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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의식, 실재, 지능, 믿음, 시간, AI, 불멸 그리고 인간에 대한 대화
마르셀루 글레이제르 지음, 김명주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평점 :

시대가 당면한 문제 앞에서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갖춰야 하는가!
우리의 전망이 결코 어둡지 않다는 이 미더운 낙관이 좋다!
마르셀루 클레이제르는 과학의 대중화에 헌신하면서,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할 만큼 과학과 영성을 융합해온 공로까지 인정받고 있는 이 시대의 뛰어난 지성인이다. 그는 우리 시대의 핵심 문제를 함께 탐구하기 위해 과학과 인문학을 통합한 다자적 접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두 문화의 건설적인 협업을 위해 세계 최정상의 지성인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그가 미국 전역의 극장과 대학을 돌며 여덟 차례 진행한 대담을 엮어 펴낸 책이다. 의식, 실재, 지능, 믿음, 시간, AI, 불멸 그리고 인간에 이르기까지, 책에서 다루고 있는 각각의 주제들은 인류 공통이 함께 질문하고 고민해야 하는 현 시대의 핵심적인 과제로써 새로운 통찰과 건설적인 방향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위대한 지성들의 강연과 마르셀루 글레이제르의 논평은 그 자체로 건강한 혜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전망이 결코 어둡지 않다는 미더운 낙관을 얻게 된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의 대화_ 의식의 신비
불교학자 B. 앨런 월리스, 이론 물리학자 션 캐럴의 대화_ 실재의 본질
철학자 퍼트리샤 처칠랜드, 천문학자 질 타터의 대화_ 지능의 미래(인간, 기계, 외계 생명체)
철학자 리베카 골드스타인, 물리학자 앨런 라이트먼의 대화_ 영성의 본질
이론물리학자 폴 데이비스, 과학사가 히메나 카날레스의 대화_ 시간의 신비
신경과학자 에드 보이든, 작가 마크 오코널의 대화_ 사이보그, 미래주의자, 트랜스휴머니즘
환경주의자 엘리자베스 콜버트, 종양학자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대화_ 인간과 행성의 수명
인류학자 제레미 드실바, 우주생물학자 데이비드 그린스푼, 이론물리학자 타스님 제흐라 후세인의 대화_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그리고 인류로서 우리는 세계를 어떻게 바꿔갈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에 접근하기 위해 대담에 참여한 학자들의 공통점은 학문의 경계를 넘는 일, 즉 과학과 인문학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의식’의 경우, 지금껏 ‘몸-마음’의 문제에 한정하여 철학이 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이제는 ‘의식-뇌’ 문제로 확대되어 뇌의 관점에서 그리고 몸의 관점에서 의식을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만일 우리의 의식이 물질적 사물들만큼이나 실재하는 것이라면?(혹은 어떤 의미에서는 실재에 훨씬 더 가깝다면?)”과 같은 질문을 통해 인지과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저 과거에 석가모니는 이미 “그것이 통념이라는 이유로, 혹은 오랫동안 사실로 여겨져왔다는 이유로 그 견해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전했던 만큼, 우리 시대의 문제 앞에서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갖춰야 하는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각자의 믿음을 공유하고 일종의 건강한 회의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덟 편의 대담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실재의 성질 또한 매우 혼란스러운 주제입니다. 션이 처음부터 말했듯 서로 다른 온갖 층위가 있고, 상보적인 앎의 방식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우리가 배운 것이 있다면 이 모든 관점을 겸손한 자세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해해야 할 것을 다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우리는 심지어 나아갈 길을 밝히기 위해 물어야 할 질문들이 무엇인지조차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지식 추구의 본질적인 면이자 출발점은 무지를 인정하는 겁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집니다. 모르기 때문이죠. 톰 스토파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중요한 존재로 만다는 것은 알고 싶어 하는 욕구이다.”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것에 호기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 ‘2장 실재의 본질’ 중에서 95p
요컨대, 저는 과학과 종교에서 지식을 획득하고 수정하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음에도 둘 다 어느 정도의 믿음, 즉 증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믿음과 헌신을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과학은 특정한 현상에 대해 과학이 알고 믿는 모든 것을 실험적으로 검증하고 증명하지만 근본적인 믿음인 중심 교리에 대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중심 교리는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는 과학과 종교가 인류 문명을 형성한 가장 큰 두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우리 안에 있는 강렬하게 인간적인 뭔가를 반영합니다. 과학과 종교는 둘 다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대화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 ‘4장 영성의 본질’ 중에서 167p


챗GPT를 위시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때문에 육체와 기계의 융합, 트랜스휴머니즘에 관한 논의 역시 눈길을 끈다. 우리는 이 길의 어디쯤에 왔을까? 앞으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어디까지 가야 할까? 개인적으로 이 질문들에 답하는 건 흥미롭고 멋진 과학적 도전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건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현재와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라는 오코널의 말이 인상에 남는다. 아울러 기후 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구와 맞서기보다는 협력하는 법을, 즉 테라 사피엔스로서 자신의 활동을 지구의 자연 주기와 우아하게 통합할 수 있는 종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 역시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담론들이 지속적으로 고려되고 소통되며 통합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에도 다양한 대화의 장이 열릴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게 뭘까요?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요?” 행성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종,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는 종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 지식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지식을 의식적으로 통합해 지구와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관계를 맺는 쪽으로 우리의 행동을 바꿀 수 있을까? 저는 행성의 역사에서 우리가 맡은 역할을 고려할 때 지금 우리가 처한 도전을 이렇게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8장 인간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381p



의식과 실존, 과학과 종교, 시간의 본질에 관한 책 속의 담론들이 수월하게 읽힌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통합해가야 하는지 방향성을 모색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편협함과 편 가르기로 시민 담론이 심각하게 위협을 받는 지금, 이 책은 건설적인 대화를 이끌어내는 데 필요한 훌륭한 도안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저 학술적인 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데서부터 공론화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마련되었으면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