55 ㅣ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7월
평점 :

문학이란 선의 안과 밖을 나누는 수많은 경계를 허무는 일이다!
경계를 허문 글쓰기의 드넓은 세계를 탐독하는 격월간 문학잡지!
격월간 문학잡지 『Axt』 55호의 주제는 ‘선 긋기’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 주변엔 수많은 ‘선(線)’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태어나 최초로 ‘선(線)’을 의식하기 시작한 건 아마도 놀이였을 것이다. ‘이 선 넘어가면 안 돼’, ‘이 선 밟으면 죽는 거야’ 승과 패는 선에 의해 좌우되며, 선은 공정한 것이라는 믿음을 놀이를 통해 키워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쪽 모두에게 똑바른 선이 그려지고, 이를 기준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공정함을 바라는 것은 일종의 환상’일지도 모른다던 박지수의 글처럼, 선이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누군가에게는 차별과 혐오, 소외와 배제의 기준이 될 수도 있음을 또한 목도하게 되었다. 커버 사진인 홍기웅의 <Rule>에서 감각하는 지점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선 밖으로 떨어지면 패배하고 마는 테니스 공의 운명과, 기어코 선 ‘안쪽’으로 진입하고야 말겠다는 우리의 분투가 겹쳐져 보이는 까닭이다.
나는 문학이야말로 우리 주변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선들을 감지하고, 그 속의 수많은 경계를 허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선을 긋는다면, 선 밖에서 할 수 없어 망설이는 이야기들을 해야만 하는 것이 문학이다. 이번 55호의 주제인 ‘선 긋기’를 통해 우리를 가르고 있는 경계선의 안팎을 들여다보는 일은 독자들에게도 매우 의미 있는 읽기가 될 것이다.
저는 제가 쓰는 모든 글이 시가 되길 바라요. 그러면 결국 모든 것이 될 수 있거든요. 보이지 않는 경계와 선을 지우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감추려 함으로써 그 존재를 더욱 현현하게 드러내는 것이 시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시의 역할이라고, 지금은 믿고 싶어요. / 박참새 시인의 인터뷰 중에서 18p



이번 호에서는 천쓰홍의 소설 『귀신들의 땅』을 읽고 황인찬 시인과 홍칼리 무당, 김수현 서점원이 비대면으로 나눈 채팅이 인상적이다. 아직 이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세 분의 가이드에 따라 인간과 귀신, 비퀴어와 퀴어, 도시와 시골,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등 다양한 경계를 가로지르며 선의 바깥에 놓인 등장인물들에 주목하여 읽었다. 이를 통해 ‘말할 수 없어’ 고통스러운 이들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하지 못한 말이 있는 곳에 진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판 『시녀 이야기』에 가까운 황모과의 「브라이덜 하이스쿨」도 기억에 남는다. 일부다처제인 사회를 배경으로, 정숙한 여성을 길러내는 신부 양성학교 ‘요조 브라이덜 하이스쿨’의 화장실 청소부원으로 빙의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독특한 소설이다. 다소 황당한 설정에 얼마간 의아하다가도, ‘이야기’를 지음으로써 소녀들을 해방시키고 죽은 주인공의 역할을 이어가는 베키를 통해 가슴 벅찬 해방감을 느끼게 되는 작품이다. 새롭게 연재를 시작한 김숨의 소설 「초대」는 벌써부터 완결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섬이란 무대를 배경으로 숨 막히는 개인사가 종횡무진 펼쳐지는데, 어쩐지 그 끝에 차마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가슴 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다.
잘 안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세계가 낯설기 그지없는 얼굴로 돌진해오는 순간을 포착하는 게 소설이라면. 낯설기 짝이 없던 세계가 무섭도록 익숙한 얼굴로 돌변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게 소설이라면. / 너는 별을 보자며, 김경욱의 소설 중에서 158p
섬에서는 인간이든, 짐승이든, 식물이든 사는 게 만만치 않다. 섬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은 것들은 소름끼치도록 기괴하고 흉측하다. 여자는 신이 있다면, 그리고 그 신에게 눈이 있다면 인간인 자신 역시 흉한 모습일 것 같다. / 초대, 김숨의 소설 중에서 219p
“해,해녀들이 그,그래도 사,사공을 위,위했어. 바,바다에서 마,막 딴 전,전복을 머,머,먹으라고 줘…… 뭐,먹고 기,기운 내라고…… 바,바다 위,위로 오,오,올라올 때 여,여자들 어,얼굴을 보,보면 저,전복을 머,먹을 수가 어,없어…… 바, 바닷속에서 수,숨을 차,참느라 요,용을 쓰,쓰고 난 어,얼굴을 보,보면 아,안쓰러워서 바,받아 머,먹을 수가 어,없어…….” / 초대, 김숨의 소설 중에서 219p



경계를 허문 글쓰기의 드넓은 세계를 탐독하는 격월간 문학잡지로 이번 호 역시 묵직하다. 다음 호도 기대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