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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마음 사전 - 가장 향기로운 속삭임의 세계
오데사 비게이 지음, 김아림 옮김 / 윌북 / 2023년 3월
평점 :

이 봄날, 꽃으로 하여금 눈과 마음이 즐거워지는 책!
인간의 삶 어느 틈에서 가만가만히 피고 지고 있었던 꽃들을, 꽃에 얽힌 기억을 다시 돌아보다!
봄꽃이 축제를 벌이는 계절이다. 훈풍에 벚꽃이 흩날리는 산책길을 걷고 있으려니 겨우내 움츠러 들어 있던 마음에 생기가 도는 듯하다. 길 따라 내려가다 보면 담장을 따라 노란 개나리가 화사하게 제 빛을 밝히고, 드문드문 산수유가 생기를 뽐내니 그야말로 눈이 즐거운 나날이다. 한편으로는 내내 기다려왔던 계절이 또 이렇게 짧게 마감해버릴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쉽다. 때마침 이런 마음을 위로하듯 참 예쁜 책이 내게로 왔다. 우리가 사랑하는 50가지 꽃들이 품은 낭만의 문화사, 『꽃의 마음 사전』이다. 신화, 역사, 지리, 민속학, 문화를 아우르는 다채로운 꽃들의 사연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 새 아름다운 삽화에 또 한 번 매료되고 마는 아주 특별한 책이다.
하늘의 무한한 초원에서 하나씩 하나씩 소리도 없이,
사랑스러운 별들, 천사들의 물망초들이
꽃을 피운다. -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에반젤린: 아카디 이야기」(1847) / 66p
길고 긴 세월 동안 꽃은 다양한 문명권에서 문학과 예술, 종교 그리고 경제적인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녀왔다. 일차적으로는 의학이나 미신에 활용되어왔던 꽃이 미학적인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빅토리아 시대 때부터였다고 한다. 빅토리아 시대에 들어 사람들이 꽃과 원예를 본격적으로 취미로 삼기 시작했고, 사유지에 넓은 정원을 만들어 온실 원예를 즐기거나, 새로운 종을 번식시킴으로써 원예 문화에 발전에 이바지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예술과 문학의 낭만주의와 감상주의를 사랑했지만 직접적인 표현은 삼가는 엄격한 에티켓을 지켰다고 한다. 누가 봐도 알 만한 추파나 연인 사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행위를 조심했던 이들은, 대신 작은 꽃다발을 통해 받는 사람에게 감정을 전달하는 문화를 일구어나갔다.



달리아는 ‘영원히 당신의 것’, 데이지는 ‘순수함’, 디기탈리스는 ‘간절한 바람’, 목련은 ‘인내’, 제비꽃은 ‘겸손’과 같은 꽃말에 담긴 의미는, 이러한 문화 속에서 꽃에 보편적인 의미와 상징성을 부여하고자 노력했던 빅토리아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그렇게 꽃에 깃든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야기는 계속해서 우리 곁에 남아 수많은 예술과 문화에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우리 가슴 한 구석에도 유독 마음을 건드리는 꽃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건넨 작은 장미 한 송이, 보송하게 피어있는 민들레 꽃씨를 후- 하고 불어본 유년 시절의 기억, 하물며 봄날이면 만개한 벚꽃 앞에 잠시 걸음을 멈추어보는 여유마저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처럼 책은 인간의 삶 어느 틈에서 가만가만히 피고 지고 있었던 꽃들을, 꽃에 얽힌 기억을 다시 돌아보게끔 한다.
1881년호 《정원사 연대기》에서 J. 셰퍼드는 이렇게 썼다. “난초를 제외하고는 붓꽃만큼 아름다운 꽃을 없다. 이 꽃은 별난 겉모습뿐만 아니라 상상할 수 있는 색 중에서도 가장 섬세하고 풍부한 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꽃꽂이용 절화를 만들 때 적합하며 물속에서도 오래 지속된다.” / ‘붓꽃’ 편 중에서 98p
그러고 보면 꽃이야말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은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란 생각이 든다. 인간을 이해하는 열쇠라 할 수 있는 신화 속에서 유독 꽃의 어원과 의미를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개인적으로 칼라 백합을 무척 좋아하는데, ‘칼라’는 ‘아름다운’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칼로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심지어 로마 신화에서 비너스는 칼라 백합의 아름다움에 질투한 나머지 식물의 중심부에서 거대한 노란 암술이 돋아나게 해 겉모습을 해치려 했다고 전해진다. 수선화가 ‘자기애’를 뜻하게 된 건 그리스 신화를 읽어본 이들이라면 모두들 알 것이다. 제 모습에 도취되어 자신을 사랑하게 된 나르키소스가 그 자리에서 꽃으로 변해 수선화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아름다운 수선화를 표현할 길이 없었던 그리스인들의 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한편, 미나리아재비와 히비스커스가 서로 대립하는 「1시간의 꽃과 열매 없는 꽃」이란 우화가 아주 흥미롭다. 이 이야기에서 ‘열매 없는 꽃’인 페르시아산 미나리아재비는 겉모습은 도도하고 아름답지만 마음이 텅 비어 있다. 미나리아재비는 ‘1시간의 꽃’ 히비스커스를 연약하다는 이유로 경멸한다. 하지만 히비스커스는 미나리아재비에게 자신이 비록 짧은 생을 살지만, 밝고 성취감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다 죽은 뒤에는 자기 자리에 다음 세대의 후손들이 자라도록 씨앗을 남길 것이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남긴다. “미나리아재비가 자랑하던 오래 버티는 특성이 히비스커스의 짧은 생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러한 의미 때문에 히비스커스 종은 전 세계 문화에서 정신적으로 영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역시 이를 국화(무궁화-히비스커스 시리아쿠스)로 삼은 것을 보면,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우리의 주권을 손에 넣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위대한 선조들과 그들이 남긴 유산으로 평화를 찾은 이 땅에 이만큼 어울리는 꽃은 또 없을 듯하다.


다른 이들이 잘 때 깨어나는 식물로부터,
그리고 하루 종일 자기 자신의 향기를 맡는
수줍은 재스민 꽃봉오리로부터,
해가 지고 나면
떠도는 모든 산들바람에
기분 좋은 비밀을 털어놓아라. - 토머스 무어 『랄라 루크: 하람의 빛』(1817) / 106p
이 외에도 샤넬의 사랑을 받은 동백꽃, 이브 생 로랑의 사랑을 받은 푸크시아, 크리스찬 디올이 가장 아끼는 은방울꽃 등 많은 예술가들의 뮤즈가 되어준 꽃들의 이야기는 이 봄날에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살랑살랑 설레게 한다. 한때는 ‘그는 나를 사랑한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를 반복하여 사랑의 운명을 점 췄던 데이지 게임, 소년과 소녀들이 꽃을 선택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던 패랭이꽃 게임도 있었으니, 우리 인간에게 있어 꽃은 낭만과 사랑과 슬픔의 역사를 아우르는 아주 우아한 생명체란 생각이 든다. 꽃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가는 요즘, 이 책을 통해 한줌도 되지 않는 작은 흙속에서도 피어나는 내 이웃의 작은 꽃들을 한 번 더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