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미스터리 2024.여름호 - 82호
최희주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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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호러를 읽는 맛이란, 이런 것!






  퓰리처상을 수상한 기자이자 작가인 토머스 프렌치는 영어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단어는 ‘I love you(당신을 사랑한다)’가 아니라 ‘To be continued(계속)’라고 말한 적이 있다(본 호 <연재2_미스터리 쓰는 법>에 인용된 글을 빌려왔다). 독자들에게 “그래서?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됐는데?”를 끊임없이 갈구하게 만드는 것. 특히 미스터리라는 장르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를 압도하며 그들의 마음을 붙드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세상의 비밀에 접근할 때 필요한 감각’이라는 이번 <계간 미스터리> 82호의 부제는 참으로 탁월하다. 계속해서 세상의 비밀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미스터리 본연의 정체성과, 현실에 발을 딛고 있되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기묘한 감각을 제공해야만 하는 미스터리의 사명 같은 것들을 담은 본 호의 취지와 잘 맞는 듯해서다. 마침 이번 호는 ‘미스터리 호러’를 테마로 하고 있다. 무더운 여름에 딱 끌리는 맛이 아닌가.



  이번 호는 특집인 <당신 옆의 가해자-딥페이크 업체 추적기>에서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N번방 사건 이후, 여전히 딥페방(딥페이크방), 지능방(지인능욕방), 합사방(합성사진방), 겹지인방 등 이름만 다를 뿐 보다 지능적이고 노골적으로 변해간 텔레그램의 실체를 다룬 취재기다. 그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나는 가해자가 누군지 모르는데 그는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아무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 다들 이 정도는 큰일 아니라고 해서 억지로 괜찮은 척 일상을 살아야 했던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던 피해자와의 인터뷰가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이런 현실을 볼 때마다 내가 세상을 너무 미화시켜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늘 현실을 돌아봐야만 한다. 부조리하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현실이란 공포, 그 잔인한 삶의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벌어지는 일은 똑같았다. 딥페이크로 만들어진 허위 합성물이 게재되고 유희를 위해 허무맹랑하고 불쾌한 성희롱이 1월부터 3개월 동안 이루어진 잠입 취재 기간 내내 끝없이 이어졌다.

이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도 최소 세 개의 텔레그램 방(각 4064명, 292명, 997명)에서 비슷한 일이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다. / <특집1-르포르타주_ 당신 옆의 가해자-딥페이크 업체 추적기> 중에서 11p


앤드리아 캠벨의 “활자화된 실수는 씻어낼 수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독자들의 세계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수두룩하다. 사소한 디테일일지라도 대충 인터넷 검색으로 때우려는 시도는 작가의 성실성에 대한 의문만 남길 뿐이다. 특히 장르가 미스터리라면 더욱더 용서받기 힘들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치열하게 취재하고 조사하려는 창작자만이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 <특집2-참관기_ 창작자를 위한 취재와 리서치 컨퍼런스> 중에서 30p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묘미와 매력을 꽉 담은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가장 먼저 신인상 수상작인 장유남 작가의 소설 <탁묘>는 읽는 내내 날선 공포와 긴장감을 유발하는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효진과 애희가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는 단순한 극의 구도만으로도 소름끼치는 현장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은 장유남 작가만의 특별한 재능인 것 같다. 이 작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형제원, 그 안에서 성노예처럼 돌림되었던 여자 ‘메리’의 비극을 통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비추는 한새마의 작품 「메리」도 인상 깊다. 다만 다양한 작품을 읽다보면 이와 유사한 배경의 작품들을(실제 있었던 사건이 있기도 한 만큼) 읽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신선함은 조금 떨어지지만, 축사 재건축 공사장에서 암암리에 벌어지는 사회적·개인적 만행들을 사실감 있게 다루었다는 점, 메리의 날카로운 복수로 방점을 찍는 장면에서는 소름끼치는 쾌감과 공포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작품이다. 한편, 잘려나간 두 팔이 자꾸 자신의 목을 조른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박건우의 「환상통」은 정신적 고통이 신체의 감각을 압도하는 기이한 공포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마지막 장면은 진정 소~~오름!



