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위드 X 창비교육 성장소설 9
권여름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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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회적 이슈들을 매우 현실적이고도 기묘한 형태의 이야기로 엮어낸 학교 괴담집!

 

 

 

 

  학생들이 모두 돌아가고 밤이 되면 책 읽는 동상이 깨어나 책을 읽는다던데이순신 동상이 차고 있던 칼이 밤사이 반대쪽으로 바뀌어 있었대과학실에 있던 뼈들이 밤마다 하도 돌아다녀서 교문 밖에서도 딱깔딱깔 소리가 들린대학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상당히 비슷한 내용의실제로는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그래서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황당무계하기도 한 괴담들이 떠돌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한 흥미를 넘어서서 학교 괴담이 구체적인 공포로 다가왔던 시기는 학업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학교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빚어지는 온갖 갈등을 은유하고 암시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던 때인 것 같다가장 연약하고 민감한 감정들이 예리하게 조형된 공간욕망과 불안 그리고 절박함여기에 죄책감과 슬픔까지 아우르는 상징적 공간으로써 학교는 우리가 성장하는 모든 순간에 여러 형태의 고통과 공포를 아로새겼다아니어쩌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가장 조악하고도 편리한 도구로 이용된 것이 공포는 아니었을까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대체 누구를 위해무엇을 위해.

 

 

 

소화되지 못한이해받지 못한 마음들이 낳은 공포라는 그림자

 

 

   『스터디 위드 X』 속 여섯 편의 소설들은 우리 시대의 학교가 품고 있는 공포들을 비춘 학교 괴담집이다성적이라는 서열로 줄 세워진 아이들, ‘카더라라는 소문이 가장 퍼지기 좋은 교실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괴롭힘과 따돌림 그리고 폭력에 이르기까지학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회적 이슈들을 매우 현실적이고도 기묘한 형태의 이야기로 엮어낸다그 중에서도 권여름의 소설 영고 1830는 학교를 배경으로 과열된 입시 경쟁과 성적 지상주의가 낳은 사회적 공포를 날카롭게 그려낸 작품이다. ‘믿고 맡기십시오아니면 보내지 마십시오.’ 영고(영홍고)는 지역 내 여러 학교에서 보낸 수를 합친 것보다 명문대를 보낸 학생 수가 많기로 유명한 명문고다그만큼 학부모와 아이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인 곳이지만오롯이 성적으로만 반 배치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데다 성적을 내기가 쉽지 않아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게다가 오래전부터 영고에는 불쾌하고 무서운 소문이 따라다녔다. 1학년 8반 30즉 전교 꼴찌를 가리키는 ‘1830’에게 해마다 일어나는 기이한 사고와 죽음 때문이었다영고에서 오랫동안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아버지 때문에 필사적으로 공부해 겨우 영고에 입학한 희준은 반 배치 고사 결과 날명단에서 자신의 번호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다름 아닌 자신이 그 해의 1830이었던 것이다불행해지지 않을 거다살아남을 거다희준은 과거의 1830과 자신은 다를 거라고 의지를 다져보지만 마치 저주의 낙인이라도 찍힌 듯 연거푸 섬뜩한 공포와 마주한다과연 희준은 예고된 추락을 피할 수 있을까그렇게 입시 경쟁이라는 사회 구조가 낳은 지독한 불행의 사슬은 어느 한 개인의 희생으로 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듯소설은 피가 난무하는 공포 영화보다 더 냉혹한 현실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누구도 희준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말을 걸어 주는 사람도 없었다희준에게 닥칠 불행이 자기에게 옮기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 같았다.

기말고사가 다가오자 몸 상태는 심각해졌다조금만 숨을 크게 쉬어도 갈비뼈가 부스러질 것 같았다신경과 근육그것이 무엇이든 툭 하고 끊어질 것만 같았다소리 내어 끙끙대도 누구 하나 바라보거나 묻지 않았다어떻게 이렇게까지 없는 사람 취급을 할 수 있나 싶었다. / 영고 1830」 중에서 107p

 

 

물론 수아가 공부를 빡세게 한다는 건 사실이다전국에서 손꼽히는 명문고이자 서울대를 제일 많이 보내는 여고로 유명한 이곳 휘일여고의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는 아이니까하지만 수아가 쓰러진 건요즘 들어 갈수록 안색이 창백해지고 몸이 말라 가는 건 공부에 지쳐서가 아니다.

수아에게는 귀신이 붙어 있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귀신이. / 스터디 위드 미」 중에서 11p

 

 

 



 

 

 

 

  김민령 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온전한 성장과 자립이 두려움과 불안을 딛고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청소년 호러가 갖는 의미는 분명해진다.’ 학교 괴담은 우리에게 잠재된 공포와 불안을 자극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여전히 안전하고 밝은 지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안도하게 만든다고또한 공포가 우리를 엄습하지 않도록 현실을 잘 관리해야겠다고 마음먹게 한다고 말이다따라서 고통스러운 현실을 재현하되 그 안에서 변화의 움직임과 기꺼이 손을 내밀어 타인의 온도를 감지하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조진주의 소설 그런 애에서는 학교 뒤편에 일명 지니의 구멍이라 불리는 구덩이가 나온다한때 이곳에서 억울하게 죽은 여자의 이야기가 떠돌고 있지만아이들은 그 구멍 안에 무언가를 던지고 소원을 빌곤 했다예나는 연기 지망생인 솔희가 SNS에 올린 신체 노출 사진으로 인해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학교도 나오지 않은 채 자신과 찍은 영화가 담긴 USB마저 구덩이에 던진 것을 알고 솔희를 찾아간다예나는 죽은 여자가 더 이상 누군가의 욕망을 받아 내는 쓰레기통으로 지내지 않도록 구덩이를 태워버린다그리고 솔희에게 손을 내민다더 이상 괴담 따위에 의지하지 않고진정으로 자신의 꿈을 응원해줄 친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예나는 구멍에 갇힌 여자를 꺼내 주고 싶었다더는 누군가의 욕망을 받아 내는 쓰레기통으로 지내지 않도록연기가 되어 바람결에 자유로이 날아갈 수 있도록. / 그런 애」 중에서 150p

 

 

나는 그 붉은색 오래된 벽돌집 앞에서 종종 그 애를 기다리곤 했다그러니까 나는 정말로아이들에게 입증해 줄 수도 있었다그 아이의 집은 하수구가 아니라고이제 이런 바보 같은 짓은 그만하자고 말이다동시에 두려웠다그걸 네가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볼까 봐우리 사이를 들키고 같은 취급을 받게 될까 봐.

쟤도 같은 하수구에 사나 보지. / 하수구 아이」 중에서 166p

 

 

 



 

 

 

 

  이 외에도 이유리의 스터디 위드 미윤치규의 카톡 감옥은모든의 벗어나고 싶어서나푸름의 하수구 아이」 모두 성장통으로 상징되는 청소년들의 고통과 공포를 리얼하게 묘사한다소화되지 못한이해받지 못한 마음들이 낳은 공포라는 그림자를 기묘하되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덕분에 학교 괴담은 불안한 십 대들의 현실과 감정을 담은 초상으로가볍게 소비될 장르가 아니라 다양하게 쓰이고 읽힐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이따금 내 안의 두려움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울 때청소년들이 이러한 작품에 마음을 기울여 보길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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