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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ㅣ 윌북 클래식 호러 컬렉션
메리 셸리 지음, 이경아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평점 :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30125_1.jpg)
진정한 괴물은 누구인가?
공포스럽고 기괴한 괴물의 이미지에 이끌려 읽게 되었지만, 인간의 이기와 맹목적인 욕망에 의해 희생당하거나 배제된 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게 되는 소설!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밤. 시인 바이런과 폴리도리, 퍼시 비셰 셸리, 메리 셸리 등의 일행이 한 자리에 모였다. 무료한 시간을 달랠 무언가를 고민하던 바이런은 손님들에게 각자 자기만의 무서운 이야기를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이때 퍼시 비셰 셸리는 어린 시절의 경험담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었고, 바이런은 흡혈귀를 소재로 소름끼치는 단편을 후딱 써냈다(훗날 이 자리에 있던 폴리도리가 바이런이 버린 미완성 단편을 기초로 『뱀파이어』를 써서 유명해졌다). 한편, 그 어떤 소재를 갖다 붙여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 섬뜩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던 메리는 우연히 퍼시와 바이런이 나누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당시 학계에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던 ‘갈바니즘(죽은 개구리 뒷다리가 전기 자극을 받고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한 이탈리아 의사 갈바니의 실험에서 유래한 혁신적인 요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 메리는 ‘불경스런 기술을 지닌 창백한 얼굴의 학자가 자신의 연구를 집대성한 작품 옆에 무릎을 꿇은 모습’을 한 환경을 본 듯했다. 그 ‘작품’이란 바로 인간의 신체 조각들을 모아 바느질하듯 기워 만든 괴물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는 탄생했다. 광기에 사로잡힌 학자와 그가 생명을 부여한 괴물에 관한 공포소설이.
창조주시여, 진흙으로 저를 사람으로 빚어달라
제가 당신께 청했습니까?
어둠에서 저를 건져달라 간청했습니까? / 『실낙원』 중에서
제네바 공화국의 명문가 자제로 태어난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고대 과학과 자연철학에 심취해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생명과 죽음이라는 경계를 돌파해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죽어서 육신이 부패하기 시작한 생명체에도 새로운 삶을 줄 수 있으리라는 열망에 사로잡힌 그는 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 방법에 몰두한다. 그렇게 2년 동안 건강을 돌보기는커녕 사랑하는 가족과의 만남까지 자제해가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그는 마침내, 그간의 난고가 결실을 거두는 순간에 돌입했음을 직감한다. 생명을 불어넣을 주위의 도구들을 모아, 발치에 놓여 있는 무생물에 존재의 불꽃을 일으키는 순간, 자신의 피조물이 누런 눈을 천천히 뜨는 모습을 지켜본다. 아! 하지만 그토록 욕망하던 것이 이토록 악마 같은 존재였다니. 커다란 키, 허여멀건 눈구멍과 쭈글쭈글한 피부, 곧고 검은 입술과 대조를 이루어 무시무시해 보이는 얼굴, 그 모든 것을 한 데로 모은 창조물은 그 어떤 추악하고 혐오스러운 존재와도 비할 수 없는 그저 괴물일 뿐이다. 자신의 손으로 창조한 존재를 마주할 수 없어 참담해진 프랑켄슈타인은 그 길로 실험실을 뛰쳐나가고, 얼마 후 피조물 역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다.
나는 생명과 죽음이 이상적인 경계로 보였다. 내가 제일 먼저 그 경계를 돌파해 암흑에 찬 우리의 세상으로 빛이 격류처럼 쏟아지게 해야 한다고 여긴 것이다. 새로 창조된 종들이 나를 창조주이자 생명의 근원으로 축복할 것이다. 행복하고 빼어난 자질을 지닌 존재가 수도 없이 내 노력에 힘입어 세상에 탄생할 것이다. 세상에 나만큼 자식에게 완전한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 아버지가 또 있을까. 이런 생각에 계속 몰두한 끝에,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언젠가는 죽음을 육신이 부패하기 시작한 생명체에도 새로운 삶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 77p
프랑켄슈타인은 그동안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몸과 마음으로 자신이 괴물을 만들었다는 절망감에 괴로워하지만, 친구 앙리의 따뜻한 우정과 변함없는 가족들의 사랑, 대자연의 경관이 주는 에너지 속에서 점차 회복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으로부터 비보가 들려온다. 동생인 윌리엄이 숨바꼭질을 한다며 숲에 들어간 뒤 살해를 당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윌리엄의 목에 남겨져 있었다던 살인자의 손자국! 프랑켄슈타인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내내 어쩌면 자신의 과오가 빚은 화살이 윌리엄에게로 향한 것이 아닐지 의심한다. 그리고 그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맞는다. 동생이 죽은 바로 그곳에서, 한 줄기 번개가 비추자 그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거인 같은 체구와 인간의 것이라기에는 너무나 흉측한 외모, 그 괴물, 자신이 생명을 불어넣은 더러운 악마라는 사실을 깨닫고 만 것이다.
