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되다 - 인간의 코딩 오류, 경이로운 문명을 만들다
루이스 다트넬 지음, 이충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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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자신의 결함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

인류에 관한 아주 지적이고 놀라운 통찰력을 선사하는 책!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사람은 합리적 동물이라고 흔히 일컬어져 왔다. 나는 평생 동안 그 증거를 찾으려고 애썼다.”고 말한 적 있다. 우리는 종종 진화라는 이름으로 쓰인 인류의 역사가 늘 최선의 방향과 성공적인 결과를 좇아 발전해왔다고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인류의 진화는 우리가 지닌 생물학적 결함을 보완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이자, 우리가 가진 기능과 결함 사이에서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임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진화의 진정한 가치는, 본질적으로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그것을 뛰어넘고자 한 거듭된 시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인류가 자신들이 지닌 생물학적 결함과 한계를 딛고 어떻게 문명과 세계사를 형성해갔는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저작이자, 우리에게 새로운 인류학의 프레임을 제시하는 이 책은 그래서 더 유의미하다.





결함과 제약을 극복해가며 쌓아 올린 경이로운 인류의 역사





  진화심리학자인 니컬라 라이하니는 인류가 지구상의 거의 모든 서식지에서 번성할 수 있었던 비결로 “협력”을 강조했고, 진화인류학자인 브라이언 에어도 생존과 직결되는 인류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다정함, 즉 친화력”에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루이스 다트넬 역시 인류가 문명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유례없는 수준의 협력을 가능케 하는 사회성 소프트웨어가 뇌에서 발전되었음을 주장한다. 책의 첫 장인 ‘문명을 위한 소프트웨어’에서는 인류가 상호 이타성(협력, 공정성), 간접 호혜성(뒷담화, 잡담)으로 대표되는 사회성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정교하게 발전시켰고, 또 이를 통해 문명이라는 거대하고 잘 협응된 체계를 유지시킬 수 있었는지를 설명한다.




간접적 호혜성은 아주 정교한 형태의 인간 협력인데,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다른 동물이 갖지 못한 두 가지 중요한 기능이 필요하다.

우선 당사자들 사이에 상호 작용이 일어나는 것과 어느 쪽이 관대하게 또는 이기적으로 행동했는지를 목격한 목격자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의 행동에 관한 정보가 전체 집단의 공통 정보 풀에서 공유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뒷담화를 해야 한다. 만약 어떤 개인이 이기적으로 이득을 챙기고 남을 돕지 않아 산뢰할 수 없다는 평판을 받으면, 공동체 구성원들은 다음에 그 사기꾼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가 오더라도 그를 도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 45p



진화는 자신의 평판에 깊이 신경 쓰게 하는 인간 심리를 만들어냈고, 뒷담화는 우리를 공정하게 행동하도록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 46p










  두 번째 장 ‘가족’에서는 우리의 독특한 생식 행동이 어떻게 가족을 탄생시켰고, 여러 문화의 왕조들이 후계자를 확보하는 과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살펴본다. 여기에서 장자 상속은 귀족이 소유한 토지 및 작위와 특권이 분할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장치로 사용되었고, 정치권력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물려주는 방식에 있어서 일부일처제와 일부다처제와 같은 생식 체계가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질병 생물학(감염병, 유행병)이 인류의 역사에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 살펴본 3장과 4장을 특히 관심 있게 읽었다. 흑사병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구학적 재앙임에 틀림없지만, 노동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서유럽과 북유럽 지역의 봉건 제도를 종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당시 인구 과잉 상태에 빠져 있던 유럽을 임금 상승과 생활수준 향상, 사회적 이동성 증가로 더 다양한 사회와 경제 상태로 만드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결과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해본 우리로서는 감염병과 유행병이 때로는 인류의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만큼은 간과할 수 없을 듯하다.



많은 인지 편향은 우리 뇌가 연산 능력이 제한된 상태에서 발견법이라 부르는 단순한 경험 법칙을 사용해 기능을 최대한 발휘하려고 시도하다가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효율적인 인지적 지름길에 해당하는 방법인 발견법은 시간 제한이 있거나 정보가 불완전할 때 시간을 절약하는 일련의 요령을 사용해 모든 데이터를 일일이 완전하게 처리할 필요 없이 빠른 결정을 내리게 해준다. / 353p


한 개인은 아주 나쁜 추측을 할 수 있지만, 독립적인 추측을 하는 사람이 아주 많으면, 확산돼 있던 오차들이 놀랍게도 정확한 답을 향해 수렴한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판단과 결정도 집단이 내린 것이 더 합리적이고 인지 편향에 영향을 덜 받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모두의 뇌에 깊이 뿌리박힌 편향들이 무작위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즉, 그 편향들은 체계적이다. 이것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똑같이 적용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아놓은 집단에서도 오차가 상쇄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지 편향은 그것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 368p










  이 외에도 인구, 우리 뇌가 기능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물질(알코올, 카페인, 니코틴, 아편), 유전 부호에 존재하는 결함들(돌연변이), 다양한 인지 편향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되다』는 인류의 진화와 역사에 관한 총체적인 지식이 담겨 있는 매력적인 책이다. 결함과 제약을 극복해가며 쌓아 올린 인류의 장대한 역사를 이토록 명쾌하고 훌륭하게 소개한 책이 또 있을까. 무엇보다 생물학자로서 인간의 본성과 생물학적 특징들을 탐구하고 분석한 루이스 다트넬의 통찰력은 전작인 『오리진』과 더불어 매우 강렬하고 강력하다. 루이스 다트넬의 팬으로서, 『총, 균, 쇠』, 『사피엔스』와 더불어 인류학에 관한 새로운 고전으로 널리 소개되고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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