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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효과의 실험과 결과
사사키 아이 지음, 양하은 옮김 / 모로 / 2023년 10월
평점 :
당신의 청춘엔 어떤 마법이 필요한가요?
잊고 있었던, 속절없이 뜨거웠던 청춘의 한 페이지 같은 소설!
불안하지만 순수했고, 서투르지만 풋풋했고, 무모했지만 솔직했던 푸른 젊은 날의 우리. 『프루스트 효과의 실험과 결과』는 유난히 뜨겁고 찬란하게 시렸던 청춘의 어느 시절을 섬세하게 그려낸 소설집이다. 누군가는 햇살 가득 쏟아지는 도서관에서 속살거리며 주고받았던 쪽지와 은근한 마음을 떠올릴 수도, 소중한 바람을 담아 만든 부적 따위를 남몰래 품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동경했던 동아리 선배, 같은 대학에 가자고 다짐했던 첫사랑, 좋아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좋아해버린 마음들까지. 사사키 아이의 소설을 읽다보면 잊고 있었던, 속절없이 뜨거웠던 청춘의 한 페이지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아련하고도 아름다웠던 나의 그 시절
“프루스트 효과라는 게 있어.
맛을 보거나 냄새를 맡으면 관련된
추억이 떠오르는 현상이야.
프루스트라는 작가의 유명한 소설 때문에
붙은 이름인데, 주인공이 마들렌을 홍차에 적셔 먹을 때
옛날 기억이 되살아난다는 이야기야.”
/ 「프루스트 효과의 실험과 결과」 중에서 9p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에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를 맛보여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훗날 사람들은 냄새와 맛이 기억을 자극해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감정과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여 이를 ‘프루스트 효과’라 불렀다. 표제작 「프루스트 효과의 실험과 결과」 속 주인공인 ‘나’는 오가와의 제안에 따라 입시 공부와 프루스트 효과의 관련성을 실험해보기로 한다. 도쿄의 사립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데다 실험 동지가 되기로 한 두 사람은 이때부터 선생님 몰래 도서관에서 몰래 초콜릿을 먹으며, 앞으로 둘이 함께 할 여러 계획들을 세워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오가와는 청춘 영화의 한 대사처럼 이렇게 말한다. “첫 키스는 상상도 못할 곳에서 하자.”
“이 안에 도쿄 공기를 넣어왔어.”
(…) “도쿄 어디의 공기야?”
그렇게 묻지 오가와는 주저하며 좀처럼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이윽고
“당연히 네가 지망하는 학교 정문 앞이지.” / 「프루스트 효과의 실험과 결과」 중에서 21p
「프루스트 효과의 실험과 결과」가 한때 내 온 마음을 흔든, 내 마음에 온갖 찬란한 빛의 자국을 남긴 아름다운 첫사랑 같은 이야기라면 「봄의 미완」은 미완으로 남아 늘 마음 한 구석에 공터처럼 남아 있는 청춘의 뒷 페이지를 떠올리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아카사카로 하여금 성장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 누구로도,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써나가길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오가와에게는 나인데, 그것만큼은 자신과 확신이 있었는데, 확실히 알고 있었는데. 오가와의 프루스트 효과 이론을 같이 실험한 사람은 나뿐인데.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시간과 규칙과 대화와 선물과 웃음과 걷는 속도와 펜을 놀리는 소리와 입 안의 죽순마을과 버섯산이 녹아 섞이는 맛. 그런 것들이 새로운 것에 이토록 쉽게 추월당할 리가 없는데. / 「프루스트 효과의 실험과 결과」 중에서 35p
“아오야마, 같이 뛰자. 하지만 봄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빨리 봄을 따라잡기 위해서 뛰고 싶어.”
봄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한 대사였다. 어디를 향해 달리면 도망칠 수 있는지, 혹은 따라잡을 수 있는지, 왠지 아카사카는 알고 있는 것 같다고 잠시 생각하다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어디로 달리든 봄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리도, 따라 잡을 수 있을 리도 없다. 너무 엉뚱하고 논리적이지도 않은, 공상 그 자체였다. 그런데도,
“달릴까?”
하고 대답하고 있었다. / 「봄은 미완」 중에서 75p
당신의 청춘엔 어떤 마법이 필요한가요?
한때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나는 맨홀 뚜껑의 무궁화를 밟으면 행운이 온다던 근거 없는 주문을 쫓아 쾌활한 성격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며 길거리를 돌아다닌 적이 있다. 그때의 나처럼, 수록작 「악보를 못 읽는다」 속 주인공인 ‘나’ 역시 비록 얼굴은 잘 생기지 않았지만 우연히 음악하는 모습에 반하게 된 ‘뽀글머리’로부터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주문”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 뭔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자신의 못난 부분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상처 입히고 상처 받기도 쉬운 10대 시절.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어 마냥 흔들리기 쉬운 이 시절엔 누군가의 한 마디가, 누군가가 부른 노래 한 마디가 마법의 주문이 되어줄 때가 있다. 그러니 무엇이든 네 청춘에 마법을 걸면서 살아보라고, 그것이 위로가 되어줄 때가 있을 거라고, 훗날 내 아이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나는 나에게 마법을 걸면서 살아
노래하고 싶어 언젠가 나만 읽을 수 있는 악보로 노래할 거야
언젠가 그 스크램블 교차점에서 밤 아홉 시 마법은 꼭 걸릴 테니까
그 스크램블 교차점에서 언젠가 멈춰 서
아무도 멈추지 않지만 혼자 멈춰 서
그러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그 사람이 말했으니까 / 「악보를 못 읽는다」 중에서 162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