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라이터
앨러산드라 토레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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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가 살의를 낳는 게 아니라 간절하게 지켜야 하는 것들이 살의를 선택하게 할 때가 있다!

잔잔하면서 먹먹한 슬픔에 가슴이 차오르는 아름다운 미스터리!

 

 

 

 

와라괴물아.” 그가 외쳤다. “따라와라내 그 거대한 배를 채워주겠다.”

나는 따라간다그리고 먹는다이후 베서니는 그림을 그리고나는 글을 쓰려고 리클라이너에 자리를 잡고 있는 동안그가 설거지를 한다.

완벽한 아침완벽한 남편완벽한 딸완벽한 거짓말. / 8p

 

 

 

  ‘나는 죽고 있다.’

  『고스트 라이터는 말기 암 진단을 받은 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된다헬레나 로스는 열아홉 살에 출간한 첫 책 이후 열다섯 편에 이르는 소설이 발표되기까지 쭉 함께 해왔던 출판 대리인에게 전화해 느닷없이 은퇴를 선언한다그러고는 곧 발표 예정이었던 작품은 계약을 파기하고 자신의 작품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수년을 공들여 쓰려고 계획해왔던 마지막 소설을 쓰겠노라 통보한다그건 사실몇 십 년이 지난 후에 실력이 쌓이고 쌓여 자신의 재능이 보다 더 완성되었을 때 쓰려고 계획했던 책이었다지난 4년 동안 언젠가 세상에 공개되기를 벼르고 벼렸던 이야기여느 평범한 원고와는 다른누구보다도 자신과 가장 닮은 여자의 이야기세상에 공개되는 순간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한 이야기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하루에 2천 단어이미 줄어들기 시작하는 석 달이라는 시간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다토악질에 복부가 뒤틀리고 공황발작 증상이 심해져도 그 자체는 그녀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그녀는 자신이 삶을 유지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다만 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소설이 될 이 작품에 쏟아부을 여력과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게 고통스러울 뿐이다하는 수없이 그녀는 출판 대리인인 케이트에게 대필 작가를 구해달라고 요청한다출판계의 스타 중에 스타하필이면 서로의 글을 헐뜯다 못해 라이벌 관계인 작가 마르카 반틀리를.

 

 

 

  얼마 뒤헬레나의 요구를 절대 수락할 리가 없는 마르카 반틀리가 헬레나를 찾아온다엄밀히 말하자면 로맨스 소설 계 금발의 요부일 거라는 대중의 상상과는 너무도 다른나이가 제법 든 상남자 스타일의 마크 포춘이다헬레나는 그가 자신의 뜻을 받아들인 저의가 궁금하지만그것을 헤아릴 겨를조차 없을 만큼 시간이 절박했기에 이제껏 누구도 들이지 않았던 자신의 영역으로 그를 받아들인다지난 4년 동안 내내 드러낼 수 없었던 비밀을 자신의 마지막 작품에 쏟아 부으려는 시한부 작가와 그것을 완성시켜줄 대필 작가 마크 포춘그렇게 절대 한 데로 섞일 수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은 헬레나가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으로 서서히 다가가기 시작한다상사병에 걸린 소녀처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고온 영혼을 다해 증오했던 남편 사이먼을 죽여버린 그때로.

 

 

 

나는 지난 4년 동안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려왔다느슨해진 실밥 하나를 누군가가 잡아당겨 주기를한 번의 가벼운 잡아당김으로 많은 것들이 풀려 나오기를우리의 비밀이 온 세상에 드러날 때까지 모든 것이 풀려버리기를 바라고 바라왔다나의 이야기는 미디어계를 발칵 뒤집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올해 최대의 이슈가 될 수 있을 것이고나의 시한부 삶에 힘입어 그 화제성은 더욱 크게 증폭될 것이다. / 78p

 

 

하지만 해야만 한다이 책을 쓰지 못한 채이 진실들을 내 뼈 사이사이에 묻어둔 채로 죽을 수는 없다책이 나와야 한다누군가는 진실을 알아야만 한다. / 103p

 

 

 



 

 

 

 

  이처럼 고스트 라이터는 유독 타인과의 관계 앞에서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남다른 기벽 때문에 외부와의 접촉을 꺼려하는 한 여성이 죽음을 앞두고 세상과 이별하는 모습을 담은 휴먼 드라마이자, 4년 전에 은폐된 남편과 딸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내용의 미스터리 장르 소설이다늘 딸 베서니를 향한 헬레나의 사랑을 의심했던 심리상담가인 엄마세계적인 부와 명성을 얻은 베스트셀러 작가 아내에게서 금전적인 욕망을 채우는 남편우울증에 걸린 정신 나간 공주님 취급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로지 글쓰기에만 몰두하고 싶었던그 안에서 유일하게 해방감을 느꼈던 헬레나소설은 초중반부까지 그녀가 어째서 타인과 마음을 나누는 데 그토록 거부감을 느끼는지죽음을 목전에 앞두고서도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완성시키겠다는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지 차분하게 서사를 쌓아간다그렇게 다소 느슨한 전개와 여전히 흐릿하기만 한 진실에 감감해지려는 찰나몰아치듯 마주하게 되는 충격적인 진실과 긴박한 위기감이 중후반부를 꽉 채운다.

 

 

 

물론 헬레나도 일부러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그저 본인이 원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고요 몇 년 새 기벽이 점점 심해졌고부탁하던 것들이 요구로 변해왔을 뿐이다오래 전 커피숍에서 만났던 그 상냥한 소녀는 이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케이트와 출판사들을 피하면서 그 누구와 어떤 소통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그 대신 새로운 헬레나가 등장했다함께 대화하는 것이 지뢰밭처럼 느껴지는 사람. / 31p

 

 

늘 낯선 장소에서무작위의 상황에서 찾아왔다한 번은 베서니가 인형의 집 모서리에 손을 베인 적이 있었다그런데 아이의 상처를 닦아주는 동안 혈액 속에 사는 군생에 대한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우리 혈류에 사는 미세한 크기의 사람들그 사람의 삶은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감기나 혹은 베서니의 상처 같은 작은 사건들로 끊임없는 격변을 겪는다그 아이디어가 너무도 강렬하고 이미지까지 생생해서 나는 응급처치를 하다가 돌연 멈추고 서둘러 계단을 달려 내 작업실로 들어갔다순간적으로 떠오른 장면을 종이 위에 간략하게 썼다그 장면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리기 전바로 그 때 써야만 했다. / 213p

 

 

 




 

 

 

 

  나는 줄곧 악의가 살의를 낳는다고 믿어오면서도어쩌면 간절하게 지키고 싶다는 욕망과 절박함이 살의를 선택하게 하는 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물론 타인의 목숨을 앗는 일에 그 어떤 변명이나 핑계를 정당화해서는 안 되지만헬레나의 선택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유일하고도 절박한 방법이었으리라그래서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고 그 동기를 설명하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이이해받고 싶으면서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이 유독 애달팠던 작품이다삶이 조각조각 나더라도 기어코 펜은 놓을 수 없었던 작가라는 불가항력의 업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잔잔하면서 먹먹한 슬픔에 가슴이 차오르는 아름다운 미스터리로 내내 기억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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