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유일의 미스터리 전문 계간지, 《계간 미스터리》!
다양한 단편소설과 연작소설, 르포르타주, 미스터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기획 시리즈까지!
‘여름’ 하면 미스터리, ‘미스터리’ 하면 여름이 아니던가. 무더운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즈음이면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오싹한 미스터리 장르 문학을 두어 권 쟁여놓았다 휴가지에 챙겨들고 갈 계획을 미리미리 세워두어야 한다. 마침 봄호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나는 《계간 미스터리 2023 여름호》의 주제가 ‘휴가’라니 참 절묘하고도 반갑다.
마치 표지의 그림이 복선이기라도 한 듯, 김영민의 <휴가 좀 대신 가줘>는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코믹 현실 미스터리다. 지옥 같은 회사를 탈출하기 위해 아끼던 후배를 후임자로 두고 퇴사한 이린아는 1년 뒤, 후배로부터 회사 휴가를 자기 대신 가달라는 협박에 가까운 부탁을 받는다. 철천지원수 장덕범 부장을 다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운데 그 휴가지라는 게 바다낚시를 위해 어선을 타야하는 거였다니. 거기다 퇴사를 하고서도 옛 상사에게 라면을 끓여서 대령해야 하는 신세에 어쩐지 억울해지려던 찰나, 어디선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부장이 바다에 빠졌다! 그것도 누군가의 살의에 의해…. 사내 갑질과 만행이 몰고 온 희비극, <휴가 좀 대신 가줘>는 추리라는 장치와 위트를 적절히 버무린 산뜻한 작품으로 미스터리라는 장르도 이처럼 발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박소해의 <불꽃놀이>는 추리소설의 전형을 착실하게 따른 작품이다. 새 신부이자 재벌가의 막내딸이 신혼여행지인 호텔에서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이벤트가 있던 밤에 사망한다. 갓 결혼한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담담했던 새 신부와 웃음기라고는 전혀 없던 신랑의 싸늘한 분위기, 마치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불길한 징조, 신부의 죽음과 함께 드러나는 재벌가의 어두운 가족사가 사건의 동기와 디테일을 꽉 채운다. 개인적으로 서귀포 경찰서 수사 1팀의 좌승주 형사의 덤덤하고 우직한 수사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 좌승주 형사의 활약상을 또 다른 소설을 통해서 계속 만나고 싶다.
윤후는 새벽에 꾼 악몽이 현실이 되었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꿈속에서 윤후는 공중에 매달려 있는 알몸의 여자를 올려다봤다. 여자는 벽에 박힌 거대한 못에 목이 꿰뚫린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밑에서 입을 벌리고 여자의 피를 받아 마셨다. 피를 삼키며 입맛을 다시다가 잠에서 깼다. / <불꽃놀이> (박소해) 중에서 52p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불꽃놀이를 한다. 누군가는 사랑을 쏘아 올리고 누군가는 욕망을 쏘아 올린다. 이현주와 정찬욱이 쏘아 올린 복수의 불꽃은 이제 다 타버렸다. 인생도 어쩌면 저런 것이 아닐까. 불꽃처럼 타올라 덧없이 사라지는 것. 그러니 불타오를 땐 기왕이면 제대로 불타오르는 것이 좋다. 남김없이 사라지는 편이 좋다. / <불꽃놀이> (박소해) 중에서 90p