애희가 고집스럽게 날 바라봤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병원에 가는 것보다 나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더 중요하단 말인가? / <신인상 수상작_ 탁묘, 장유남> 작품 중에서 43p


“효진이 넌 모르겠지만 난 어릴 때부터 외로움을 많이 탔어. 그게 의존적인 성격을 만들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의존적인 게 꼭 나쁜 건 아니잖아? 그 사람 잘못도 아닌데…. 자라온 환경에 따라 각자의 성격이 형성된 이유가 있을 텐데 말이야. 그런데 사람들은 절대적인 기준만 들이대려고 해. 남자한테 경제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의존하는 여자를 한심하게 생각하지. 마치 패배자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해. 누군가에겐 쉬운 일이 다른 누군가에겐 죽기보다 어려운 일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 <신인상 수상작_ 탁묘, 장유남> 작품 중에서 55p


나는 축사 재건축 공사장에 자주 불려 다녔다. 개축 후 다시 축산업을 재개할 생각 없이 보조금만 받으려고 하는, 시쳇말로 ‘먹튀’ 현장에도 투입된 적이 있었다. 그런 경우 키우고 있던 소나 돼지를 폐건축물과 함께 묻어버리는 만행도 곧잘 벌어졌다. / <메리, 한새마> 작품 중에서 100p


잠든 사이 느닷없이 두 손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기 목을 졸랐다…. 믿기 힘든 이야기 같지만 사실 전혀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드물지만 한쪽 손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특이한 신경 질환을 보이는 환자가 보고된 바 있다. 개중에는 한쪽 손이 자기 몸을 공격했다는 사례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선 치료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 환자에겐 그런 일이 불가능했다. 그의 두 팔은 이미 뿌리부터 잘려 나간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 <환상통, 박건우> 작품 중에서 110p










  「해녀와 아들」로 한국추리문학상인 황금펜상을 수상한 박소해 작가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물을 뺀 저수지에서 발견된 두 구의 시신, 저수지에 드리워진 주술, 믿을 수 없는 화자의 목소리가 한 데 얽힌 작품으로, 제주를 배경으로 특유의 미스터리 지도를 완성해가는 박소해 작가의 행보가 인상적이다. 신내림을 받으라는 어머니의 말을 거부하고 경찰이 된 고 형사란 여성 캐릭터가 특히 눈에 띄는데, 다만 그 설정이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 어떤 단서를 제공하거나 제대로 활용되지 않은 점은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형사 같아 보이지 않는 외모에 귓것을 보는 여성 형사 캐릭터의 등장이라니, 이 작품을 고 형사라는 새로운 캐릭터의 활약을 예고하는 전초전으로 읽어도 좋을 듯하다. 좌승주 형사를 잇는 또 다른 형사 시리즈로 다음 작품이 무척 기대가 된다.



“저게 주술단지라고요?”

“나 어릴 적엔 수산 저수지에서 자살한 사람들이 꽤 있어서, 여기 서쪽에서 제일 유명한 큰 심방이 와서 굿을 하고 주술단지를 물속에 넣었대. 액을 막기 위해서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각각 하나씩. 근데 단지 하나가 저렇게 크게 깨져버렸네.” / <저수지, 박소해> 작품 중에서 132p


당황하는 눈치였다. 경찰이라면, 촉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넘어가기 쉽지 않은 그 1초. 아, 모녀는 숨어 살고 있다. 여권을 제시하지 않아도 되고, 가짜 신분증이라도 확인하지 않는 외딴곳의 숙소를 전전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작정하고 신분을 세탁하고 여기에 숨어들었다면, 누구도 쉽게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순례자를 박대하지 않는 이 길에서 복잡한 과거를 가진 이들처럼 너도 살고 있었구나. 어쩌면, 태현도 그럴 것이다. / <고스트 하이커: 부랑, 김인영> 작품 중에서 183p


미스터리는 ‘(범죄를 해결하는) 이야기 너머의 (범죄를 구성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이중으로 작동하는 이야기의 설득력을 강조해야 한다. 범죄 사실이란 전체 이야기에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으며, 배후에 있는 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실의 조각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빙산의 구조를 밝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 탐정이 구성하는 명시적인 플롯과 범죄의 수행 과정으로 드러날 암시적인 플롯이 상호작용함으로써 복합적인 매력을 형성한다. 따라서 미스터리는 범죄자의 심리를 이해하거나 범죄에 내포된 복합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개인의 사연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구성되는지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연재1_한국 미스터리를 읽는 네 가지 키워드 ?> 중에서 197p



  이 외에도 미스터리인 듯 아닌 듯 시종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한 기묘한 감각을 선사하는 김인영 작가의 「고스트 하이커: 부랑」, 미스터리 오컬트 장편소설 《수호신》의 청예 작가와의 인터뷰, 미스터리 창작자들을 위한 연재글도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 호에 수록된 글들은 하나하나가 다 알찬 느낌이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미스터리 계간지만의 특별한 매력도 꼭 느껴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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