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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셸비 반 펠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3월
평점 :

어떻게 이 아름다운 생명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진심 어린 애정과 연대, 세대를 넘나드는 우정, 삶의 방향은 내가 정할 수 있다는 낙관의 메시지까지!
마셀러스_
내가 누구냐고? 몸무게가 27.2 킬로그램에 달하는 거대태평양문어다. 5억 개의 뉴런을 지녔고 위장 능력이 뛰어나며 머리 지능보다 더 뛰어난 촉수가 여덟 개의 팔에 퍼져 있다. 당신은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놀랍도록 똑똑한 생명체다. 소웰베이 아쿠아리움에 구조되어 온 뒤로 모두가 잠든 밤이면 나는 수조 밖을 몰래 빠져나와 해마에게 장난을 걸고, 야식을 먹기 위해 해삼 수조를 뒤지며 비밀스러운 모험을 감행하지만, 아쿠아리움 운영자인 테리는 아직도 눈치를 채지 못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도 이제 160여 일밖에 남지 않았다. 내 수명은 4년, 1460일. 청소년기에 이곳으로 온 뒤로 쭉 이 수조 안에서 살았으니 이 수조 안에서 운명을 마감하리라. 다만,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나에게 유일하게 말을 걸어주는 토바 설리번. 죽기 전에 나는 그녀의 심장에 난 구멍이 메워지도록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
토바 설리번_
나는 작은 소도시 소웰베이 아쿠아리움의 청소를 담당하는, 이곳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직원이다. 방문객들이 돌아가고 난 뒤 모두가 잠든 시각, 나는 아쿠아리움에 묻은 수많은 지문과 껌 자국들을 떼어내며 다음날 찾아올 손님들을 쾌적하게 맞을 수 있도록 준비한다. 30년 전엔 아들인 에릭을 잃고 몇 해 전에 남편인 윌까지 떠나보낸 내가 지금껏 버틸 수 있었던 건 니트-위츠 모임의 친구들과 이곳 아쿠아리움 덕분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노쇠해서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보다 어떻게 수조 밖을 나온 건지 거대태평양문어인 마셀러스가 전선에 몸이 감겨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구출한 뒤로 이 녀석이 마음에 쓰인다. 마치 나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의 말과 행동에 하나하나 반응하는 것을 보면,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나저나 녀석은 어째서 매일같이 수조 밖을 탈출하는 것일까. 혹시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걸까.
캐머런 캐스모어_
아무래도 친구 부부 집 소파에서 하룻밤 신세를 져야 할 것 같다. 내가 일자리에서 쫓겨난 것을 여자친구가 알아버리자 나를 집에서도 내쫓아버린 것이다. 약물 중독자였던 엄마는 아홉 살 때 나를 이모에게 맡기고 사라진 뒤 연락이 없고, 아버지는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니… 역시, 나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존재인가 보다. 그런데 때마침 이모가 건넨 엄마의 오래된 잡동사니 틈에서 뜻밖의 반지를 하나 발견했다. 아버지가 엄마에게 준 것이 분명하다. 소웰베이 고등학교, 1989년 졸업. 10대 시절의 엄마, 그리고 그녀 옆의 한 남자. 이 남자가 혹시 나의 아버지일까. 나의 아버지가 있다는 그곳, 소웰베이로 가봐야겠다.
나는 비밀을 아주 잘 지킨다. 다른 도리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내가 누구에게 털어놓겠는가? 달리 선택권이 없다. 다른 포로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다 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대화뿐일 것이다. 무딘 의식, 원초적인 신경 체계. 그들은 생존을 위해 설계되었고, 아마도 그 기능에는 전문가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 있는 그 어떤 생명체도 나와 같은 지능은 지니지 않았다. 외롭다. 내 비밀을 나눌 누군가가 있다면 외로움이 덜해질지도 모른다. / 80p
세월이 지나도 이들의 불만은 달라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이가 다니는 대학이 너무 멀리 떨어져 애석하다는 것이었고, 그 다음에는 일요일 오후에 전화 통화만 하다니 너무하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손주와 증손주 이야기다. 이들은 가슴에 엄마라는 이름을 크고 야단스럽게 써 붙였지만 토바는 그 이름을 명치 저 깊숙한 곳에 오래된 총알처럼 묻고 살았다. 아무도 모르게. / 35p
기회들. 지금껏 기회를 몇 번이나 제공했는지 삶이 기록하고 있다면 캐머런이 받아야 할 밀린 기회들이 아주 많이 쌓여 있을 것이다. 중독자 부모를 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케이티가 알까? 그의 안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끈질긴 증오에 대해 케이티가 어떻게 알까? / 84p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은 모두가 잠든 밤, 소웰베이 아쿠아리움에서 펼쳐지는 인간과 문어의 아주 특별한 우정을 담은 소설이다. 가족을 잃고 은퇴를 앞둔 아쿠아리움 청소부 토바와 곧 있으면 수명을 다할 문어가 생의 마지막 즈음에 이르러서 서로를 위해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마법 같은 이야기다. 소설은 절대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두 존재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빚어내는 기적을 섬세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그려나간다. 특히 소웰베이 사람들의 진심 어린 애정과 연대, 세대를 넘나드는 우정, 삶의 방향은 내가 정할 수 있다는 낙관의 메시지까지, 어느 하나 완벽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꽉 찬 희망과 감동을 전한다.
“제가 작은 마을에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사람들이 다 친절하지만, 어…… 뭐라고 해야 될까요. 서로 너무 관심이 많다고 해야 할까요?”
“우리는 서로 챙겨준다고 표현하는 쪽이죠.”
체리 한 봉투를 저울에 올리는 샌디의 산호색 입술에서 어느샌가 긴장된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 378p


페이지는 두껍지만 단숨에 읽어나갈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다. 상실의 아픔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희망을 담은 이 사랑스러운 이야기에 온 마음을 열어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기적은, 내가 열어 보인 마음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마셀러스가 이미 보여 주었으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