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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 12 :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에피고오니 - 정재승 추천, 뇌과학을 중심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12가지 키워드로 신화읽기 ㅣ 그리스·로마 신화 12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정재승 추천 / 파랑새 / 2023년 11월
평점 :

기구한 운명을 넘어서 스스로 일어서는 자들의 이야기!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어리석음 앞에서 우리는 어떤 분별력이 있는 태도로 이겨낼 것인가!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이자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인문학적 산물로 손꼽히는 ‘그리스·로마 신화’. 세대와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로써, 신화는 아무리 거듭 읽고 또 읽어도 부족함이 없다. 그 중 총 12편으로 제작된 파랑새 출판사의 『그리스·로마 신화』 시리즈는 유럽 최고 권위의 어린이 문학상인 피에르 파올로 베르제리오상을 수상한 데다,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가 인간을 이해하는 뇌과학의 12가지 인지적 키워드를 통해 추천하고 제안하는 책이다. 무엇보다 신화 속 인물들의 사실감 넘치는 감정과 대사를 통해 한 편의 드라마처럼, 마치 무대 위를 바라보는 듯한 생생한 감동을 전하는 이 책은 이제껏 읽었던 신화와는 또 다른 차원의 ‘새로운 신화 읽기’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무척 특별하다.
인간을 이해하는 12가지 키워드, 독립
『그리스·로마 신화』 시리즈의 마지막인 열두 번째 책의 주제는 ‘독립’이다. ‘신화는 결국 모험을 통해 성장하고 독립하는 이야기’라던 정재승 교수의 글처럼, 그리스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비극의 주인공 ‘오이디푸스’를 통해 시련과 정해진 운명에 맞서 자기 의지를 실현하는 일의 소중함과 가치를 전하고자 한다.
이야기는 태어나서는 안 되는 오이디푸스의 불행한 운명으로부터 시작된다. “만약 네가 아들을 낳게 되면 너는 바로 네 아들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인 라이오스에게 내려진 끔찍한 저주로 인해 오이디푸스는 태어나자마자 산기슭에 버려진다. 마침 양치기가 기지를 발휘해 아이가 없던 코린토스의 폴리보스 왕에게 오이디푸스를 데려가고, 살아남은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의 궁궐에서 성장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훗날 자신이 폴리보스 왕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것과 함께 “네 아버지를 죽이고 왕좌를 차지할 것이고, 너를 낳아 준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신들이나 인간들이 모두 고개를 돌릴 정도로 못난 자식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아폴론의 신탁을 받게 된다.
오, 언젠가는 죽어야 할 인간의 자손들이여.
보라, 우리네 인생이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것!
지금껏 우리는 죽는 날까지
신의 은총을 받은 사람은 알지 못하나니,
더없는 기쁨의 절정에서 한순간에
인생의 밑바닥까지 굴러떨어질 수 있음을
우리는 지금 보았노라.
저 불행한 오이디푸스를 보라!
그리고 우리의 말인 진실인지 아닌지 말해 보라. / 114p
신탁이 말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신을 길러준 폴리보스와 메로페라고 생각한 오이디푸스는 혼란을 뒤로하고 그 길로 코린토스를 떠난다. 그런데 그가 택한 길은 진짜 아버지인 라이오스가 다스리는 테베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라이오스인 줄은 꿈에도 몰랐던 오이디푸스는 길에서 우연히 라이오스를 만나지만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도리어 싸움이 붙어 라이오스를 죽이게 된다. 이후 오이디푸스는 테베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괴물 스핑크스를 만나 지혜로 물리치고, 테베의 영웅이 되어 왕의 자리에 오른다. 그렇게 아버지인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였던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네 명의 자식을 낳게 되었으니, 신탁의 예언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오이디푸스여! 네가 이미 네 아버지를 죽였으며, 네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것을 어찌 짐작이나 했으랴. 이 모든 것은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정해져 있던 운명이었다. 이것이 바로 펠롭스의 저주가 힘을 발휘하고, 라이오스가 저지른 역겨운 죄에 대한 벌이며, 아폴론의 뜻이었다. / 35p