혹시나 내가 창조한 그 괴물이 어디선가 악행을 저지르지나 않을지 매일 두려움에 떨었다.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막연히 들었다. 그 괴물이 과거에 저지른 악행의 기억이 무색해질 정도로 엄청난 범죄를 저지를 것만 같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는 한 나는 항상 두려움에 갇혀 살아야 했다. 그자를 떠올릴 때면 이가 갈렸고 불이라도 난 듯 눈이 뜨거워졌다. 내가 경솔하게 불어넣은 그 생명이 어서 꺼지기를 열렬하게 빌었다. 그자가 지은 죄와 악의를 떠올릴 때마다 내 속에서 증오와 복수심이 한없이 터져 나왔다. / 1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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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겠다는 욕망에 눈이 멀어 자연과 신의 영역을 넘본 젊은 과학자 빅토르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손에서 창조된 흉측한 모습의 괴물이 서로의 목을 조이며 끔찍한 파멸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은 공포소설이다. 이 소설은 공포소설을 대표하는 고전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으며, 흔히 ‘프랑켄슈타인’을 괴물의 이름이라 오인할 정도로 문학사상 독보적일만큼 강렬한 캐릭터를 완성해냈지만, 실상 공포를 유발시키는 자극적인 장면이나 소설적 장치가 두드러지는 작품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일부 낭만적인 요소를 비롯해 전반적으로는 19세기 과학이 지향하는 합리주의와 실천주의를 강조하며, ‘무엇이 악을 만드는가’와 같이 선과 악의 근원적인 질문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작품이다.
이는 작가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이 어떻게 자의식을 갖게 되는지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건만 당신이 기쁨을 앗아가버리고 말았어. 어딜봐도 행복이 흘러넘치지만 나 혼자만 그 행복을 영원히 누릴 수 없어. 나는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었어. 불행이 나를 악마로 만든 거야. 나를 행복하게 해줘. 그러면 나도 다시 선해질 거야.” 비록 기괴한 외모를 지녔지만 괴물은 기본적인 인지 수준을 지닌 데다 모방하고 학습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시골 오두막에서 사는 가족을 몰래 훔쳐보며 그들을 흠모하고, 그들의 감정에 동요될 뿐만 아니라 여기에 소속되고 싶은 감정을 느끼기까지 한다. 이는 흡사 인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습득하고 알아갈수록 선명해지는 사실은, 그는 절대 인간과 섞일 수 없는 혐오스러운 존재라는 것 뿐. 때문에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고독하게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혐오한 데서 나의 악의는 싹텄다’며 자신의 분노와 증오의 이유를 설명한다. 그렇게 메리 셸리는 악의는 타고나는 것이 아님을, 어디에도 마음 둘 데 없이 세상으로부터 존재를 부정당해버린 한 외로운 존재에게서 악의의 뿌리를 들추어낸다. ‘그렇다면 나는 괴물인가? 누구든 보자마자 도망치고, 모두에게 거부당한 이 세상의 오점이란 말인가?’하고 고뇌하는 괴물의 모습은 그 모든 사회가 적극적으로 소외해왔던 존재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진짜 악마는 저 흉측한 괴물이 아니라 자신의 힘을 과신하다 못해 맹신했던 프랑켄슈타인은 아닐는지.
“나는 그들을 우월한 존재로 우러러보았어. 그들이 장차 내 운명을 결정지을 사람들이 되리라고 말일세. 상상 속에서 나는 그들에게 나를 소개하고 그들이 나를 맞아주는 모습을 천 번은 더 그려보았다네. 그들은 처음에는 나를 혐오하겠지만 내가 점잖은 태도와 온화한 말투를 보여주면 처음에는 호의를, 후에는 사랑을 얻을 거라고 상상했어.” / 186p
“인간은 이토록 강력하고 고결하고 위대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그토록 사악하고 비열할 수 있을까? 어떤 때는 사악한 원칙을 물려받은 자손에 불과한 것 같다가도, 또 어떤 때는 고결하고 신성한 존재로 여겨지지 않나. 위대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인간이 거둘 수 있는 최고의 명예처럼 보이더군. 기록에 남아 있는 수많은 사람이 보여주듯이, 저열하고 사악한 인간이 되는 것은 최악의 타락으로, 눈먼 두더지나 해를 끼치지 않는 벌레보다 더 비참한 것으로 보였지.” / 194p
“모든 인간이 내게 죄를 지었는데 어째서 나 혼자만 범죄자로 여겨져야 해? 왜 당신은 친구를 그토록 무례하게 문전박대한 펠릭스는 증오하지 않지? 자신의 친구를 구해준 나를 도리어 죽이려고 했던 그 시골 청년을 왜 비난하지 않는 거냐고. 그래, 그들은 도덕적이고 결점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이지! 비참하고 버림받은 자인 나는 퇴짜를 맞고 발길질을 당하고 짓밟혀야 하는 쓸모없는 존재일 테고, 이런 부당함을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끓어올라.” / 3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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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북의 ‘호러컬렉션’ 중 가장 먼저 읽은 작품이다. 공포스럽고 기괴한 괴물의 이미지에 이끌려 읽게 되었지만, 인간의 이기와 맹목적인 욕망에 의해 희생당하거나 배제된 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게 되는 소설 『프랑켄슈타인』. 내 안의 프랑켄슈타인이 스멀스멀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면, 어디선가 자신의 몸을 숨기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을지 모를 ‘괴물’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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