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될 시간 - 고립과 단절, 분노와 애정 사이 '엄마 됨'을 기록하며
임희정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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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공감했고먹먹했다!

엄마라는 이름의 서사를 써 나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벌써 4년 전이라니무심코 책장에 손을 뻗어 임희정 작가의 첫 에세이를 꺼내들었다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 이 강렬한 문구 하나가 아직도 이토록 생생한데첫 발행 일자를 보니 무려 4년 전이다그 사이 그녀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가난해서 미안했고 원망해서 죄송했던부모와 자식이란 이름의 삶의 궤적을 솔직하게 써내려간 첫 에세이의 기억을 뒤로 하고두 번째 에세이에서는 고립과 단절분노와 애정 사이에서 홀로 분투했던 엄마 됨을 기록한 글로 그녀는 또 다시 나의 마음을 두드렸다딸의 시선에서 부모를 바라보다 이제는 엄마의 시선에서 딸을 바라보는 이 시간의 흐름과 행적들이 익숙한 듯 또 눈에 밟혀서 읽는 내내 공감했고먹먹했다.

 

 

 

아이가 태어날 때 나도 엄마로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여자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여자의 몸은 너무나도 정확하고 성실하게 젖먹이 아이를 위한 엄마의 몸이 되고아이의 사소하고도 예민한 움직임조차 기민하게 반응하도록 세팅된다그런 가운데 분노와 애정이라는 양가감정에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다 내팽겨진 듯한 깊은 우울감에 사로잡히고희생과 헌신 혹은 무조건과 당연함이라는 모성애란 이름의 판타지 안에서 오늘도 자책과 후회를 곱씹고야 만다. ‘아이를 낳고 죽고 싶었다던 책의 첫 문장이 내 것처럼 무겁게 느껴진 이유는저마다의 이유로 홀로 고군분투하며 엄마라는 서사를 써내려가고 있을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가 동시에 매만져지는 까닭이다.

 

 

 

엄마가 된 나는 알게 되었다말하지 못하고 기록되지 못한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이 너무 오랫동안 저평가되었다는 것을그렇게 한 존재의 고된 삶의 시기가 통째로 단순화되었다열 달의 임신 기간 동안 겪는 몸의 변화와 출산의 고통미숙하고 혼란스럽고 고달픈 육아의 길고 복잡한 이야기가 아이의 성장과 함께 다 사라졌다.

갓 태어난 아이에 대한 말과 기록연구와 조사는 성장 시기별로 넘치는데 갓 태어난 엄마에 대한 관심과 고찰당사자의 생각과 이야기는 적고 감춰지고 미화되었다.

아이가 태어날 때 나도 엄마로 태어났다배 밖으로 나온 아이가 마주하는 모든 것이 낯설 듯 엄마가 된 내가 마주하는 세상도 다 생소했다. / 14p

 

 

아이를 낳고 죽고 싶었다. ‘낳고와 죽고’ 사이에 눈물 가득한 수많은 밤이 흘렀다나는 아이를 낳고 너무나 신기했고 행복했고 기뻤고 막막했고 슬펐고 아팠고 힘들었고 고통스러웠고 괴로웠고 그리고 죽고 싶기도 했다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 옆에 죽음을 생각하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매일 나를 갈아 넣어 아이를 키우는 건 분명 고통이었다. / 22p

 

 

 




 

 

 

 

  출산하고 보니 아이를 왜 낳는지보다 왜 안 낳으려고 하는지를 더 잘 알겠다는 책 속의 글귀가 퍽 와 닿는다육아의 열 가지 고됨이 아이의 해맑은 미소 한 번으로 싹 날아가 버릴 때도 있지만아이가 주는 열 가지 행복이 단 한 가지 결정적 이유로 불행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무엇보다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엄마로서도 직장인으로서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듯한 죄책감과 고단함은 출산을 더욱 버겁게 만든다.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있었지만 엄마가 되니 먼저 마음이 기운 것도 있었다던 그녀의 말처럼자꾸만 내 실력과 경력을 잊은 채 엄마라는 사실에 주눅이 들고예전엔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이제는 맘만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후로는 엄마라서 주저하게 되는 것들에 유독 마음이 쓰인다그래서일까, ‘엄마이면서 나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회복하려는 그녀의 분투를 응원하게 된다나를 비롯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많은 분들 역시 자신의 선택과 삶을 긍정하되 저마다 가치 있는 답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말하지 못하고 기록되지 못한 시간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

영영 이해받지 못하고 나아가지 못한 채 반복된다.

여성이 겪는 임신과 출산과 육아가

개인의 영역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고통을 위한 이 기록이 누군가의 고통을

덮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 35p

 

 

엄마가 된 나는 요령을 피우기로 했다적당히 넘어가는 잔꾀가 아니라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이치와 삶의 가장 긴요한 골자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고르는 요령 말이다예전엔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이제는 맘만 먹어서는 안 되는 일이 되어버렸으니까그러니 내가 가장 하고 싶고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고 소중한 것들로 선택한다나를 중심에 두고 삶을 선별하며 산다못한 거에 아쉬워하기보다는 내가 고른 거에 책임지고 즐기고 만족하려고 노력한다무엇보다 나를 소진하지 않고 남겨두는 하루를 살려고 한다. / 220p

 

 

 



 

 

 

 

  기억하자좋은 엄마란완벽한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그러나 자책하는 엄마도포기하는 엄마도 아니라는 것을아이가 성장하는 내내 엄마는매순간 엄마라는 첫 경험을 한다익숙해지는 듯하다가도 어느 새 새로운 고민에 휩싸이고 스스로를 자책한다하지만 결국 타협하고 적응하게 되리라는 사실 또한 안다다만 그 속에서 질문하고생각하고열심히 살아왔던 나를 잃지 않기를나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자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이제 막 엄마라는 세계에 들어선 이들에게오늘도 부지런히 엄마라는 서사를 써나고 있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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