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직하고도 환상적이다!
미국의 인종차별역사에 판타지라는 과감한 상상력을 덧입힌 매력적인 소설!
하얀 로브에 뾰족한 두건을 쓴 무리들. 일명 쿠 클럭스 클랜이라 불리는 KKK단은 미국 테네시 주의 조그만 도시 풀라스키에서 퇴역군인 여섯 명이 모여 조직해 1866년 6월 정식으로 발족한 백인우월주의 단체였다. 전직 사령관, 병사, 남부연합 지도자, 목사 등으로 구성된 이들은 유색인종을 상대로 린치, 구타, 방화 등의 테러를 저질렀다. 1910년대 말부터 급성장해 1924년 초 단원 수는 450만 명으로 폭증했고, 그 배경에는 KKK단을 불의에 맞서는 정의와 구세주로 묘사한 데이비드 그리피스 감독의 영화 「국가의 탄생」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증오로 점철된 미국 인종차별의 역사가 판타지로 재탄생되다
소설 『링 샤우트』는 바로 이 KKK단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인종차별역사를 다룬 대체역사판타지다. 작가인 P. 젤리 클라크는 KKK단의 배후에 어떤 초자연적이고 사악한 존재가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판타지적인 상상력을 덧입혀 역사를 재구성한다. 여기서 말하는 초자연적이고 사악한 존재란 KKK단이 급증했던 1920년대 초, 흑마술이 깃든 책을 바탕으로 비밀 의식에 의해 소환된 ‘쿠 클러스’라는 괴물이다. 쿠 클러스를 이끄는 도살자 클라이드의 계획 하에 미국 전역의 백인들은 영화 「국가의 탄생」에 부려진 주술에 넘어간다. 백인들은 남부의 진정한 영웅이고 유색인은 괴물이라는 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은 쿠 클러스와 함께 도시 곳곳에서 유색인들에 대한 차별과 학살을 일삼는다.
“쿠 클럭스에게 검둥이 냄새가 어떻게 느껴질까? 검둥이에게서 불에 탄 개 냄새가 난다고 여길까? 그래서 우리를 저렇게 잡으려는 거야? 저자들 고향에 검둥이가 있긴 한가?” / 18p
해방된 이들, 로버트 스몰스와 그를 따르는 무리는 최초의 클랜을 끝장냈다. 클랜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퍼뜨린 악령은 살아남아 유색인이 이제 투표를 한다는 이유로 채찍질하고 죽이고, 정부에서 내쫓고, 온갖 학살을 저질러 지금껏 우리 숨통을 죄는 짐 크로법을 시행했다. 전쟁의 승자가 누구이고 패자가 누구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이걸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 1915년 「국가의 탄생」이 등장하자, 신문에서는 그 영화가 몹시 실감 나며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작품이라고 떠들어 댔다. 그 영화는 몇 주, 몇 달씩 매진됐다. 대법원, 국회, 백악관에서도 상영했다. 백인들은 검은 구두약을 바른 백인 남자들이 백인 여자들을 쫓는 영상을 게걸스레 즐겼다. 백인 여자들은 극장에서 기절했다. / 39p


한편, 다른 한 쪽에서는 쿠 클러스와 클랜들에 저항하기 위해 ‘링 샤우트’가 한창 진행 중이다. 샤우트 의식은 노예제 시절에 생긴 흑인 문화의 오랜 관습으로, 노예 시절에서 살아남아 자유를 구하기 위한 기도이자 악행을 끝내 달라고 하늘에 비는 전통 의식이다. 그 사이 샤우터들의 무리 속에서 킬러로 성장한 마리즈는 쿠 클러스와 클랜에 맞서기 위해 남장을 하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돌아온 코디와 뛰어난 저격수 세이디와 함께 괴물 사냥에 나선다. 하지만 마리즈와 일행의 활약에도 쿠 클러스는 더 강한 힘을 발휘하며 세를 증가하는 가운데, 샤우터들의 리더인 진 할머니는 이제껏 마주했던 적과는 차원이 다른, 어떤 거대한 폭풍을 맞이하리라는 예감을 맞는다. 과연 이들은 쿠 클러스를 물리치고 이 땅에 진정한 자유를 구할 수 있을까?
클랜이 쿠 클럭스로 변하는 과정을 과학은 그렇게 설명한다. 몰리는 감염이나 기생충과 같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증오를 먹이로 삼는다. 몰리는 강한 증오심을 가지면 신체의 화학물질이 변한다고 한다. 감염이 그 증오와 만나면 그 사람을 쿠 클럭스로 변화시킬 만큼 강해질 때까지 자라기 시작한다. 내 생각엔 클랜이 약을 받아들이면, 악이 그들을 먹어 치우는 것이다. 속이 텅 빌 때까지. 그리고 자기가 인간임을 기억 못 하는 허연 악령이 남는다. / 65p
“클랜의 증가, 괴물의 대응력, 조직적인 공격에 저 영화 개봉까지. 여기에 지적인 배후가 있다면? 난 있다고 믿거든. 그러면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야. 대비해야지.” / 69p
『링 샤우트』는 KKK단으로 상징되는 ‘인종차별의 역사’를 증오를 먹고 자라난 ‘괴물’ 쿠 클러스로 형상화한 과감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쿠 클럭스의 습격으로 가족을 잃고 킬러로 자란 마리즈의 성장 서사는 물론, 일행들이 거대한 쿠 클러스의 공격으로부터 맞서는 장면은 암울한 역사 속에서 상처를 극복하고 자유를 쟁취하려 했던 유색인종들의 저항 의식을 대변한다. 특히 아프리카 고대 민담과 전설, 신화를 판타지 요소로 잘 융화시켜 민족의 역사와 자긍심으로 그들의 역사를 새롭게 새워나가는 과정은 장르문학을 훌쩍 뛰어넘는 느낌이다. 빠른 전개와 거세게 질주하는 이야기는 당시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한국 독자들에겐 일부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독서 전후로 이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숙지한다면 소설 곳곳에 배치된 상징과 역사가 더 묵직하게 다가올 듯하다.
“너희 모두는 증오할 이유가 충분하다. 너와 너희 족속에게 가해진 온갖 악행은? 채찍질당하고 얻어맞고, 사냥당하고 개에게 쫓기고, 저들 손에 그토록 지독하게 고통당한 민족. 너희는 저들을 경멸한 이유가 충분하다. 수백 년간 타락한 저들을 혐오할 이유가. 그 증오는 너무나 순수하고, 너무나 확실하고 올바르며, 너무나도 강할 것이다!” / 199p
하지만…… 도살자 클라이드의 말이 머릿속에 박혀 떨쳐 낼 수가 없다. 그들이 내게 준다는 것은 권력이다. 지킬 힘. 복수할 힘. 내 동족의 생사를 좌우할 힘. 유색인들이 이런 제안을 받아 본 적 있을까?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언제 있었을까? 우리는 그동안 내내, 인간의 꼴을 한 괴물의 손에 고통당하고 죽어 나가지 않았는가? 우리가 다른 괴물과 계약을 맺는다면 뭐가 다를까? 우리를 그렇게 경멸하고 괴롭힌 이 세상을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의무가 있을까? 세상이 우리를 구하려고 무엇 하나 해준 것 없는데, 어째서 손을 들어 그 세상을 구해야 할까? / 206p


괴물은 증오와 상처를 먹고 자란다. 어디선가 증오와 상처가 자라고 있는 한 괴물은 사라지지 않는다. 역사는 그것을 끝없이 증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저 괴물에게 끊임없이 먹잇감을 제공하는 것인가.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 소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