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승부 세트 - 전2권
조세래 지음 / 문예춘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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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하다가슴이 벅차오른다!

바둑이란 승부 앞에서 뜨겁게 타오르고 스러져간 승부사들의 대서사시!

 

 

 

  중견화가인 박민수 화백은 한 시대를 풍미한 승부사였지만 이제는 은퇴해 조용히 칩거하고 있던 정명운 국수의 초상화를 부탁받는다그러던 어느 날문득 죽음을 직감한 정 국수는 박 화백에게 자신의 청을 꼭 들어달라는 말과 함께 한 눈에 보아도 극상품이라 칭할 만한 희대의 명반비자 바둑판을 내민다그리고 바둑판 위에 놓인 의문의 기보 한 장까지때는 1968백을 쥔 추동삼이란 자가 당시 천하무적에 가까웠던 정 국수와 겨루어 196수만에 백불계승을 거둔 대국이었다정 국수는 박 화백에게 추동삼을 찾아 이 바둑판을 돌려줄 것을 부탁하고 마침내 숨을 거둔다.

 

 

 

  추동삼은 대체 누구인가정 국수가 세상을 떠난 뒤박 화백은 한일기원의 해묵은 자료철에서 그가 1959년 전승이라는 대기록으로 입단하여 한일기원의 기사가 되었지만 몇 개월 기사 생활을 하다가 협회로부터 제명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하지만 어째서 이 기록 외에는 떠도는 야사나 기담에서조차 그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건지정 국수가 그를 필생의 적수로 생각하며 죽는 날까지 그와의 대국을 가슴에 품고 살았음에도 정식 기보 한 장조차 남아 있지 않은 건지박 화백은 의문투성으로 가득한 추동삼이란 인물에 깊은 호기심을 느끼고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격동의 시대바둑 승부사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위대한 승부

 

 

 

새는 새장을 벗어나야 님을 찾고

고기는 통발을 물리친 후에야 대해로 나아가며

승부사는 승부를 떠나야 진정한 승부사가 된다. / 6p

 

 

 

  『승부는 격동의 한중일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바둑이란 승부 앞에서 뜨겁게 타오르고 스러져간 승부사들의 대서사시를 담은 소설이다나라 없는 시대에 나라의 정신과 민족의 자존심만은 지키고 싶었던 바둑 승부사들의 처절한 삶과 위대한 승부를 다룬 작품으로이름 없이 사라져간 승부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돌아보게 하는 수작이다소설은 추동삼이라는 의문의 남자를 추적하는 과정 속에서바둑 역사에 전무후무한 발자취를 남겼을 기재였건만 조선의 몰락과 함께 역사에 이름 석 자도 실리지 못한 불운의 명인 여목, 30회 이상의 대국을 치르는 동안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연승함으로써 일본 바둑계에 불멸의 족적을 남긴 불세출의 천재 추평사근대 바둑의 마지막 명인으로 평생을 후진 양성에 몸을 바친 추상같은 기개와 고고한 기품을 지녔던 거인 설숙 등의 인물로 하여금 근현대 바둑사와 바둑에 대한 예도를 통해 진정한 승부의 의미를 전한다.

 

 

 

웬걸우리 연배 사람들에게 그분은 상징적인 인물이었소그러나 당시는 일제 치하와 격동의 시절이었고 해방사변이승만 시대의 독재…… 가히 한국 바둑의 암흑기였지……일본이 조선인의 정신세계까지 침략하던 시절에 그분은 비록 바둑이었지만 조선인의 정신과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소.” / 50p

 

 

그러나 바둑은 달랐다비록 몸은 굽혔지만 정신만은 굽히고 싶지 않은 게 최명길의 자존심이었다바둑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조선에 인재가 많고 적음의 척도였고 나아가서 정신적인 패배로까지 연결되었다. / 119p

 

 

그래조선의 운명도 이 밤하늘처럼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저 수많은 별들처럼 무수한 조선의 인재들이 살아 있는 한그 인재들이 새로운 조선에 밑거름이 된다면 이 암울한 시대는 스스로 물러가고야 말리라나 또한 기꺼이 그 밑거름이 되리라기꺼이……. / 169p

 

 

 




 

 

 

 

  개인적으로는 일본으로 유학을 간 김재석이 일본 기사들과 함께 설숙의 제자들이 있는 도장을 찾아와 바둑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일본이 3승을 하고 겨우 정명운이 1승을 따냈지만 이내 패하며 조선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질 찰나전혀 예상치 못했던 추동삼이 나서 연승을 이루어낸 뒤 탈진해 쓰러지는 장면은 승부에 대한 긴장감과 묵직하게 차오르는 숭고한 기사 정신혼신을 다해 반상 위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거는 승부 정신의 진면목을 바라보게 한다아마도 바둑 애호가라면 이 장면에서 농심 신라면배 상하이 대첩에서의 이창호 기사를 떠올리며 지난 명승부의 짜릿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바로 보았다바둑은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자신의 돌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개원의 대답에 소년이 되물었다.

버림으로써 득을 취하라는 뜻이온지?”

돌에 대해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매사가 그러합니까?”

아니다돌을 가벼이 보되 업수이 여기면 안 된다버려야 할 때가 있고 반드시 취해야 할 때가 있다.” / 2권 65p

 

 

한 판 바둑에서 승부의 기회는 한 번 아니면 두 번이다그때 판을 결정짓지 못하면 승부사가 될 수 없다판을 결정하는 힘은 수읽기와 형세 판단이다.”

아버지 입에서 진한 술냄새가 났다.

……승부사는 결코 감각에 의존해선 안 된다…… 함부로 승부를 포기해선 더욱 안 된다.” / 2권 96p

 

 

 

  “바둑을 일러 왜 혁()이라 하는 줄 아느냐왜 클 혁 자를 쓰는 줄 아는가 말이다.” 소설 속에서 법고 스님은 동삼을 나무라며 이렇게 말한다. 19?19, 361줄의 격자로 이루어진 작은 반상에 불과하나 바둑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세계가 너무 커서 아득하고 또 아득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속세의 온갖 잡사에 연연해서는 결코 그 도리를 얻을 수 없으니 고작 얕은 재주로 그 끝에 도달하려 한다면 아무리 애써도 헛되고 부질없는 욕망일 뿐이다반상 위에서는 그 누구도 돌을 가벼이 여겨 쉽게 교만을 부려서도승부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이것이 바둑을 둘러싼 장대한 대서사이자바둑을 통해 깊이 있는 삶의 통찰을 길어 올리는 이 소설이 더욱 감동적인 이유다.

 

 

 

애써 좋은 수를 두려 하지 마라무리하여 호수를 놓게 되면 필경 그것이 승부를 그르친다.”

이제껏 말 한 마디 없던 스승의 가르침에 동삼은 가슴이 벅차올랐다한번 시작한 스승의 가르침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집착하지 마라집착하면 궁색해진다투지는 겸양에 못 미치고 집착은 수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마음이 자유롭지 못한데 어찌 수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겠느냐!” / 2권 197p

 

 

마음을 놓치면 형세를 잃게 되고사심(邪心)이 있으면 맥을 짚을 수가 없다마음을 붙들어라…… 마음을…… 마음을…….” / 2권 243p

 

 

사람에게 종말은 한 번뿐이지만 시작은 언제든지 할 수 있어.” / 2권 260p

 

 

 




 

 

 

 

  바둑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물론 바둑을 잘 모르는 분들이라도 단번에 빠져들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다승부라는 세계에 깊이 몰입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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