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
에이미 하먼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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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손에 들면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놀라운 작품!

가슴 저미는 러브 스토리와 미 서부개척시대의 장엄한 서사를 아우르는 경이로운 소설!

 

 

 

 

  1840년대미국이 멕시코와 전쟁을 하여 캘리포니아를 매수했다당시 캘리포니아는 빈 땅에 가까웠기에 연방정부는 안보를 위해서라도 동부에 살던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여러 정책을 펼쳐 서부개척시대를 열었다골드러시가 그 중 하나였다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었다는 정보가 동부에 전해지자 이듬해인 1849년 한 해 동안에만 일확천금을 꿈꾸는 8만 명 이상의 남자들이 육·해로를 통해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이후에도 수천 명의 이주민들이 약 1년이라는 시간 동안무려 2천 마일에 걸쳐 평야와 산과 강과 계곡을 가로지르며 땅 위에 바퀴 자국과 발자국을 남겼다재산과 지위와는 관계없이 캘리포니아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꿈은 동일해 보였다행운멋진 인생 그리고 사랑.

 

 

 

  하지만 그 여정에 무엇이 있을지 그들이 알 수 없었던 것만큼우리 역시 그들이 겪은 가혹한 삶을 감히 짐작할 수 없다다만 이 책에서 존과 나오미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엿볼 따름이다낯선 땅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뒤따라올 사람들을 위해 길을 열어 보여준 용기와 수고로움을시시때때로 죄어오는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필사적인 투쟁을그리고 위대한 헌신과 사랑을나는 이 이야기가 단순히 그들만의 역사가 아님을 안다이건 먼저 이 땅의 수많은 길을 개척한 자들의 이야기이면서그 길로 걸어 들어간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다또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의 뼈대를 세우는 데 도움을 준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은 바로 그들이 보여준 장엄한 여정에 바치는 헌사다.

 

 

 

실존인물과 미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

 

 

  주인공인 존 라우리는 백인인 아버지와 원주민인 포니 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다어머니 부족의 원주민들은 그를 두 발이라고 불렀다한쪽 발은 백인의 발다른 쪽 발은 포니 족의 발이라는 뜻이었지만그 두 세계 모두에 걸쳐져 있다는 이유로 이쪽과 저쪽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할 존재가 되었다어머니의 세계에서 내쫓긴 이후로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그의 노새 사업을 도왔고 그 안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지만늘 자신이 누구인지를 의심하느라 삶의 의미와 목적 사이에서 방황해야 했다그렇게 사람들과 감정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던 그는 1849골드러시를 향한 서부 이주 호황에 발맞춰 이주민들을 캘리포니아로 안내하는 사업을 하던 그랜트 애벗을 돕기 시작했고그러던 중 이주민 일행인 나오미 메이라는 백인 여성에게 끌리게 된다.

 

 

 

1949년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에 동참했었지만 일확천금을 움켜쥐는 데는 실패했다지금껏 오리건 준주까지 세 번 왕복했고이제는 모피 판매나 사금 채취보다 서부 이주 호황에 뛰어드는 것이 더 큰 돈을 버는 길이라고 결정 내린 모양이었다덧붙이자면 그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질이었다그가 나에게 커니 요새까지 같이 가자고 설득했다그래서 나는 그동안 노새들을 몰고 플랫 강 바로 아래에 있는 커니 요새까지 다섯 번을 왕복했다나는 그곳에 가 갈 때마다 그곳에서 멈추지 않고 서쪽으로 계속 더 가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었다그러면서도 결국에는 매번 세인트조의 아버지 집으로 되돌아왔었다. / 28p

 

 

나의 아버지는 나의 존재에도 편안해한 적이 없었는데그것이 나로 하여금 나 자신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게 만들었다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긴장하게 했다나를 조용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늘 조심하게 했다나 스스로를 의심하도록 만들었다. / 249p

 

 

 



 

 

 

 

  나오미 메이는 결혼한 지 3개월 만에 남편을 병으로 잃고 과부가 되었지만 부모님을 따라 캘리포니아 이주 행렬에 동참하기로 한다쾌활하고 자신의 감정에 누구보다 솔직한 그녀지만 임신한 엄마와 어린 두 남동생을 책임감 있게 돌보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단하고험난한 여정을 묵묵히 견뎌낸다그리고 그 여정을 끈기있게 이끌어주는 존 라우리에게 사랑을 느낀다. 2천 마일에 이르는 서부로의 대이동 속에서 목숨을 위협하는 콜레라어디로 떠밀려나갈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강수많은 이탈자들과 죽음이따금 밀려오는 권태로움과 끊임없이 맞서 싸워야 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는 용기와 희망으로 계속해서 나아갈 힘을 얻는다또한 서로를 향한 헌신과 사랑 안에서 내내 잃어버린 줄 알았던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아나간다.