‘죽일 생각은 없었다’란 독백으로 시작하는 정혁용의 소설 <KIND OF BLUE>는 가해자와 수사관의 팽팽한 심리 싸움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언젠가 다른 곳에서 또 한 번 활약할 우경정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한편 류성희의 <머나먼 기억>은 ‘현재에서 가까운 시간부터 기억을 지워가는’ 치매에 걸린 엄마가 느닷없이 전남편과 함께 살던 곳에 다녀오겠다며 사라지자, 엄마를 찾기 위해 나선 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쩌면 나는 엄마를 반만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엄마와 내 엄마가 되기 이전의 엄마. 하긴 한 인간과 평생을 같이 살지 않는 한 그 사람에 대해 다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던 문장처럼, 미스터리란 기괴한 범죄와 기발한 트릭, 추리 과정뿐만 아니라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서나마 인간적 영역을 복원하고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아주는’ 애도의 행위 속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라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우 경정의 태도에 마일수는 입이 떡 벌어졌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희한하게 자기 불리한 것만 못 알아먹는 척한다고 할까. 아니, 묘하게 자기 편한 쪽으로 상대를 유도한다고 할까. 당하는 사람은 알면서도 홧김에 그리 끌려간다고 할까, 알면서도 끌려가는 자신에게 화가 난다고 할까. 그렇다고 확실하게 상대의 잘못을 꼬집을 수는 없으니 화가 나면서도 화내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 화를 내는 당사자만 바보가 되는 꼴이라고 할까. / <KIND OF BLUE> (정혁용) 중에서 98p
현재에서 가까운 시간부터 기억을 지워가는 병에 걸린 엄마, 엄마는 이제 막 엄마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직면했다. 이제는 어린 딸과 행복했던 시간으로 들어갈 순서다. 어찌 어미가 딸을 무서워만 했을까? 때로는 방긋방긋 웃는 모습에 같이 웃음 지었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고 서로를 알아보는 찰나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이제 그 기쁨의 순간으로 가야만 한다. 그리고 또 그보다 더 이전의 시간으로 머나먼 여행을 떠나겠지.
그러고 보면 인간은 모든 것을 쏟아내고 나서야 끝이 나는 참으로 독한 존재이면서 또 모든 것을 기억하고, 그 기억들을 잊어야 끝이 나는 참으로 가여운 존재 같다. / <머나먼 기억> (류성희) 중에서 133p
네 편의 단편소설을 비롯해 백휴 작가가 쓴 정통 역사 미스터리 〈탐정 박문수〉 역시 강렬하다. 백정 신분의 한 여인이 감히 임금의 행차를 막아 아뢰니, 성균관의 권호철 색장과 이문환 학록이 자신을 겁탈하여 아이를 가졌기에 그 죄를 물어 달라 청하자 이를 수사하라는 임금의 교지가 내려졌다. 하지만 권 색장과 이 학록은 그런 일이 없다며 딱 잡아뗐고, 하는 수 없이 적혈지법(같은 핏줄이라면 서로 피가 엉기어 하나로 합쳐질 것이고, 혈육이 아니라면 두 피는 그릇 안에서 제각기 따로 놀 것이라고 생각함)으로 친자를 확인하였으나 두 사람 모두 아이의 피와 끝내 엉겨 붙지 않았다. 이에 도리어 무고죄를 물어 여인이 옥에 갇히니 일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다음 해 초가을, 한 성균관 태학생이 술국집에서 비명횡사한 사건이 벌어지며 한성부 관원들이 출동한다. 사인은 독살. 선비의 이름은 권호철이다. 이미 이문환 역시 자택에서 독 중독으로 급사한 일이 있어, 혹시 두 사람의 사인에 과거의 일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려는 찰나, 이를 수사하던 하석기가 영문도 모른 채 관아에 잡혀 들어간다. 하석기는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는 것은 물론 저를 대신해 두 성균관 태학생들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쳐줄 사람으로 박문수를 지목한다. 박문수는 후일 발군의 암행어사로 이름을 날려 영조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그 박문수다. 작가 백휴는 박문수가 암행어사로 활약하기 이전, 아직 ‘어리고 학문에 큰 뜻을 두지 않았던 때’라는 설정을 활용해 3회에 걸쳐 완성도 높은 정통 역사 미스터리를 전개할 예정이다. 박문수가 본격적으로 사건에 뛰어들려는 때에 1회가 끝나버렸으니, 벌써부터 다음 가을호가 기다려진다.
“자네 이름이 박….”
“박문수라 하옵니다. 박문수.”
박문수는 후일 발군의 암행어사로 이름을 날려 영조의 지우를 입고 사랑을 받았다.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난 때 종사관으로 전공을 올려 죽은 뒤에는 충헌이라는 시호까지 얻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박문수는 어렸고 아직 학문에 큰 뜻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가 석달 전부터 성균관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외삼촌(이태좌)의 뜻이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박문수는 외삼촌 밑에서 자랐는데, 외삼촌은 혈육이기 이전에 지엄한 스승 같은 존재였다.
크게 될 인물은 본디 어릴 때 가족이 감당하기 어려운 법이다. 한 인간이 평생을 두고 펼칠 도량의 크기를 어찌 어른의 눈으로만 잴 수 있으랴. / <탐정 박문수_ 성균관 살인사건 ①> (백휴) 중에서 160p


그 외에도 이번 호에는 ‘이야기 논픽션’이라는 장르를 활용한 르포르타주 특집이 눈에 띤다. 첫 번째 결과물로 팩트스토리와 공동으로 기획한 전현진 기자의 <길고양이 킬러를 추적하다>는 실제 고양이 학대범과 그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한 여성의 집념을 소설처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미스터리가 단순히 장르 문학을 넘어서서 사회의 가장 어두운 이슈들을 조명하는 적극적인 매개체로 발돋움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색다른 시도로써, 앞으로 이러한 기획들이 더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전화번호를 알아냈으니, 경찰에 고발도 가능하다. 하지만 김미나는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려고 했다.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면 관할을 어디로 할지를 두고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VPN테스트’를 지켜보고 ‘논두렁 게이’를 추적하면서 경찰은 쉽게 나서지 않으며, 추적이 늦어질수록 또 다른 고양이들이 희생된다는 것을 배웠다. 수사 같은 건 몰랐지만, 집요함을 무기로 학대범을 추적하며 몸소 배운 감각이다. 빨리 붙잡아야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 / <특집-르포르타주: 길고양이 킬러를 추적하다> 중에서 16p
범인은 이후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2021년 자료를 보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검거된 인원은 2010년 78명에서 2019년 962명으로 증가했다. 10년간 3345명이 검거됐는데 재판에 넘겨진 건 304명(9퍼센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와 기소가 비교적 신속하게 이뤄진 것은 사안이 워낙 잔혹하기도 했지만, 김미나가 이 일을 여기저기 알리고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올리면서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 <특집-르포르타주: 길고양이 킬러를 추적하다> 중에서 18p



지난 호에서 읽은 신인상 수상작 <설곡야담>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탓일까, 이번 호에서는 당선작이 없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대신 심사위원이 남긴 당부가 마음에 와 닿는다. 여전히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작품이 많다는 점, 장르를 넘어 ‘이야기’로서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많다는 점, 무엇보다 최소한의 문장과 맞춤법조차 갖추지 못한 작품들이 많다는 지적이 그러하다. 장르 문학일수록 기본기와 치밀함을 모두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많은 예비 장르 문학 작가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마음을 담아 다음호에는 더 참신하고, 흥미롭고 재미있는 미스터리 작품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