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뉴어리의 푸른 문
앨릭스 E. 해로우 지음, 노진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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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고 두 세계 간에 교류가 일어날 때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 시절, 우리가 꿈꿨던 동화를 이제야 만난 것 같은 느낌!





  소설의 배경인 1900년대 전후는 그 어느 때보다 이성과 합리성이 강조되었던 시대였다. 하지만 유색인들을 향한 차별과 여성들의 권리를 극도로 제한하는 사회 분위기는 여전했다. 이를 테면 로크 씨와 같은 부유하고 힘 있는 백인들이 힘들게 일하고 헌신한 덕분에 삶의 질이 개선되었고 질서가 안정되었으며 야만적인 식민지가 문명화되고 있다고 믿었던 때였다.



  주인공인 재뉴어리는 당시 전혀 인권을 보장받지 못했던 여성이자 유색 인종이었으나, 고고학 협회 회장인 로크 씨에게 고용된 아빠가 세계 도처에서 보물을 발굴하는 일을 하는 덕분에 로크하우스에서 안정적인 보살핌을 받고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과 변화에 대한 갈망이 컸던 재뉴어리는 현실에 순응하고 착한 아이로 살 것을 요구하는 로크 씨의 엄격한 태도에 점점 반항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무렵, 재뉴어리가 ‘푸른 문(Door)’을 발견한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문(Door)은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 문은 여기와 저기, 우리와 그들, 평범과 마법이 나뉘는 분기점이다.

문이 열리고 두 세계 간에 교류가 일어날 때 이야기가 시작된다. / 8p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푸른 문’을 발견하게 된 재뉴어리는 연이어 아버지가 남긴 책 《일만 개의 문》에 얽힌 비밀과, 자신에게만 있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게 된다. 하지만 사사건건 이를 방해하려는 세력이 나타나고, 마침내 재뉴어리는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과연, 재뉴어리는 사랑하는 이들을 되찾고 엄격했던 자신의 세상을 부수고 나와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지금은 그 중간 지대를 문지방이라고 부른다. 문지방(Threshold)의 T는 두 공간을 가른다. 문지방은 위험한 곳이다. 이곳도 저곳도 아니며, 문지방을 넘는 행위는 곧 도중에 날개가 돋을 거라고 순진하게 믿으며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머뭇거리거나 의심하면 안 된다. 중간 지대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 22p


“얘야, 힘은 말이다, 언어란다. 또한 지형과 통화이기도 하면서 유감이지만 피부색이기도 해. 이건 네가 개인적으로 기분 나빠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야. 그냥 이 세상의 순리다. 이 사실에 빨리 적응할수록 좋아.” / 70p


낯선 흑인 남자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만행을 묘사한 칼럼도 읽었고, 백인 여자를 원하는 그들의 욕망을 그린 만화를 보기도 했다. 만화에서 본 흑인들은 하나같이 괴물 같았고, 팔에는 털이 숭숭 났으며 넝마 차림에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 88p


그렇다면 다른 세상의 본질은 무엇일까? 앞 장에서 알게 되었듯이 다른 세상은 끝없이 다양하고 늘 변하며 종종 우리가 사는 세상의 관습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세상 관습을 우주의 물리 법칙이라고 부를 정도로 오만하다. 붉은 피부에 날개 달린 남녀가 사는 세상도 있고, 아예 남녀라는 성벽 없이 그 중간 어디쯤 해당하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세상도 있다. / 199p







  『재뉴어리의 푸른 문』은 억압된 환경 속에서 자라난 소녀 재뉴어리가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발견하면서 잃어버린 가족과 자유로운 미래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판타지 소설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문’ 즉, ‘포털’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장치로 활용된다. 다른 세상으로 이동할 수 있는 문이 열리고 닫히면서 연이어 벌어지는 위기와 극복의 여정은, 변화와 저항 그리고 새로운 기회를 향한 인간의 열망과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은 그저 ‘발견’되는 것인 줄 알았지만, 스스로 열쇠가 되어 문을 ‘만드는’ 설계자로 성장하는 재뉴어리의 모습은 새로운 변화와 기회를 갈망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나의 피 자체가 일종의 열쇠요, 내가 새로운 이야기를 직접 써 내려갈 수 있게 해주는 잉크였다. / 271p








  역사와 판타지를 넘나드는 기발한 상상력과 잘 벼린 이야기의 힘에 꽉 사로잡힌 채 읽었다. 무엇보다 아직 내가 가보지 않은 세계로 향하는 문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힘이 되어 줄 작품이다. 이 책을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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