 

 

 

미워하는 것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해미워하는 게 간단하고 편해 보일 거야하지만 대부분의 것들이 생각보다는 단순해그것들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바로 우리야우리는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을 복잡하게 만들면서 살아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우리의 에너지를 초월에 쏟을 수 있게 되지.”

초월이요?”

그래.”

그게 뭔지 저에게 설명해 주셔야 해요엄마저는 초월이 뭔지 모르거든요.”

네 손이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너의 정신이 머무는 곳이란다.” 엄마가 설명했다. “이곳을 넘어선 세계이고 장소야한계를 뛰어넘는 곳이지.” / 70p

 

 

앤더슨 부부는 노르웨이 사람들이에요맥닐리 부부는 아일랜드 사람들이고요요한 그루버는 독일 사람이에요당신은 일부분은 인디언이고나는 과부예요.” 나오미가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모두 서로가 필요해요우리 모두 서로의 곁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우리 모두가 서로 똑같을 필요는 없다고요.” / 94p

 

 

우리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일이야.” 위니프레드가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야모든 것이 중요하다면 목적이 없는 거지요령을 말하자면그 사이에서 단단한 땅을 발견하는 거라네.”

저는 의미도목적도 아직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냥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건 대부분 날들의 삶을 훨씬 단순하게 만들어주지우리는 먹어야 하고잠잘 곳이 필요하고따뜻함도 유지해야 하지그런 것들은 중요한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먹여줄 사람이재워줄 사람이따뜻하게 해줄 사람이 자네 곁에 없다면그런 것들 전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자네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 사람이 없다면왜 밥을 먹나왜 잠을 자나왜 걱정을 하나그러니 내 생각에 그건 무엇이 중요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중요하냐의 문제인 거야.” / 255p

 

 

 




 

 

 

 

  이 작품은 존과 나오미의 사랑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실제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한 역사소설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작가는 소설의 말미에서 주인공인 존 라우리가 남편의 5대 조부님으로실제했던 인물임을 밝힌다또한 존 라우리와 나오미를 도왔던 와샤키 추장 역시 미국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자신이 선택한 영토를 보유했던 몇 안 되는 원주민 추장 중 한 명이었다고 소개한다덕분에 우리는 미국 토착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갈등점점 자신들의 영토를 잃고 길 잃은 민족으로 전락해가는 원주민들의 애환을 그 어느 작품에서보다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다무엇보다 절대로 화합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들 관계 속에서도 아름다운 우정과 연대를 보여준 이 책의 놀라운 서사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의 위대한 힘을 느끼게 해준다.

 

 

 

지금 거기에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윌리엄.” 엄마가 말했다. “이제 우리가 돌아갈 곳은 없다고요만약에 되돌아간대도…… 아비가일이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에요우리의 미래는 저기에 있어요우리의 아들들은 캘리포니아에 도착할 거예요우리가 남겨두고 온 인생보다 더 나은 인생을 아이들이 살 거라고요두고 보세요당신도 알게 될 거예요.” / 113p

 

 

하루는 로 하이드라는 지류에서 휴식을 취했다어느 백인 남성이 품에 아기를 안고 있는 원주민 여성을 죽인 죄로 산 채로 가죽이 벗겨졌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 곳이었다.

애벗 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엘메다는 헉 소리를 냈고콜드웰 씨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야만인 새끼들.” 그가 말했다. “전부다 야만인 새끼들이야.” 그러더니 존을 쳐다보았다.

누가 더 야만적인가요?” 애벗 씨가 물었다. “어린 아기 엄마를 죽인 사람인가요아니면 그 대가를 치르게 한 사람인가요저는 그렇게 당해도 싸다고 봅니다여기에서 정의의 실현은 빠르게 실행되는 편이거든요콜드웰 씨물론 우리는 산 채로 사람의 가죽을 벗기지는 않아요하지만 지금껏 수많은 마차 행렬에서 살해 혐의가 있는 일행을 기꺼이 목매달아 죽이기도 했습니다그들만의 정의의 실현이죠.” / 187p

 

 

원주민의 피와 백인의 피가 함께 흐르게 될 거야하나의 민족나는 그걸 본 적이 있어.” 그 말을 와샤키의 목소리를 행복하게 들리지 않았다그는 체념한 듯 보였고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와샤키에게 예전에 나오미가 나에게 했던 거북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땅과 물 양쪽 모두에 사는 거북이와샤키는 웃었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생명체가 될 거야그러면 우리 모두 길 잃은 민족이 되겠지…… 나의 어머니처럼 말이야.” / 381p

 

 

너의 에너지를 네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넘어서는 데 사용하렴나오미마음 단단히 먹고. / 390p

 

 

 

  마치 골드러시를 쫓아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장엄한 여정의 한 가운데로 직접 들어갔다 나온 듯한 기분을 선사하는 작품이다프롤로그 때의 긴장감을 마지막장까지 놓을 수 없을 만큼꽤 오랜만에 서사에 압도되는 기쁨을 느꼈다고단하고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우정과 용기사랑과 연대헌신을 보여준 소설 속 주인공과 실제 했던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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