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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드리 씨의 이상한 여행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8월
평점 :

어떻게 이 소설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1950년대 런던과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주 로맨틱한 이야기!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남자,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면서 오래전부터 네가 찾고 있는 남자, 그 남자가 방금 전에 바로 네 뒤를 지나갔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브라이튼 해변의 한 공원을 찾은 앨리스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점을 보게 된다. 점괘나 운명 따위를 믿지 않는 앨리스는 친구 일행들 중에 자신의 백마탄 왕자라도 있는 거냐며 시니컬하게 묻지만 점쟁이는 “그 남자에게 이르려면 여섯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엉뚱한 대답만 내놓는다. 기차 시간 때문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던 앨리스는 그 길로 런던으로 돌아오지만 그때부터 매일 밤 찾아오는 기묘한 악몽이 그녀를 다시금 점쟁이에게로 이끈다.
그렇게 옆집에 사는 남자 달드리의 도움을 받아 점쟁이를 찾은 그녀는 그 자리에서 또 한 번 뜻밖의 예언을 듣는다. 런던의 홀본 출신인 그녀가 실은 오리엔트 태생이며, 자신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이스탄불에 가서 다음 단계로 인도해줄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점쟁이의 말에 앨리스는 혼란에 빠지고, 바로 그때 옆집 남자 달드리가 그녀에게 제안한다. 점쟁이의 점괘를 이정표 삼아 이스탄불로 함께 떠나보자고.


“특별한 재능이 있구나.
하지만 너한테는 훨씬 중요한 것이 있어.
네가 전혀 모르는 역사가 네 안에 있거든.” / 30p
나의 역사와 운명을 찾아 나선 아주 특별한 여정,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너에게는 두 개의 인생이 있어. 하나는 네가 아는 인생이지만, 다른 하나는 오래전부터 너를 기다리고 있지. 그것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스탄불 튀르키예에. 그리고 그 길 어딘가에 네가 찾고 있는 남자가 있어.’ 자, 다음과 같은 말을 점쟁이로부터 듣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한 어떠한 역사 그리고 그 길에 있다는 운명의 남자라니… 머릿속으로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 믿으면서도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난 이상 과연 점쟁이의 말을 쉽게 떨칠 수 있을까?
이처럼 소설 『달드리 씨의 이상한 여행』은 점쟁이의 말을 듣고 자신의 운명과 역사를 찾기 위해 이스탄불로 여행을 떠나는 조향사 앨리스와, 그녀의 동행자로 나선 괴짜 화가 달드리의 기묘한 여정을 담은 이야기다. 점쟁이의 예언대로 앨리스는 낯선 튀르키예에서 점차 익숙한 향수를 느끼게 되고, 이스탄불 최고의 가이드 칸과 신비로운 향수를 제조하는 장인, 콰디쾨이의 늙은 교사 등을 만나면서 점차 자신의 인생이 뒤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껏 알지 못했던 출생의 비밀과 가족사에 얽힌 충격적인 진실과 조우함으로써 마침내 진정한 ‘나’를 찾게 된다. 이제껏 사랑이라는 감정을 온전히 느껴보지도, 표현해본 적도 없는 달드리 역시 앨리스와의 동행을 통해서 솔직한 내면과 감정의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아, 그런데 이 남자 마지막까지 헛갈리게 하는 별난 매력이 있네).
“존재하지 않는다고 마음에서도 떠난 건 아니니까요. 영혼에 약간의 판타지를 불어넣으면 고독은 사라지게 되죠.” / 46p
“친구야,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어. 브라이튼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낸 뒤로 너는 더 이상 예전의 네가 아니야. 네 안에서 너를 괴롭히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작은 불씨들이지만 밤에는 불을 일으키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나처럼 벽장에서 뛰쳐나와. 나는 두려움을 억누르면서 런던 거리를 뛰어다녔어. 벽장 안에 웅크린 채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뛰쳐나가는 게 더 견딜 만하더라고.” / 102p
날씨가 추우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때도 있는데 이스탄불 시민들 속에 섞여 있다 보면 날이 갈수록 더욱 그들의 일원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왜 이렇게 빠져드는지 모르겠는데 진짜 그래요. 나는 이 도시의 리듬에 맞춰 사는 걸 좋아하게 됐어요. / 313p



점괘, 예언, 운명의 남자, 이국으로의 여행… 어쩌면 이토록 낭만적인 키워드를 한 데로 다 엮을 생각을 했을까. 소설은 이스탄불의 거리를 따라 걸으며 이국의 풍경과 향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듯한 황홀한 경험을 선사한다. 1950년대 런던과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아날로그한 감성과 향수를 건드리는 소설적 장치들 역시 매력적이다. 특히 아르메니아인 대량 학살과 1, 2차 세계대전이 남긴 상처를 통해 불온한 역사 속에서 숭고한 희생정신과 사랑을 발견해내는 작가의 깊이 있고도 따뜻한 시선은, 그가 왜 빅토르 위고와 함께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1위로 손꼽히는지를 짐작케 한다.
어떻게 이 소설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 로맨틱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에 푹 빠지고 싶은 이들에게 달드리 씨와의 이상한 여행으로의 동행을 추천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