그러던 어느 날, 테베에 역병이 돌면서 도시가 고통에 잠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선왕이었던 라이오스를 죽인 자를 잡아 사악한 기운을 씻어야 한다는 신탁을 듣는다. 이윽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던 끝에 범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비참하고 참혹한 마음을 가눌 수 없는 나머지 자신의 눈을 찔러버린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여기서 이렇게 말한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참혹한 궁지로 나를 몰아넣은 것은 아폴론 신이시오. 그러나 내 눈만은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고 바로 이 두 손으로 찌른 것이다. 이제 내게는 더 이상 고통 없이 볼 수 있는 것도 없고, 보고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말이오.” 신이 정해놓은 운명 안에서 인간은 나약할 수밖에 없지만, 스스로 눈을 찌름으로써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운명에 맞서려 했던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의지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오, 테베인이여. 내 동포들이여.
그대들은 이제 모든 일이 밝혀진 것을 보았노라.
이 사람은 누구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의 답을 알았던
아니, 알았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노라.
그래서 힘과 영광의 꼭대기에 올랐고
우리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노라.
그러나 이제 폭풍우에 휩쓸려 완전히 난파되고 말았노라.
보라, 어떤 운명이 그를 덮쳤는지!
그런 까닭게
어떤 인간도 행복도 부러워 말지어다.
그의 인생의 마지막 하루를 지켜볼 때까지.
그의 인생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 130p
우리가 오이디푸스의 비극 속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 또 하나 있다면 바로 그의 딸 ‘안티고네’일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테베에서 추방될 때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킨 이가 안티고네다. 오이디푸스가 테베를 떠난 뒤, 그의 두 아들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 사이에 테바이의 왕좌를 둘러싼 다툼이 벌어졌을 때 이를 중재하려 했던 것도 그녀였으며,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체가 장례도 받지 못하고 들판에 버려진 채 그대로 썩고 있을 때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명령을 어겨가며 시체를 수습한 것도 그녀다. “비록 신들의 뜻에 맞설 만큼 어리석은 사람들 눈에는 제가 더 어리석어 보인다 할지라도, 그게 뭐 그리 큰 문제가 되겠어요?” 라던 그녀의 말 속에서, 우리는 운명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믿는 바를 따라 능동적으로 행동했던 한 인물의 적극적인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왕들의 궁궐을 향해 느릿느릿 다가가는 죄악 중에서 가장 나쁜 게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건 바로 권력에 대한 욕망이랍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동생이 형에게 맞서고,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싸우고, 아버지의 목을 조르는 자식도 생기는 것이지요. 또 바로 그런 욕망이 아가씨 두 오빠의 눈을 멀게 한 것입니다.” / 214p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저지른 죄 때문에 신들의 구박을 받는 것이 바로 우리의 운명이지요. 그렇지만 이제 그만 하면 충분해요. 지금 벌어지려고 하는 전쟁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막아야만 해요.” / 223p
“우선 화난 표정부터 푸세요. 그리고 호통을 치거나 자기만 옳다고 우기면 안 돼요.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세요. 두 분 앞에 놓여 있는 건 눈이 마주치면 돌로 만들어 버리는 고르곤의 머리가 아니에요. 폴리네이케스 오빠, 조금만 돌아서서 에테오클레스 오빠를 보세요. 얼굴을 보면서 말하게 되면 말을 고를 때 훨씬 현명해져요. 그리고 상대방도 오빠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된답니다.” / 230p



‘독립’이라는 열쇠를 통해 들여다본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의 이야기는 정서적 독립, 즉 자유의지를 통한 자립적인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성장시키는 것이 부모의 사랑, 형제간의 우애가 주어야 할 덕목임을 일깨워준다. 나를 무너지게 하는 어떤 거친 힘과 기구한 운명을 앞에서 나는 어떠한 태도로 맞설 것인가,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어리석음 앞에서 우리는 어떤 분별력이 있는 태도로 이겨낼 것인가 고민해보게 하는 것도 이 신화가 지닌 특별한 힘일 것이다.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독립된 자아를 형성해야 할 많은 청소년들에게 특히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12개의 키워드를 따라가며 읽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통해 청소년들이 단단한 삶의 태도와 현명함이라는 귀중한 보물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적극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