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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퓨테이션: 명예 2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평점 :
넷플릭스 드라마 한 시즌을 정주행한 것 같은 강렬한 몰입감!
여성 정치인인 엠마 웹스터가 살인 혐의로 기소되면서 세간에 충격을 준 지 6개월 뒤, 혐의의 유무죄를 밝힐 재판이 본격적으로 열린다. 왕립기소청은 기자인 마이크 스톡스가 엠마의 명예를 실추시킬 만한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위협을 느껴 그를 살인한 것으로 보고, 이에 유죄를 주장한다. 반면, 엠마의 변호인 측은 여성 혐오와 살해 협박에 지속적으로 시달린 여성 정치인이 사생활 침해의 위협을 느끼고 벌인 정당방위였음을 주장한다. 이어 관련 사건의 증인과 객관적인 증거를 설명해줄 법의학자들이 하나씩 소환되기 시작하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때마다 엠마의 머릿속에서는 불안과 안도가 파도처럼 휩쓸고 지나간다. 과연 엠마는 바닥까지 추락한 자신의 명예를 지켜낼 수 있을까?
화려한 법정 공방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의 카타르시스
『레퓨테이션: 명예』 2권은 자신의 명예가 한창 절정에 치달은 순간에 절대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주인공 엠마를 둘러싼 법정 공방을 치밀하고도 생생하게 묘사한다. 서로 다른 증언과 증거들이 쌓여가는 가운데, 소설은 재판의 향방이 어디로 흘러갈지 마지막까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시종 날선 긴장감을 앞세우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권력과 명예, 혐오와 증오, 비밀과 거짓이 난무하는 정치계의 그림자를 날카롭게 파고들어 한 편의 멋진 법정 스릴러로 완성해낸 세라 본의 필력에 내내 감탄하며 읽게 된다.
우리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도 그냥 위층으로 올라갔다고 해서 알렉스에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와서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도 슬펐다. 그가 나를 두고 새된 비명을 질렀다고 말한 것에 화도 났다. 내가 어떤 공포를 느꼈는지 알기나 할까! 분노와 동시에 오싹한 두려움이 내 온몸에 퍼졌고, 그 두려움이 내 움직임을 변덕스럽고 난폭하게, 내 목소리를 크고 날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 뭐라고? 새된 비명을 지르면서 험악하게? 그때 나는 미친 듯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뿐이다. / 63p
배심원들의 마음에 다음과 같은 말이 각인되고 있었다. ‘미디어를 잘 다루는’, ‘가까워졌어요’. 가깝다는 표현은 은밀한 느낌을 풍긴다. 가이는 자신의 증원에 이런 암시적인 말을 슬쩍 섞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 91p
“공인이라면 당연한 목표물이 되는 셈이죠.”
오랜 기간 온라인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스토킹도 모자라 지속적인 신문사의 감시까지 받았던 엠마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고려해야 한다는 변호인의 설득에 증인석에 선 레이철 마틴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공인이면 응당 누군가의 목표물이 되기 마련이며, 대중의 엄격한 시선과 더 면밀한 조사를 받는 대상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공적인 위치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라면 감시와 사생활 노출, 혐오 등이 일상적으로 따라붙는다. 소설은 어째서 이들이 이러한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수용하게 되었는지, 또 대중은 어째서 그들이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지 우리에게 묻는다.
이런 위험이 내 직업의 일부라고 받아들였지만, 그런 내면화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언제부터 여러 예방 조치들을 당연하다고 여기게 된 걸까? 왜 내 직원들도 이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 / 220p
“저는 20년 가까이 정치인으로 살아왔지만, 이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합니다. 소셜 미디어와 24시간 보도되는 뉴스의 영향입니다. 기사의 주기가 짧아졌고, 사람들은 훨씬 더 공격적이고 충동적으로 반응합니다. 솔직히 말해 여성 하원의원들이 느끼는 부담감을 고려한다면, 이 사건이 제대로 된 정당방위란 무엇인지 처음으로 보여준 사례인 것 같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 223p
“여성들의 영역이 물리적 공간에서 그리고 가상의 공간에서 어떻게 침해받고 있는지 살펴볼 때입니다. 또한 왜 여성들이 이러한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수용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볼 때입니다. 저는 당분간 제 딸과 시간을 보낼 생각이지만, 공인의 삶에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주눅 들지 않을 것이며 두려워하지 않을 겁니다.” / 244p
넷플릭스 드라마 한 시즌을 정주행한 것처럼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마지막까지 반전을 놓지 않고 긴장감을 끌고 가는 힘 역시 매력적이다. 킬링 타임용 소설이나 스릴 넘치는 법정 드라마를 찾으시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적극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