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기다려줄게 - 아이의 닫힌 방문 앞에서 8년, 엄마가 느끼고 깨달은 것들
박성은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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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무너져버린 아이와 부모를 다시 일으키게 한 기다림의 시간들!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함께 눈물 짓고, 공감하고, 위로도 받았다!





  ‘2014년 5월 15일 그날 이후, 아이의 시간은 한참을 멈추어 섰다.’ 까닭 모를 두통이 찾아온 이후 시작된 아이의 등교 거부, 불안장애, 무기력증…. 『엄마가 기다려줄게』는 굳게 닫힌 아이의 방문 앞에서 고민하고, 자책하다 마침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기다림을 선택하기까지의 시간들을 회고한 글이다. 지금 어딘가에서 등교 거부, 우울, 사춘기 아이의 문제로 매일같이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고 있는 부모들이라면, 책 속의 글귀 하나하나에 공감하며 눈물 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절망 한가운데 서 있는 부모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응원



  병원에서 말하길, 아이는 또래보다 훨씬 예민한 데다 나이답지 않게 모순점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했다 한다. 어떤 상황이나 관계들 속에서 옳지 않은 행동, 부당함을 정확하게 감지해낸다고 했다. 그러나 해결 능력은 보통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아이에게는 없었다. 가족의 울타리 안에 있을 때는 자신의 타고난 기질대로 살아갈 수 있었지만 단체 생활에 있어서 예민함은 매순간 아이를 불안과 긴장 속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길어지는 등교 거부와 깊은 우울감을 헤아릴 길이 없던 부모의 입장에선 다른 아이들은 어려움 없이 잘 다니고 있는 것 같은데, 내 아이만 왜 이토록 심약한 것인지 두려운 마음만 더 커졌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더러 더 노력해야 한다고 다그쳤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제까지 아파만 하고 있을 거야. 잊을 건 잊어야지. 계속 그래봤자 너만 손해야. 다 잊을 수 있어. 그러니 노력해봐,’ 저자는 힘든 마음을 안아주기보다는 대책을 말하고 조언하고 비판하기만 했던 지난날을 고백한다. 막상 학교에 가면 별문제 없이 잘 지낼 거라고, 억지로라도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등교 전쟁 없이도 학교를 잘 가게 될 거라고 믿으면서.



꽉 들어찬 감정들은 입구를 찾지 못하는지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두 달 정도가 지나서야 아이는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이가 받은 상처, 마음의 고통, 불안함 그리고 무기력. 나는 아이를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엄마였다. 지금까지 내가 안다고 여겼던 아이의 모습은 나에게 유리한 것들뿐이었다. 영리하고, 공부 잘하고, 온순하고, 엄마 말 잘 듣는 아이로 말이다. / 41p


결석일수가 늘어나는 만큼 선생님의 다그침도 늘어났지만 반발하지 못했다. 나 또한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모든 걸 약한 내 아이 탓이라고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계속되는 등교 거부가 굳어질까 봐 겁이 났다. 어떻게든 데리고 오라는 선생님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 50p


‘의지’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었던 건 어쩌면 내가 가진 욕구의 포장지였을지 모른다. 솔직한 내 마음은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 가는 멀쩡한 아이가 내 아이였으면 싶고,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일지었을지도 모른다. 남들 보기에 떳떳하다는 것, 거기에서 아직 놓여나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는 나의 찌질함에 치를 떨면서도, 그래도 마음껏 기대하고 싶고 욕심내고 싶은 그 마음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98p








  “엄마, 기다려주세요.” 엄마로서 모든 자신감을 잃고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던 어느 날, 아이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이때부터 엄마는 아이가 숨어든 동굴의 실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아이는 분명히 수많은 SOS를 엄마에게 보내었을 텐데, 그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이기만 했던 건 아닐까. 아이가 은둔해있던 시간이 그토록 길었던 이유는, 아직은 조절이 어려운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아이의 마음에서 용기를 빼앗아간 건 아닐까. 정말 슬퍼해야 할 것은 학교를 가지 않는 것도, 생활 습관이 엉망이 된 것도 아니라, 다 무너져 내린 마음을 이끌고 깊은 쉼 속으로 빠져든 아이의 자존감과 힘을 잃고 꺼져버린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위기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있다. ‘사랑’도 그중의 하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많은 조건들이 내 아이를 존재 자체로 온전히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 10p


‘지금 내 아이의 우주가 커가고 있다. 아이가 충분히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나는 잘 기다려주면 된다. 내가 기다려주는 만큼 내 아이는 성장한다.’ / 30p


그저 내 아이에게는 내 아이만의 시간과 속도가 존재할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나는 다짐했다. ‘두려워할 것도, 조급해할 것도 아니다. 지금 아이는 에너지를 모으는 중이다. 다시 제 속도를 내기 위해서 지금 이 시간은 분명 필요하다.’ / 137p



  얼마 전, 3학년에 진학한 아이가 연일 눈물을 보이며 하교했다.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엄격한 선생님의 잦은 다그침에 잔뜩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굳이 화를 내지 않아도 되는데 큰 소리로 꾸짖는다고, 친구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말을 많이 한다고,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선생님의 모순된 태도에서 큰 불만을 느끼는 듯했다. 급기야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까지 나오니 우리 부부는 그 어느 때보다 아이와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선생님과 상담 시간도 갖고, 아이가 불안감을 느끼는 대신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독려하면서 아이의 마음을 읽어줄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다행히 지금은 꽤 적응을 한 상태이고, 여전히 학교에서 불편한 상황을 맞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부모와 나누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깊이 느꼈다. 그때그때 해결하지 않고 넘어간 문제들은 기어코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아이의 말을 항상 귀담아 들어주고, 아이를 향한 그릇된 열망과 조급함, 비현실적인 목표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동굴에 머무는 건 아이 하나면 된다. 아이 옆에서 같이 울고 있는 게 아이를 살리는 방법이 아니다. 아이를 살리려면 나 먼저 그 동굴에서 나와야 한다. 내 아이의 깊은 슬픔에 나도 같이 좌초되어서는 안 된다. 흔들리는 아이가 안타까워 그 배에 같이 승선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나만이라도 단단히 닻을 내리고 거친 풍랑에 떠내려가지 않고 있어야 흔들리는 아이를 잡아줄 수 있다. / 92p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벤다이어그램과 같다. 건강한 관계에는 적당히 겹쳐진 교집합이 존재한다. 두 개의 동그라미가 완전히 포개진다면 그것은 구속이거나 의존이 된다. 또 완전히 떨어지게 되면 그건 남남인 것과 다름없다. 적당히 포개지고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내가 속하지 않은 아이의 여집합을 인정하는 것이 서로 간에 건강한 관계이다. / 145p








  은둔형 외톨이, 우울감에 빠진 아이들이 많아졌다. 더 이상 한 가정만의 문제로만 여길 수 없을 만큼, 가까운 곳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들을 듣곤 한다. 때문에 아이의 닫힌 방문 앞에서 8년 동안 절망하고 신음했을 저자의 시간들이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함께 눈물 짓고, 공감하고, 위로도 받았다. 그 어떤 부모교육서보다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 부모의 태도와 관점에 대한 진정성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등교 거부를 비롯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는 자녀가 있다면,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으로 고민이 있는 부모라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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