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 매트리스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양미래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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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랄하고 통렬하며 우아하다!

놀랍다는 말로는 부족한, 여성에 관한 가장 강렬한 서사를 선사하는 작가!





  놀랍게도 마거릿 애트우드는 실제 역사 속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은 쓰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책에서도 “모든 이야기는 소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야기’는 사회적 리얼리즘의 경계 안에 머무는 단편 소설일 수도 있고, 우리가 대체로 이견 없이 ‘실제 삶’이라 부르는 것에 관한 실화일 수도 있다”고 밝힌다. 이것이 전작 『시녀 이야기』, 『증언들』, 『그레이스』 등의 작품을 비롯해 신작 『스톤 매트리스』 속 아홉 편의 이야기가 거침없고 괴랄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깊이 발을 붙이고 있는 듯한 감각을 선사하는 이유다. 이 작품집에서도 그녀는 환상과 현실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남성 중심 사회와 ‘여성성’이라는 표상을 향해 가장 비범한 방식으로 복수를 단행한다.



아름다움은 일종의 환상이다. 또한 일종의 경고다. 아름다움도 독나비처럼 어두운 이면을 간직하고 있는 터다. / 「알핀랜드」 중에서 9p



  ‘처음에 버나는 아무도 죽일 생각이 없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표제작 「스톤 매트리스」에는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에게 속은 대가로 일생을 뒤틀린 욕망 속에서 살아야 했던 중년의 여인, 버나가 등장한다. 강간은 어떤 미치광이가 수풀에 숨어 있다가 덮쳤을 때 벌어지는 일이지, 무도회 공식 파트너가 황량한 숲에서 겁박하다가 한 겹 한 겹 찢어발겨도 남자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절이 있었다. 버나는 우연히 북극으로 향하는 유람선에서 그날의 밥을 만난다. 하지만 밥은 그녀를 기억하지 못할 뿐더러 내내 평온한 삶을 살았던 것도 모자라 그녀에게 호감을 내비추기까지 한다. 어떻게 그 치욕스러운 과거를 지울 수 있단 말인가. 버나는 과거로부터, 상처로부터 도망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아주 은밀하고도 교묘한 방법으로 그에게 최고의 복수를 가하려 한다.



버나는 얼굴을 톡톡 두드리며 화장을 고치고 방수 기능이 있다지만 볼까지 번져 버린 마스카라 흔적을 지운다. 용기를 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이번만큼은. 힘겨워도 견뎌낼 것이다. 지금은 밥 다섯 명이 덤벼도 상대할 수 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 「스톤 매트리스」 중에서 311p


바로 지질학 역사 초기, 그러니까 어류, 공룡, 포유류가 등장하기도 전에 화석화된 무려 19억 년 된 스트로마톨라이트를, 지구에서 최초로 보존된 형태의 생명체를 보는 특권을 누리게 되실 겁니다.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뭘까요? 그가 눈을 번득이며 수사적인 질문을 던진다.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단어는 매트리스를 뜻하는 그리스어 스트로마에 돌을 뜻하는 리토스의 어원을 결합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스톤 매트리스, 즉 청록색 조류가 층층이 쌓여 둔덕이나 돔 모양을 형성한 화석화된 쿠션인 거죠. 이 청록색 조류는 지금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산호를 형성한 것과 똑같은 조류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 「스톤 매트리스」 중에서 322p










  호색한인 시인 개빈과 그를 둘러싼 여성들의 이야기인 연작 단편 「알핀랜드」, 「돌아온 자」, 「다크 레이디」 역시 단연 눈에 띈다. ‘그 시절에 여자애들은 그렇게 살았다. 자기 몸이 녹초가 되도록 일해 가며 스스로가 천재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의 허황한 생각을 떠받쳤다.’던 「알핀랜드」 속 문장처럼, 개빈의 연인이었던 콘스턴스는 가난한 시인인 개빈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알핀랜드’라는 가상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 판타지 소설 작가가 된다. 하지만 개빈은 마저리라는 여성과 외도를 벌이고, 마저리는 ‘뮤즈’라는 그럴 듯한 말로 자신의 신체를 유린당한 뒤 버림받는다. 이제 세 번째 부인인 서른 살 연하의 여성 레이놀즈가 개빈의 말년을 지키고 있지만, 그녀 역시 헌신하는 아내로서의 존재감만 겨우 붙들고 있을 뿐이다.



“바보같이 굴지 마. 내 말 이해했잖아. 내 말은, 세상 모든 게 엉덩이와 관련된 건 아니라는 거야. 그 여자 이름은 너비나야. 존중받아야 마땅한 사람이지.” / 「돌아온 자」 중에서 71p


이런 올림머리는 뭐랄까, 너무도 우아하고 단정하며, 너무도 처녀스럽다. 게다가 틀어올려진 머리를 풀고 헝클어뜨리면 머리칼이 자유롭게 흩날리며 스르르 어깨 아래로, 가슴 위로, 베개 위로 흘러내린다. 개빈은 머릿속으로 그런 광경을 하나하나 그려 본다. 내가 아는 올림머리들. / 「돌아온 자」 중에서 81p


하지만 조리는 틴의 팔을 놓더니 움직이지 않는다.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다.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모든 게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제 삶 전체가요.” 우는 건가? 그렇다. 청동생과 금색으로 반짝반짝하며 흐르는 진짜 눈물이다.

“나도 고통스러웠어요.” 콘스턴스가 말한다.

“알아요.” 조리가 말한다. 두 사람은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정신적 교감 속에 갇힌 채 서로의 눈을 응시하고 있다.

“우리는 두 가지 장소에 살고 있어요. 알핀랜드에는 과거가 없어요. 시간 자체가 없죠. 하지만 여기에는 시간이 있어요.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시간이요. 우리에게는 아직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어요.” / 「다크 레이디」 중에서 161p








  연작 시리즈의 말미에서 개빈의 장례식장에 모인 여성들은 각자의 과거를 용서하고 서로를 이해한다. 평생 마음속에 가둬두기만 했던 상처들로부터, 무력하고 연약했던 시간들로부터, 여성이라는 이유로 감당해야 했던 사회적 시선과 통념들에 작별을 고한다. 어쩌면 이것이 마거릿 애트우드가 문학이라는 언어로 새기고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스톤 매트리스는 아닐까. 역시 마거릿 애트우드는 놀랍다는 말로는 부족한, 여성에 관한 가장 강렬한 서사를 선사하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녀의 이야기가 영원히 멈추지 않기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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