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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년째 열다섯 ㅣ 텍스트T 1
김혜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야호들이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을 것만 같다!
단군 신화와 여우 전설의 이야기가 만나 완성된 매력적인 판타지!
한 명도 아니고 무려 세쌍둥이 자매의 전학 소식에 수석중학교 2학년 2반이 떠들썩하다. 슬로바키아에서 왔다는 세쌍둥이 모두, 긴 생머리에 얼굴이 창백할 정도로 하얀 데다 눈꼬리까지 살짝 올라간 것이 어쩐지 예사롭지 않다. 봄, 여름, 가을이란 이름의 이들은 사실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한 야호족(여우)으로, 삼 대에 걸친 모녀지간이다. 할머니인 봄, 엄마인 여름은 오랜만에 열다섯의 나이로 둔갑해 앞으로 펼쳐질 학교생활에 한껏 들뜬 모습이지만, 오백 년째 열다섯의 나이로 살고 있는 가을은 이제 이런 생활이 지긋지긋하다.
열다섯, 너의 순간들을 응원해
오백 년째 열다섯의 나이로 산다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오백 년째 열다섯』은 인간으로 둔갑한 여우, 야호족의 이야기를 다룬 한국형 판타지 소설이다. 환웅이 인간 세계로 내려와 신단수 밑에 터를 잡았을 때, 인간이 되고 싶었던 곰과 범과 달리 인간이 되길 거부했던 여우가 단군을 도와 달라는 웅녀의 부탁으로 최초의 구슬을 받고 야호족을 이루었다는 독특한 설정을 바탕으로, 야호족이자 오백 년 동안 열다섯 살로 살아온 한 여자아이의 비밀스러운 운명과 성장을 담고 있다.
서희라는 이름에서 선화로, 이제는 89번째 이름인 가을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의심하기 마련인 청소년들의 불완전한 자아가 엿보인다. 가을은 오백 년 째 열다섯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열다섯일 자신의 운명을 끔찍하게 여긴다. 야호로 살면서 항상 누군가로 위장해야만 하는 제 삶은 그저 빈껍데기일 뿐이라고,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내어줄 수 없는 현실에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목숨과도 같은 구슬을 가을에게 남기고 떠난 령의 가을에 대한 확신과, 세상 전부가 등을 돌려도 신우만은 곁에 있어줄 거라는 믿음은 가을을 점점 변화시킨다. ‘나’는 누구일까, 내가 가진 가능성을 의심하고 고민하기 마련인 청소년 독자들에게도 가을이 느끼는 고뇌와 그 속에서의 성장은 든든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좁고 어두운 곳에서 계속 그렇게 문 닫고 살면 답답해. 문 열고 나와야지.” / 35p
“우린 껍데기야. 우리 삶은 없어. 항상 누군가로 위장하며 살아. 오백 년째 열다섯 살로 사는 거 진짜 끔찍하다고.”
가을이 소리를 질렀고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좋았던 것도 많았잖아. 좋은 사람들도 만났고.” / 100p
‘여우 누이’, ‘은혜 갚은 까치', '호랑이 형님' 등 우리 옛이야기와 단군 신화를 엮어 새로운 한국형 판타지를 완성해낸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몰입도 높은 전개에 누구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메시지 또한 따듯하다. 청소년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판타지 소설을 찾으시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