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샤우트
P. 젤리 클라크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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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하고도 환상적이다!

미국의 인종차별역사에 판타지라는 과감한 상상력을 덧입힌 매력적인 소설!

 

 

 

  하얀 로브에 뾰족한 두건을 쓴 무리들일명 쿠 클럭스 클랜이라 불리는 KKK단은 미국 테네시 주의 조그만 도시 풀라스키에서 퇴역군인 여섯 명이 모여 조직해 1866년 6월 정식으로 발족한 백인우월주의 단체였다전직 사령관병사남부연합 지도자목사 등으로 구성된 이들은 유색인종을 상대로 린치구타방화 등의 테러를 저질렀다. 1910년대 말부터 급성장해 1924년 초 단원 수는 450만 명으로 폭증했고그 배경에는 KKK단을 불의에 맞서는 정의와 구세주로 묘사한 데이비드 그리피스 감독의 영화 국가의 탄생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증오로 점철된 미국 인종차별의 역사가 판타지로 재탄생되다

 

 

  소설 링 샤우트는 바로 이 KKK단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인종차별역사를 다룬 대체역사판타지다작가인 P. 젤리 클라크는 KKK단의 배후에 어떤 초자연적이고 사악한 존재가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판타지적인 상상력을 덧입혀 역사를 재구성한다여기서 말하는 초자연적이고 사악한 존재란 KKK단이 급증했던 1920년대 초흑마술이 깃든 책을 바탕으로 비밀 의식에 의해 소환된 쿠 클러스라는 괴물이다쿠 클러스를 이끄는 도살자 클라이드의 계획 하에 미국 전역의 백인들은 영화 국가의 탄생에 부려진 주술에 넘어간다백인들은 남부의 진정한 영웅이고 유색인은 괴물이라는 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은 쿠 클러스와 함께 도시 곳곳에서 유색인들에 대한 차별과 학살을 일삼는다.

 

 

 

쿠 클럭스에게 검둥이 냄새가 어떻게 느껴질까검둥이에게서 불에 탄 개 냄새가 난다고 여길까그래서 우리를 저렇게 잡으려는 거야저자들 고향에 검둥이가 있긴 한가?” / 18p

 

 

해방된 이들로버트 스몰스와 그를 따르는 무리는 최초의 클랜을 끝장냈다클랜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퍼뜨린 악령은 살아남아 유색인이 이제 투표를 한다는 이유로 채찍질하고 죽이고정부에서 내쫓고온갖 학살을 저질러 지금껏 우리 숨통을 죄는 짐 크로법을 시행했다전쟁의 승자가 누구이고 패자가 누구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이걸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 1915년 국가의 탄생이 등장하자신문에서는 그 영화가 몹시 실감 나며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작품이라고 떠들어 댔다그 영화는 몇 주몇 달씩 매진됐다대법원국회백악관에서도 상영했다백인들은 검은 구두약을 바른 백인 남자들이 백인 여자들을 쫓는 영상을 게걸스레 즐겼다백인 여자들은 극장에서 기절했다. / 39p

 

 

 



 

 

 

 

  한편다른 한 쪽에서는 쿠 클러스와 클랜들에 저항하기 위해 링 샤우트가 한창 진행 중이다샤우트 의식은 노예제 시절에 생긴 흑인 문화의 오랜 관습으로노예 시절에서 살아남아 자유를 구하기 위한 기도이자 악행을 끝내 달라고 하늘에 비는 전통 의식이다그 사이 샤우터들의 무리 속에서 킬러로 성장한 마리즈는 쿠 클러스와 클랜에 맞서기 위해 남장을 하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돌아온 코디와 뛰어난 저격수 세이디와 함께 괴물 사냥에 나선다하지만 마리즈와 일행의 활약에도 쿠 클러스는 더 강한 힘을 발휘하며 세를 증가하는 가운데샤우터들의 리더인 진 할머니는 이제껏 마주했던 적과는 차원이 다른어떤 거대한 폭풍을 맞이하리라는 예감을 맞는다과연 이들은 쿠 클러스를 물리치고 이 땅에 진정한 자유를 구할 수 있을까?

 

 

 

클랜이 쿠 클럭스로 변하는 과정을 과학은 그렇게 설명한다몰리는 감염이나 기생충과 같다고 한다그리고 그것은 증오를 먹이로 삼는다몰리는 강한 증오심을 가지면 신체의 화학물질이 변한다고 한다감염이 그 증오와 만나면 그 사람을 쿠 클럭스로 변화시킬 만큼 강해질 때까지 자라기 시작한다내 생각엔 클랜이 약을 받아들이면악이 그들을 먹어 치우는 것이다속이 텅 빌 때까지그리고 자기가 인간임을 기억 못 하는 허연 악령이 남는다. / 65p

 

 

클랜의 증가괴물의 대응력조직적인 공격에 저 영화 개봉까지여기에 지적인 배후가 있다면난 있다고 믿거든그러면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야대비해야지.” / 69p

 

 

 

  『링 샤우트는 KKK단으로 상징되는 인종차별의 역사를 증오를 먹고 자라난 괴물’ 쿠 클러스로 형상화한 과감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쿠 클럭스의 습격으로 가족을 잃고 킬러로 자란 마리즈의 성장 서사는 물론일행들이 거대한 쿠 클러스의 공격으로부터 맞서는 장면은 암울한 역사 속에서 상처를 극복하고 자유를 쟁취하려 했던 유색인종들의 저항 의식을 대변한다특히 아프리카 고대 민담과 전설신화를 판타지 요소로 잘 융화시켜 민족의 역사와 자긍심으로 그들의 역사를 새롭게 새워나가는 과정은 장르문학을 훌쩍 뛰어넘는 느낌이다빠른 전개와 거세게 질주하는 이야기는 당시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한국 독자들에겐 일부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독서 전후로 이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나마 숙지한다면 소설 곳곳에 배치된 상징과 역사가 더 묵직하게 다가올 듯하다.

 

 

 

너희 모두는 증오할 이유가 충분하다너와 너희 족속에게 가해진 온갖 악행은채찍질당하고 얻어맞고사냥당하고 개에게 쫓기고저들 손에 그토록 지독하게 고통당한 민족너희는 저들을 경멸한 이유가 충분하다수백 년간 타락한 저들을 혐오할 이유가그 증오는 너무나 순수하고너무나 확실하고 올바르며너무나도 강할 것이다!” / 199p

 

 

하지만…… 도살자 클라이드의 말이 머릿속에 박혀 떨쳐 낼 수가 없다그들이 내게 준다는 것은 권력이다지킬 힘복수할 힘내 동족의 생사를 좌우할 힘유색인들이 이런 제안을 받아 본 적 있을까우리에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언제 있었을까우리는 그동안 내내인간의 꼴을 한 괴물의 손에 고통당하고 죽어 나가지 않았는가우리가 다른 괴물과 계약을 맺는다면 뭐가 다를까우리를 그렇게 경멸하고 괴롭힌 이 세상을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의무가 있을까세상이 우리를 구하려고 무엇 하나 해준 것 없는데어째서 손을 들어 그 세상을 구해야 할까? / 206p

 

 

 



 

 

 

 

  괴물은 증오와 상처를 먹고 자란다어디선가 증오와 상처가 자라고 있는 한 괴물은 사라지지 않는다역사는 그것을 끝없이 증명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저 괴물에게 끊임없이 먹잇감을 제공하는 것인가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 소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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