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김헌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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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읽기란 옛 사람들의 정신적 유물을 매만짐으로써 오늘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가는 일이다!

탁월한 해설자로서 신화와 오늘을 연결하는 책!

 

 

 

 

  “태초에 (가장 먼저 카오스가 생겨났다.”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그리스 신화가 그려 주는 세상의 첫 장면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카오스애초에 하품을 뜻하는 이 단어가 태초의 공간을 의미하는 이름을 갖게 된 게 흥미롭다저자인 김헌 교수는 우리가 하품을 하면 입안이 넓게 벌어지면서 텅 비게 되듯카오스를 존재의 세계가 잠에서 깨어나 앞으로 생겨날 모든 존재들을 담아낼 넉넉한 공간으로서의 상징성에 주목한다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말처럼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에 새로운 것들이 차곡차곡 들어서는 광경을 열어 보인 고대 그리스인들의 혜안에 감탄하게 된다.

 

 

 

  반면태초의 카오스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혼돈의 상태로 그려놓은 이도 있다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변신 이야기에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씨앗들이 서로 밀쳐 대고 얽히고설켜 정돈되지 않은 무더기의 상태로 묘사한다이런 혼돈의 카오스에 어떤 신비로운 조화의 손길이 닿으면서 질서가 생겨났고 땅과 하늘바다가 생겨났다는 것이다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신화는 단순히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카오스(혼돈)에서 코스모스(질서)세상이 나름의 질서를 확보해가는 과정을 담은 대서사시 같다낯선 세계와 세상의 수많은 현상들에 대한 놀라움과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고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믿을 만한 이야기를 찾아 나서며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정립해나갔던 옛 사람들신화 읽기란이러한 옛 사람들의 정신적 유물을 매만짐으로써 오늘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가는 일이 아닐까.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뜻에서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인데,

그 까닭은 신화가 놀라운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형이상학』 제 1) / 8p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신화의 세계로 문을 열어준다면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신화와 오늘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다시 말해 이윤기가 뛰어난 이야기꾼으로서 신화에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면고전학자인 김헌은 탁월한 해설자로서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신화를 재해석하여 신화와 오늘을 연결한다이를 테면 우라노스와 크로노스 그리고 제우스로 이어지는 친부 살해 신화를 통해기성세대의 권위와 모순에 겁먹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을 때 새로운 시대와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특히 기존 체제에 억압받고 소외되었던 형제들에게 적절한 권력을 나눠줌으로써 협업과 협치를 보여준 제우스에게서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메시지를 들여다본다무엇보다 제우스의 바람둥이 이미지를 두고 권력을 확장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믿을 만한 협력자를 얻으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는 그의 해석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읽힌다.

 

 

 

이런 신화를 자식들에게 들려주던 그리스인들의 교육을 상상하면 놀랍습니다. ‘엄마나 아빠어른들이나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그래야 성공한다.’ 이런 식이 아닙니다기존의 질서를 절대적인 것으로지고의 가치로 고집하는 대신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젊은 세대를 독려하고 응원하는 교육이지요물론 기존의 질서와 전통을 소중하게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하지만 젊은 세대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독려하고 응원하는 자세 또한 절실하게 필요합니다그리고 우리 자신이 새로운 도전을 할 젊은 마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합니다스스로에게도 독려해야겠지요기존의 질서에 도전하는 자만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입니다. / 53p

 

 

우리도 에로스처럼 두 가지의 화살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에로스처럼 만나는 사람들을 향해 사랑의 금 화살을 쏘거나 미움의 납 화살을 쏘는 것 같습니다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말과 행동을 하면 그것이 상대의 마음속에 사랑을 싹트게 하는 금 화살이고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무시하고 배척하는 말과 행동을 하면 그것이 상대의 가슴에 못을 박고 노여움과 앙심혐오를 낳게 하는 납 화살인 겁니다우리가 어떤 화살을 쏘면서 사람들을 대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할 때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랑과 평화로 가득 찰 수도 있고반대로 미움과 다툼으로 어지러울 수도 있는 거지요. / 164p

 

 

 



 

 

 

 

  신들로 가득 차 있던 세상에 언제부터 인간들이 나타난 걸까이 책에서는 여느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본 적이 없는 최초의 인간을 조명한다헤시오도스는 일과 나날에서 다섯 종족의 인간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그중 일부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최초의 인간은 황금 종족이었다고 한다불멸의 신들처럼 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풍요와 자유를 누렸다두 번째 인간은 은의 종족이었다황금 종족에서는 볼 수 없었던 범죄 행위와 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고 권리만을 누리려했던 어리석음이 그들을 파멸시켰다세 번째 인간은 청동 종족으로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힘들게 일을 해야 했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침략과 전쟁을 일삼았다네 번째인 영웅 종족은 반신반인의 존재였지만 테베와 트로이아 전쟁 이후 신들의 외면을 받아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마지막 다섯 번째 종족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철의 종족이다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인간들보다 훨씬 더 사악하며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속이고 고통스럽게 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 것으로 표현된다저자는 이를 인간들의 품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우화로 해석한다어떤 사람은 황금 종족처럼 선량하며 고귀한 품격을 지키며 살고 있지만어떤 이는 청동이나 철을 품고 포악하게 살 수 있기에 우리는 마음속에 무엇을 품고 살고 있는지나는 어떤 종족으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말이다그러면서도 우리는 신의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의 한계를 살아가는 반신반인의 존재일수 있음을 자각하며내 안에 깃든 영웅적 본능을 깨워 세상을 용기 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튀폰의 자식들 가운데 스핑크스는 테베의 영웅 오이디푸스에 의해 퇴치되고멧돼지 파이아는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고대의 그리스·로마인들은 농부들이 일구어 놓은 농토를 망가뜨리고 가축을 습격하는 야생 들소나 야생 염소멧돼지사자호랑이 등의 맹수들이나 칼과 창으로 무장한 산적 떼야만족들을 튀폰이나 그의 자식들과 같은 괴물로 상상했던 겁니다그리고 이 괴물들을 힘과 지혜로 물리친 전사들을 영웅으로 숭배했는데이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신화의 형태로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입니다아울러 자라나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이런 영웅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슬기롭고 씩씩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교육을 했던 것이죠. / 239p

 

 

실제로 옛 그리스·로마인들은 파에톤의 무모한 도전을 일방적으로 비난하지 않았고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그의 도전에 일정 부분 긍정적인 공감을 표했습니다비록 비참하게 추락했지만명예를 지키려고 했던 그의 의지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도했던 용기를 높이 산 셈이지요그러나 파에톤에 대해 큰 아쉬움이 남는 것은 자신의 분수를 아는 지혜와 중용의 미덕 또한 용기 있는 도전 못지않게 삶에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파에톤의 비극적인 추락을 보면서 그런 멋진 도전에는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준비를 통해 적절한 실력을 갖추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 놓게 됩니다. / 315p

 

 

 




 

 

 

 

  <벌거벗은 세계사>, <신들의 사생활_그리스 로마 신화외에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서양고전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김헌 교수의 책이라 관심 있게 읽었다단순히 이야기로만 풀어낸 게 아니라 신화를 엮어낸 당대의 문화를 비롯해 인간은 왜 이런 신화를 만들었을까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과 통찰을 얻을 수 있어 특별했다그리스 로마 신화를 더 깊이 있게 읽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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