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감사해
김혜자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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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읽었을 뿐인데왜 배우님과 두 손을 마주 잡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까!

오늘도 고단한 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힘과 위로용기를 전하는 큰 어른의 따뜻한 메시지!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또 해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눈이 부시게.

당신을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 드라마 <눈이 부시게나레이션 중에서

 

 

 

 

  3년 전쯤백상예술대상에서 김혜자 배우님이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통해 대상을 수상하면서 들려준 소감이 기억난다혹시 수상하게 되면 드라마 속 나레이션을 꼭 들려주고 싶었다며 대본을 쭉 찢어오셨는데그 글귀가 이 땅의 수많은 청춘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큰 어른의 말씀 같아 참 귀하게 느껴졌다대본이나 시놉시스를 보면 내가 이 역을 맡으면 세상에 무슨 영향을 줄 수 있나를 먼저 생각한다는 배우님의 말씀처럼오늘에 늘 감사하고 내일에게선 희망을 바라보기를 바라는 당신의 바람이 숨결 하나하나에눈빛 하나하나로 전달되는 듯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 ‘김혜자 편에서 배우님은 또 한 번 특유의 선하고 말간 얼굴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생에 감사하다고내가 그토록 부족한 인간인데 나를 배우로 만들어주셨고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기 생활을 삶처럼 여기며 살아갈 수 있게 해준 모든 것들에 감사함을 전한다고우리 각자가 생이란 무대에 올려진 배우라면앞서 그 무대에서 치열하게 살았고 여전히 그 위에 올라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님이라 더 깊은 울림을 주었던 바로 그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생에 감사해.”

 

 

 

네 힘으로 살아네 힘을 다 해.

 

 

  김혜자라는 이름이 너무 흔한 시절이었지만연극반이라 배우 같은 김혜자라 불렸다던 그녀는 어쩌면 진즉에 배우가 될 운명이셨나 보다그녀가 정말 배우가 되겠다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미쳤다며 모두 반대했지만미군정 시절 재무부 장관이자 대한민국 2호 경제학박사였던 아버지는 오히려 이런 말을 해주셨다고 한다. “유명한 배우의 한마디는 어떤 정치인이나 학자 못지않게 영향력이 있다. (좋은 배우가 되거라좋은 배우가 되면 톨스토이나 셰익스피어처럼 세상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있다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많이 해라그리고 책을 많이 읽어라.” 배우나 가수를 딴따라라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그들만의 가치를 인정하고 부디 선한 영향력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던 아버지가 있었기에 지금의 배우님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배우인 엄마의 꿈을 지지해줬던 남편과 자식들그녀를 끊임없이 새로운 무대에 올려 보내준 연출가와 작가들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고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던 고백이 나의 마음을 울린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까닭 없이 우울하고 절망하는 것은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알았습니다책을 통해서도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모두 조금씩은 부조리 연극의 배우들입니다단지 그렇지 않은 것처럼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절망감과 우울증 속에서도 스스로 힘을 내어 살아가는 것입니다그것이 삶이고그것이 인간입니다. / 56p

 

 

봉준호 감독은 내가 마치 신인배우처럼 항상 불안해한다고 했습니다감독이 오케이 사인을 내도 정말 오케이냐고 내가 계속 반문했기 때문입니다사실 나는 언제나 신인입니다그 역을 처음 맡아서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매번 맡은 역마다 처음 사는 인생입니다. / 70p

 

 

 




 

 

 

 

  배우님은 기억력이 없어져서 연기를 그만둬야 하는 날이 언제올까그 순간이 오는 게 제일 두렵다고 말씀하신다대사는 자신이 하는 말인데 자기가 하는 말도 모르면 어떻게 연기를 하겠느냐고 말이다그만큼 배우가 하는 대사를 자신의 말처럼배우가 입는 옷을 자신이 매일 입는 옷처럼어떤 역할을 하는 연기자가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인 것처럼 매번 혼신을 다했던 그녀다수탉이 온 힘을 다해 울다가 지쳐서 기절해 쓰러진 영상처럼있는 것을 다 뽑아내고 소리를 지르다 극이 끝나면 쓰러지듯 널브러졌다고 한다그럼에도 배우님은 여전히 자신에게 어떤 역이 더 주어질까 그 생각만으로도 설렌다며 해맑게 웃으신다배우는 이만큼 하면 됐다.’거나 이 정도면 성공했다.’라고 멈춰서는 안 된다고 끊임없이 채찍질했던 그녀연기는 직업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그런 마음을 품고서 해야 한다는 책 속의 글귀는 도리어 우리에게 이렇게 물어오는 듯하다너는 그만큼 온 마음을 다해 해본 적이 있느냐고.

 

 

 

몰입하는 순간 인생의 허무와 고통슬픔갈등부질없는 생각들을 다 잊을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그 순간에 어디에도 물들지 않은 순수한 나 자신이 되고 어느 때보다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생의 모든 것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내가 그토록 부족한 인간인데 나를 배우로 만들어 주셨으니까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기 생활을 정말로 그만둘 때가 되면 그것으로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안나 카레니나의 마지막 문장을 대사처럼 외웁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과는 상관없이내 인생은 매 순간순간이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 25p

 

 

나는 직업란에 탤런트라고 쓰는 사람을 보면 무심결에 저이는 저걸 직업이라고 생각하는구나.’ 하면서 놀랍니다아주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 와서 그런지 나는 연기가 직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직업이라고 하면 왠지 자존심이 상합니다마더의 엄마가 아들 도준(원빈)한테 너는 나야.” 하듯이 연기는 나입니다숨 쉬는 것처럼. / 42p

 

 

내가 죽기 살기로 하면 그 뒤는 신이 책임져 주시리라 믿었습니다관객이 어떻게 봐 줄지는 모르지만이것이 내 마지막 작품이라는 마음으로 매달렸습니다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한 일이었습니다이 작품을 하면서 나 자신을 진실로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 120p

 

 

 




 

 

 

 

  ‘누구나 날개를 갖기를 희망합니다날개는 누가 달아 주지 않습니다내 살을 뚫고 나올 뿐입니다내 어깨에서 얼마나 아프게 나왔겠는가그 날개등가교환과 같은 것입니다날개깃이 살을 뚫을 때 얼마나 아프겠는가우리가 우리 삶의 주인공이 되고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프고 고통스럽더라도 뚫고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20년 전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던 그 귀한 말씀처럼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프고 고통스럽더라도 뚫고 나와야 한다는 책 속의 말씀이 내내 기억에 남을 듯하다인생이라는 미끄럼틀 꼭대기 위에 서있을 때 우리는 내려갈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할 게 아니라 그저 타고 내려가야 한다는 것자신을 끊임없이 밀어 붙임으로써 내 온 힘을 다해 살 것단순히 자신의 연기 인생을 돌아보는 글이 아니라 오늘도 고단한 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힘과 위로용기를 전하는 큰 어른의 따뜻한 메시지에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뭉클했다순수하다 못해 너무나 솔직하고자신의 부끄러움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인정할 줄 아는 이 아름다운 어른을 배우로만 기억했더라면 참 아쉬울 뻔했다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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